국가산업은 절대선(善)인가…귀 닫은 정부

[환경화약고, 충남 서북부]고통 당사자 하소연 '외면'…"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충남의 전력 자급률은 300%25가 넘는다. 논란 속에서도 화력발전소와 송전탑들이 추가 설립되는 이유는 수도권에 '더 많은 전기를 더 싸게' 공급하기 위함이다. 반면 산업폐기물은 충남으로 내려온다. 내쳐지는 수도권의 오염산업들은 충남의 값싼 들판을 찾아냈다. 최근 들어 미세먼지에 대한 국민적 관심사가 높아졌지만 정부 대책은 여전히 미흡하다. 해당 지역 주민 건강이나 마을공동체 붕괴 등 부작용에 대한 외면도 여전하다.

충남 서북부의 팽창은 지역의 화두다. 이른바 환황해권의 중심. 기존 산업기반 위에 교통망이 확충되고 각종 시설들이 들어선다. 하지만 도시 규모만큼 환경 정책은 따라오지 못한다. 미세먼지와 오존에 노출된 채 화학단지와 동거하는 주민들의 모습이 아슬아슬하다. 그런가하면 배로 불과 한 시간 남짓한 바다 건너편 중국 동해에서는 원자력발전소들이 무더기로 건설 중이다. 해수 흐름도 또 바람 방향도 중국 본토보다 한국이 훨씬 위험하지만, 이를 눈여겨보는 이들은 많지 않다.

국가와 도시의 '발전'을 위한 기회비용으로 치부하기엔 미래가 너무 어둡다. 충남 서북부 지역의 환경 문제는 이미 오래된 문제다. 하지만, 그 동안 개선된 게 별로 없다. 개선되지 않는다면 문제 제기도 계속돼야 하지 않겠는가. 지역 환경 문제를 폭넓게 짚어봤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부-수도권 에너지 전초기지…'강요된 희생'

1) 연간 1600명 조기사망에도 화력발전 더 짓겠다는 정부
① 사람 목숨보다 중요한 '값싼' 전기…'거꾸로' 정부
② 국가산업은 절대선(善)인가…귀 닫은 정부

2) 지역 이기주의라고요?…우리 말도 좀 들어봐 주세요
① '차별과 외면' 북당진 변환소…바뀌는 프레임 '왜'
② '고통의 대가' 발전세는 어디로 갔나

3) 오염산업들의 진출…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① 밀려오는 폐기물 그리고 오염산업들
②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이장님들은 왜 자살했나


2부-변하지 않는 성장의 그늘

4) 석유화학단지와 화력발전소, 철강단지가 한 곳에
5) 팽창하는 충남 서북부…환경 로드맵이 필요하다
6) 뱃길로 1시간…'눈 앞의' 중국 원자력발전소들

3부-근본 대책? 중요한 건 정부 '의지'

7) 오염물질 배출 총량제 확대 해프닝…정부, 대책 알고도 모른 척(?)

충남의 에너지 자급률은 300%가 넘는다. 필요량의 3배 이상을 생산하고 있지만, 정부는 당진과 태안, 보령과 서천 등에 화력발전소 9기를 추가 건립 중이다. 수도권에 보다 많은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서인데, 이 과정에서 건강과 생활 등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 현지 주민들은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 발전소 주변 사람들 = 발전소 인근 주민들의 체내 중금속 함유량은 타 지역 주민들보다 훨씬 많다. 충청남도와 단국대가 최근 보령발전소와 태안발전소 주변 지역 주민 150명을 대상으로 건강조사를 실시한 결과 체내 카드뮴과 수은, 비소 농도가 일반 지역민들보다 최대 2배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4년 충남도가 당진화력 주변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건강 조사에서는 기관지 천식과 폐렴, 피부염과 심전도, 중금속 오염 등에서 건강 이상이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주민들은 발전소 증설 등을 반대하지만, 이 같은 주장이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드물다. (사진= 신석우 기자)
그나마 검사 수준도 '아픈 현상'에 주목할 뿐 '왜 아픈지'에 대한 역학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석탄을 태우는 화력발전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초미세먼지가 발생한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하지만, 충남에는 대기오염측정망이 별로 없다. 2014년 기준으로 모두 10곳인데, 그나마 화력발전소가 위치한 보령시와 서천군에는 한 곳도 없다.

지난해 환경부의 대기 개선 사업 예산은 모두 1000억 원이 넘었는데, 이 가운데 수도권 지역이 860억 원으로 수도권 외 지방 전체 140억 원의 5배에 가까웠다.

충남 환경운동연합 유종준 사무처장은 "화력발전 과정에서 엄청남 초미세먼지가 발생하고 있지만, 제대로 된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 주민 의견이요? 그런 거 안 들어도 돼요 = 각각 2005년과 2006년 준공된 당진 화력발전소 5, 6호기는 건설 당시부터 인근 주민들과 당진시의 반대에 부딪힌 사업이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반대 여론이 상당히 높았는데, 발전소 측은 "7, 8호기까지만 마무리하게 해주면 절대 추가 건설은 않겠다"고 거듭 약속했고 "추가 증설이 불가피할 경우 당진군과 최초 계획부터 합의한다"고 협정서를 체결, 사태가 일단락됐다.

하지만 사 측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더 나아가 100만 ㎾급 9, 10호기 건설에 나섰다.

지역 환경단체와 당진시 등은 "초대형 발전소 건설로 주민들의 환경피해가 우려되는데다 아무런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9, 10호기 건설에 동의할 수 없다"며 강력 반발했지만, 사업은 진행됐다.

인접한 동부화력(현 당진에코파워) 1, 2호기 역시 주민과 당진시, 시의회, 환경단체, 당진시개발위원회 등 사실상 당진시 전체를 망라한 범시민대책위원회가 구성돼 반대했지만, 역시 원하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당진시 관계자는 "산업부에서 40개가 넘는 촉진법을 통해 일괄 승인을 하는 시스템"이라며 "당진 시민들이 20여 년 전부터 반대 집회 등 목소리를 냈지만, 제대로 받아들여진 적이 없다"고 말했다.

(사진= 당진환경운동연합 제공)
▲ 국가산업은 절대선(善)인가 = 정부가 주민 건강은 못 본 척, 반대 목소리는 못 들은 척할 수 있는 이유는 화력발전소 건립이 국가산업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국가 중요 사업이 일부 이해집단에 의해 좌우되거나 발목이 잡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제도의 당초 취지이지만, 건강과 재산권 등 삶의 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규모 사업 과정에서 당사자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방법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게다가 주민 달래기용 정부 약속마저 국가산업이라는 명목 하에 휴지조각처럼 버려지는 일들을 겪은 주민들에게 국가산업이란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무소불위 독재 권력에 지나지 않는다.

변질된 제도는 국민의 말에 귀를 닫았고, 힘없는 자치단체는 무기력함에 입을 닫았다.

삶의 질을 좌우하는 사업에서, 당사자들을 배제하는 국가산업이 과연 절대선(善)이기만 할까.

"충남에 9개의 화력발전소가 추가로 건립되는데, 충청남도가 할 수 있는 게 (사실상) 아무것도 없습니다. 미세먼지 걱정도 큰데 국가 전력기본계획에 포함되면 그걸로 끝입니다. 20년 넘게 지방자치 분권을 하면서도 넘지 못하는 벽입니다."

허승욱 충청남도 정무부지사의 말에서 자치단체와 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와 한계, 고민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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