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KEB하나은행의 박종천 감독과 구단 관계자들은 지난 여자프로농구 2015-2016시즌 기간에 목과 어깨를 꼿꼿이 펴고 다녔다. 2012-2013시즌 창단 후 줄곧 하위권이었던 팀이 돌풍을 일으켜 리그 2위로 도약했기 때문이다.
돌풍의 중심에는 한국땅을 밟은 첼시 리가 있었다. 놀라운 활약을 펼쳤다. 첼시 리는 신인왕과 베스트5 등 시상식에서 6관왕을 차지했다. 첼시 리는 할머니의 국적이 한국으로 알려져 외국인선수가 아닌 국내선수 자격으로 한 시즌을 뛰었다. 하나은행이 누린 전력 상승 효과는 대단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희대의 사기극이나 다름없었다.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는 15일 첼시 리가 한국여자농구연맹(WKBL)과 법무부에 제출한 자료 3건 중 2건이 위조됐다고 밝혔다.
첼시 리는 한국계가 아니라고 잠정 결론을 내린 것이다.
첼시 리가 제출한 서류 중 플로리다주에서 발행했다는 본인의 출생증명서, 미 국무성에서 발행했다는 아버지의 출생증명서는 진짜 서류가 아니라 위조된 것으로 파악했다.
또 검찰이 주한미대사관을 통해 확인한 결과 첼시 리가 아버지라고 주장한 인물은 실존 인물이 아니었다.
한국계가 아닌 선수가, 외국인선수로 등록됐어야 하는 선수가 국내선수 자격으로 한 시즌 여자농구 무대를 누빈 것이다.
심지어 대한농구협회는 첼시 리를 여자농구 국가대표팀에 합류시키기 위해 특별귀화를 추진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첼시 리의 서류 위조가 들통났다.
서류 검토 과정에서의 헛점이 불러일으킨 사고다.
하나은행이 첼시 리의 영입을 검토했을 당시 일부 구단은 서류 조작 의혹을 제기하며 반발했다. 이미 영입을 시도했던 구단들이 첼시 리의 조부모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어떠한 서류도 구하지 못했다며 신분의 불확실성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은행은 영입을 강행했고 WKBL도 검토 끝에 첼시 리의 출생 관련 서류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첼시 리를 앞세워 정규리그 2위를 차지하고 챔피언결정전까지 진출한 하나은행 때문에 한 팀은 포스트시즌 진출 티켓을 빼앗겼다. 우승 도전이 목표였던 3위 청주 KB스타즈는 첼시 리의 하나은행에 막혀 결승전에 오를 기회를 놓쳐야 했다.
하나은행 구단은 15일 보도자료를 내고 문서를 위조한 첼시 리 측에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문서 위조가 최종 판명난다면 장승철 구단주가 사임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하나은행은 "금일 검찰에서 발표한 첼시 리의 문서 위조사건으로 인해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향후 첼시 리와 첼시 리 에이전트에 대해 강력한 법적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이 사건이 최종적으로 문서 위조로 판명된다면 장승철 구단주는 이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임할 방침이다"라고 발표했다.
신선우 총재가 수장으로 있는 WKBL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아무리 면밀히 서류를 검토했다고 하더라도 부정선수의 출전을 최종 승인한 것은 연맹의 몫이었다.
WKBL은 지금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WKBL 관계자는 "일단 하나은행의 설명과 입장을 들어볼 계획이다"라며 "빠른 시일 내에 재정위원회를 열어 문서 위조라는 최종 결론이 나올 경우를 대비해 징계 수위와 기록에 대한 인정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WKBL은 선수등록 관련 서류에 대한 심사를 강화하고 이사회를 개최해 해외동포선수 규정을 전면 재검토할 예정이라고 향후 계획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