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국책은행 자본확충'이란 이름으로 최대 12조원의 공적자금이 대우조선 등의 구조조정을 위해 투입될 예정이다. 이중 절반이 대우조선에 들어간다 해도 국민 한사람이 11만6천원씩을 추가로 내는 꼴이다.
국민이 혈세로 지원한 이 천문학적 규모의 공적자금은 대우조선에서 눈먼 돈이었다.
영업부실을 덮기 위해 무려 1조8천억원 규모의 장부 조작 사실이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났다. 일개 차장급 직원은 회삿돈 180억원을 횡령해 구속됐다. 기업부실로 공적자금을 지원받은 와중에도 정치권, 정부, 산은의 낙하산 인사들은 억대의 연봉과 함께 차량과 비서 등의 각종 특혜성 지원을 챙겼다.
국민의 피땀으로 조성한 공적자금으로 돈잔치를 벌인 셈이다. 도덕적 해이를 넘어, 흉기를 들지 않았을 뿐 강도나 다름없다.
이런 터무니 없는 일이 벌어지는 동안 당사자인 대우조선은 물론,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대주주 산업은행, 금융당국 어디 한곳 기능이 제대로 작동한 곳이 없다.
문제는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이 투입된 회사에서 드러난 총체적 부실과 부조리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진짜 실체와 책임 소재는 전혀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것.
감사원이 밝힌 것은 1조8천억원의 분식회계 등 이미 드러난 문제들을 확인한 수준에 그쳤다. 누구의 지시에 의한 것이며, 회계법인과 산은은 왜 방조, 묵인했는지 밝혀내지 않았다. 더구나 이런 회사에 4조2천억원의 거액을 지난해 또 다시 투입하기로 결정한 과정과 배경은 감사 대상에 아예 포함되지도 않았다.
7조원의 공적자금 투입에도 불구 18조원의 부실을 쌓은 이 엄청난 사건에 대해 감사원이 물은 책임은 전직 산업은행장에 대한 공직진출 제한과 몇몇 실무진에 대한 경징계로 그쳤다.
국민이 납득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검찰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의사결정 책임이 있는 정부 고위관계자, 이와 관련돼 있는 전직 산업은행장 등을 상대로 제대로된 수사를 기대하기는 처음부터 어렵다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따라서 국회 동의를 얻어 혈세가 투입된 사안인 만큼 국회가 진상 규명에 나서야 할 의무가 있다는 요구가 확산되고 있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대우조선과 산업은행 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주도했다고 생각되는 청와대와 경제정책 당국자들에 대한 책임문제는 감사원이나 검찰수사 대상이 되기 어렵고, 일종의 꼬리 자르기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청문회나 국정조사를 통해 대우조선과 산은에 대한 부실 책임을 규명하고, 특히 당국을 상대로 공적자금 투입에 대한 의사결정 과정과 효과에 대한 판단 등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런 가운데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도 17일 비대위 회의에서 산업은행에 대한 국회 청문회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대표는 "산은이 산업 구조조정에 대한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느냐에 대한 국민적 의심이 늘고 있다"면서 "모든 사항에 대해 청문회에서 밝히고 구조조정 과정에서 산은의 역할을 어떻게 정립할 지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우조선 부실 문제에 대해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조치가 나오지 않는다면 구조조정의 추진동력 자체가 상실될 수 있다. 부실의 책임 규명과 처벌이 없는 상황에서 향후 국책은행 자본확충이 원활하게 추진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자금을 조달하려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들의 의결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의 국민여론을 고려하면 명분 찾기가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