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위안부 합의금 110억 원과 '욱일대수장'(旭日大綬章)

(사진=자료사진)
유흥수 주일대사는 올해 우리 나이로 79살이다. 그가 이달 말 일본 정부가 수여하는 '욱일대수장'(旭日大綬章)을 받는다. 욱일대수장은 일본 정부가 국가와 공공에 대해 공로가 있는 이들에게 수여하는 '욱일장' 여섯 종류 가운데 가장 높은 등급이다.

욱일(旭日)은 '아침에 떠오르는 밝은 해'를 뜻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군기(軍旗) 이름이 '욱일기'다. 훈장 이름도 묘하게도 군기 명칭과 똑같다. 유 대사는 5년 전인 2011년에는 한·일 양국 간 우호관계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대수장'보다 한 단계 아래인 '욱일중수장'을 받았다.

유 대사가 '욱일대수장'을 받게 된 공로는 '일본군 위안부 합의'로 보인다. 그는 지난 4월 일본 마이니치신문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말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정부 간 합의가 실현돼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갔다"고 말했다. 한·일 양국이 일본군 위안부 합의문을 발표한 직후에는 지인들에게 "할 일을 했으니 이제 떠나겠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

그러나 유 주일대사가 자신의 최대 공과로 여기는 위안부 합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한·일간 갈등을 해소하고 진전된 미래를 위해 일본이 한국에게 우리 돈으로 약 110억 원을 보상키로 한 것이다. 그 돈으로 위안부 지원을 위한 재단을 설립하고,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소녀상을 적절히 해결하고,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상호 비난·비판을 자제하기로 했다.


한·일 양국 간 위안부 합의문 타결의 실마리를 풀어낸 유 대사는 전형적인 보수우익 관료 출신이다. 1980년 전두환 군부시절 지금의 경찰청장에 해당하는 치안본부장을 지냈다. 불온한 운동권 대학생들을 강제 징집해 군대에 보냈던 '녹화사업'에도 관여했다.

지난 1월 '한일외교장관회담의 문제점' 긴급토론회에서 김복동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발언을 하던 모습.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1985년 전두환 대통령의 후광을 업고 12대 국회의원 선거에 민정당 공천을 받아 부산 해운대에서 당선돼 정계 입문했다. 그 후 14, 15, 16대 국회의원을 지내며 4선 의원이 됐다. 그 동안 한·일 의원연맹 간사장을 맡아 손꼽히는 지일파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노무현 정부시절인 2004년 정계 은퇴를 선언했지만 10년의 긴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박근혜 대통령이 77살의 노장을 불러내 주일대사로 발탁했다. 위안부라는 암초에 걸려 꼬일 대로 꼬인 한·일 관계를 풀어내라는 소임을 맡긴 것이다.

유 대사가 훈장을 받는다는 소식이 전해진 17일(현지시간) 프란시스 라데이(Frances Raday) 유엔(UN) 여성차별실무그룹 의장은 한·일 양국 정부 간의 일본군 성노예제에 관한 합의에 대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진실, 정의, 배상에 대한 권리를 부정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라데이 의장은 일본 정부가 출연하기로 한 110억 원에 대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개별 배상요구가 반영되지 않았다"며 "합의 과정에서 생존자, 지원단체들과의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진실과 정의를 추구해 온 수십 년간의 활동과 노력에 대해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고 피해자들의 권리를 약화시킨 것"이라고 지적했다.

위안부 피해자들과 관련 시민단체들은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정부가 체결한 합의문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피해 당사자하고는 어떤 협의도 하지 않은 채 이루어진 정부 간 합의는 무효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유 주일대사는 한·일 양국 간 위안부 합의안 타결을 이끌어낸 공로를 인정받아 29일 쯤 일본 정부로부터 '욱일대수장'을 받는다. 통상적으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또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상이 직접 수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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