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에는 두 인류학자가 남긴 방대한 문서가 공개되며 새로이 밝혀진 연구 활동과 삶에서의 경험들이 담겨 있다. 저자 로이스 W. 배너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두 사람의 서신과 서류철을 총망라한 평전을 엮어냈고, 최근 수십 년간 출간된 레즈비언 역사와 퀴어 이론서도 폭넓게 활용했다.
두 사람은 인종과 양성의 평등, 문화의 상대성을 옹호한 선구자였고, 서로가 서로에게 친구이자 연인, 사제(師弟), 마음의 의지처이기도 했다. 20세기 뉴욕 및 사모아, 뉴기니 등을 배경으로 그들이 함께했던 시대의 여러 학자들, 자유연애의 다양한 인간관계, 그 시대의 지적 풍토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저자는 20세기 초 문화인류학이 그린 청사진을 통해 인간의 사상, 행동의 의미를 심리적으로 파악하려 했던 위대한 두 여성 인류학자가 펼친 주장과 두 사람이 맺은 관계를 세심하게 정리했다.
저자 로이스 배너가 이 책의 주된 목표로 꼽는 것은 '젠더의 지리학'(geography of gender)이 두 사람의 삶에 미친 영향을 기술하는 것이다. 젠더의 지리학이란 두 사람이 정치적, 사회적, 직업적, 가족적, 개인적 인생의 과정에서 헤쳐나간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복잡한 지형을 뜻한다. 그리고 두 사람이 각자의 성 정체성을 결정하기까지 경유했던 심리적 행로 역시 포함한다. 빈틈없이 세밀하게 엮은 자료들을 통해 두 사람 인생의 상호 연관성은 물론, 두 사람이 우정과 욕망, 헌신, 불화의 범위를 다른 사람들에게 어디까지 확대했는지 파악할 수 있다.
마거릿 미드는 바너드 대학으로 편입하면서 솔직하고 활달한 태도로 주도권을 장악했다. 미드는 자신을 성 개혁 운동가로 묘사했다. 그 시기는 성적 반란의 시대였으며 자유연애 사상이 만연했다. 미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포도주다. 이 음식 저 음식에 따라 좋은 포도주를 가려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자신의 말마따나 그녀는 루서 크레스먼과 결혼 중에도 여러 여성들과 연애했고 그 이후에도 리오 포천, 그레고리 베이트슨과 결혼-이혼의 과정을 겪었다. 미드는 순간을 위해서 살았고 결혼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면서도 1922년 루스와 만난 이후부터 둘 사이는 점점 더 가까워졌고 2년 만에 연인으로 발전했다. 베네딕트는 "너의 사랑 속에서 행복할 때는 노래를 해. 우울할 때도 너의 사랑 때문에 세상이 여전히 살 만하고 말이야." 하고 자신의 깊은 감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미드 역시 "루스, 당신을 알게 된 일은 신이 존재함을 안 것과 같은 평화로운 축복이에요."라고 고백했다.
바너드 대학에서 수강한 사회과학 과목들, 특히 심리학이 미드에게 큰 영향을 끼쳤고 이때 미드는 이후 현지 조사에 도움이 될 장·단기 연구 방법 및 다양한 측정·검사법을 익힐 수 있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미드를 사랑했던 것만큼 미드 자신이 느끼는 부담도 컸다. 그녀는 바너드에 편입한 첫해부터 오른팔 신경염 및 구역질, 악몽에 시달렸고 동성애 관계를 가졌던 마리 블룸필드가 자살하면서 평생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러나 다행히도 미드는 4학년 때 한 수업에서 드디어 운명적으로 베네딕트를 만나게 된다. 이때 베네딕트는 미드와 학문적 교감을 나누었고 그녀가 세라노 족장에게 들었던 '문화는 흙으로 만든 컵'이라는 은유는 문화가 통합된 전체라는 통찰로 이어졌다. 미드는 베네딕트가 품었던 이 비유를 접하면서 인류학이 지성과 상상력을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 두 사람은 문화인류학이라는 학문에서 궤를 같이하게 된다.
두 사람은 원주민 보호주의와 인종 차별주의가 득세하던 때에 미국에서 최초로 이에 반대했고 '미국식 인류학'을 출범시킨 프란츠 보애스를 사사했다. 그러나 보애스를 포함하여 당시 남성 인류학자들 중에 페미니스트라고 할 만한 사람은 없었고 당시 부족사회들이 서구인 남성의 연구를 금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여성 인류학자에게 기대야 했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여성 사회과학자들이 사회사업 분야로 진출하는 데에 반해 베네딕트는 동료 남성 인류학자들에게 이론적 합리성을 존중받았기에 학계의 지성소에 '감히' 진입할 수가 있었다. 그녀의 학문 활동 초기에는 주로 남성, 즉 비전 퀘스트[영계(靈界)와 교류하는 부족사회 남성들의 의식]에 초점을 맞추었다. 베네딕트는 다른 여성 시인들과 달리 자신의 시편에서 남성적/여성적 측면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애썼고 인생과 학문에서도 그랬다.
1925년 미드는 사모아의 청소년에 대해, 베네딕트는 주니 족 사회에 대한 현지 조사 연구를 수행한다. 이 책에서 저자 로이스 배너는 데릭 프리먼의 '마거릿 미드와 사모아'에 대한 비판을 미드의 환경적·학문적 배경을 근거로 들어 조목조목 반박했다. 미드와 베네딕트는 서로의 작업을 읽고 비판하고 정리해주었지만 결정의 순간에 미드는 언제나 베네딕트를 외면하고 남성과의 결혼을 택했다. 이는 1920년대 후반에 미국 문화가 점점 더 동성애를 적대시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드는 처음부터 자신의 동성애 성향이 탄로 나는 것을 두려워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베네딕트는 마거릿과 대한 안정감과 신뢰가 필요했다. 베네딕트는 마침내 미드의 잦은 연애에 대한 질투를 넘어섰고 미드에게도 자신에게도 자유로운 곳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미드는 두 번째 남편 리오 포천과 함께 뉴기니의 아라페시 족과, 사람 사냥이 막 종식된 세픽 강 유역의 문두구모르 족 연구 조사를 떠났다. 온화한 아라페시 족과 난폭한 문두구모르 족을 조사하면서 그들의 행동을 문화적으로 설명하자는 기준을 잊지 않았다. 그녀는 모든 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 이론을 찾고자 했다. 뉴기니에서 돌아온 뒤에 이때의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한 보고서가 '세 부족사회에서의 성과 기질'이다. 여기서 미드는 베르다슈 및 동성애의 본질에 대해 베네딕트와 의견을 달리했다. 게다가 모든 입장을 아우르려는 과정에서 모순이 많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그녀가 각종 사상의 조류가 모인 20세기 중반을 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로이스 배너의 생각이다.
두 사람의 연구 성과가 두드러짐에도 당시 여자 교수진 처우는 형편없었고 베네딕트가 1930년대에 보애스를 대신해 실질적으로 인류학과를 이끌 때에도 (남성) 교수 전용 식당조차 들어갈 수 없었다. 이 책은 두 사람의 흥미진진하고 다면적인 인생 그리고 연구 업적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두 사람이 여성 학자로서 받은 불평등한 대우를 결국 어떻게 이겨냈는지 그 과정을 따라간다.
책 속으로
자유연애를 바탕으로 영성에 몰두하는 청춘의 신낭만주의와, 여성들의 낭만적 우정이라는 빅토리아시대의 성별 사회화 제도 속에서 그 타협이 가능했다. 그 속에서는 단란하게 함께한다는 정서가 육체관계보다 더 중요했다. 루스와 나오미가 나오는 성경 이야기도 그렇고, 쇼니 족 여자에 대한 에반젤린의 사랑을 영적 합일감으로 재구성한 루스 베네딕트의 이야기도 그렇다. 마거릿과 베네딕트의 사랑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마음 깊숙한 곳에 존재했다.
- 441쪽
사실 두 사람은 이미 그들의 관계를 이전과 다르게 설정한 상태였다. 그것은 성적 개입이 없는 관계였다. 두 사람은 여전히 서로에게 헌신했고, 함께 구축한 정신적·지적 유대로 단단히 묶여 있었다. ……베네딕트는 마침내 질투를 넘어섰다. 그녀는 마거릿에게 자유를 주면서 자신도 자유를 얻는 곳으로 나아갔다.
- 457쪽
당대 또는 우리 시대의 기준에 비추어 볼 때 베네딕트가 페미니스트였을까? 그녀의 얘기 속에서 여자들은 억압받는 존재이다. 베네딕트는 자본주의 아래 남자들이 아내들을 소유하고 보여주는 대상물로 여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썼다. 그녀는 모계 사회에서도 예외 없이 남자들이 권세를 누린다고 언급한다. 결국 모든 문화에서, '남자들의 특권'이 여자들의 권리보다 '더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그녀의 얘기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권위를 누린다. 그녀들은 단순한 희생자가 아닌 것이다.
- 496쪽
베네딕트는 인종과 젠더 사이에 유사점이 있을 수 있음을 잘 알았다. 그녀는 에임럼 샤인펠드에게 보낸 편지에서 소수 집단은 자기들이 받는 억압을 내면화하고, 나아가 스스로를 억압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아주 정교하고 세련된 주장이다. 페미니즘 및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가들도 아주 최근에야 이런 입장을 비교적 분명한 형태로 개진했음을 상기해보라.
- 625쪽
베네딕트는 일본인들의 기본적인 심리 범주로 수치심과 죄책감에 초점을 맞춘다. 그녀는 형태주의적 접근법을 수정해 사용하는데, 이는 랠프 린턴과 그레고리 베이트슨이 개발한 정교한 사회학 모형들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기도 했다. 베네딕트는 신분, 계급, 성별, 나이의 위계에 헌신하는 것이 일본 문화의 핵심 요소라고 생각했다. 일련의 책임 교환과 위계제 속에서 헌신하는 것으로 일본 문화의 패턴이 형성된다는 얘기인 셈이다.
- 668쪽
로이스 W.배너 지음/ 정병선 옮김/현암사/816쪽/3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