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의 부패와 부조리는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해도 상상을 초월한다. 경영정상화를 위해 혈세로 지원한 공적자금 7조원은 한마디로 눈먼 돈이었다.
정치권과 정부, 산업은행 출신 낙하산 인사들은 고문 등의 직책을 꿰차고, 억대의 연봉과 함께 의료비, 자녀 학자금, 고급 차량 등을 제공받았다. 40대 차장급 직원은 지난 8년 동안 자그마치 180억 원을 횡령하는 황당한 사건이 경찰 수사로 드러났다. 여기에 무려 1조5000억 원에 이르는 분식회계가 감사를 통해 적발됐다.
이런 엉터리 회사를 지원하기 위해 '국책은행 자본확충'이란 이름으로 또 다시 최대 12조원의 국민 혈세를 투입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고, 과연 옳은 일이냐는 회의론도 부상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이 이지경이 된데는 대주주이면서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의 책임이 절대적이다. 회사는 그렇다 하더라도 산은이 자금을 지원하면서 관리감독만 제대로 했더라면 애초에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감사원 감사에서 대우조선해양은 1조5000억 원대에 이르는 분식회계를 저지른 사실이 밝혀졌다. 해양플랜트 사업의 공사진행률을 과다산정하는 방식으로 지난 2013년 영업이익 4407억 원과 당기순이익 3341억 원을 실제보다 부풀려 계산한 것. 또 2014년에는 영업이익 1조 935억 원과 당기순이익 8289억 원을 부풀렸다.
이 과정에서 산은은 당연히 적용해야 할 '재무 이상치 분석 시스템'을 적용하지 않았다.
감사원이 이 시스템을 활용해 당시의 회계 상태를 분석한 결과 대우조선해양은 최고 위험등급인 5등급으로 나타났다. 산은이 이 시스템을 적용하지 않음으로써 사전에 분식회계를 적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전·현직 산은 출신 이사들은 아무 의견도 없이 찬성에 손을 드는 거수기 역할만 했다.
대우조선의 사업 타당성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돈을 지원한 것도 손실을 키운 원인이었다. 일례로 대규모 영업적자에 따른 유동성 부족으로 산은의 자금 지원을 앞둔 시점에서 수백억 원의 격려금을 지급하도록 방치했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이후 대우조선해양에는 산은에서 파견한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자금흐름을 관리, 감독하고 있었지만 마구잡이 자금 지원에 전혀 제동을 걸지 않은 것이다.
'재무이상치 분석시스템'을 왜 적용하지 않았는지, 제대로 된 타당성 검토 없이 자금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고의성이 있었는지, 또 이 과정에서 불법적인 거래는 없었는지는 검찰수사 등을 통해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부실 책임자에 대한 감사원의 문책이 경징계로 끝난 것도 문제다.
금융계에선 감사원이나 금융감독원 차원에서 대우조선 부실의 실체를 밝히고 책임자를 문책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산은이 자금 투입의 창구 역할을 했지만 자금지원 등의 의사 결정 과정에서 독자적으로 행할 수 있는 부분은 사실상 없다는 것. 정부 최고위 인사들의 의지가 반영된 사안인데 이를 정부 기관이 스스로 파헤쳐 문책을 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기대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우조선 지원에 대한 의사결정은 이른바 서별관회의에서 이뤄졌으며 산업은행은 청와대와 기획재정부, 금융당국의 들러리였을 뿐이라고 말했다. 지난주 사실과 다르게 전달됐다고 해명하기도 했지만 산은 내부에서는 공공연한 사실로 통한다.
분식회계 등과 관련해 검찰이 대우조선해양을 수사하고 있지만 이 또한 부실의 실체에 접근하는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란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가장 책임이 큰 정부 고위관계자나 전직 산업은행장 등에 대한 수사가 쉽지 않다는 의미다.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는 "대우조선 문제의 진실을 규명하려면 결국 청와대 관계자, 정부 고위 정책 관계자의 책임 문제, 의사결정 과정에서 정책적인 판단 외에 로비 등의 범죄 혐의가 있는지 등을 수사를 해야 하지만 검찰 수사는 꼬리 자르기식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며 "따라서 국회 차원에서의 청문회나 국정조사 같은 것이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