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1500대 1의 경쟁률을 뚫어낸 무시무시한 신예는 천진난만하기만 하다. 언제 박찬욱 감독과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냐는 듯이. 멋쩍은 웃음을 띤 얼굴은 그저 꿈꾸는 소녀처럼 해사하기만 했다.
"이런 큰 프로젝트는 처음이라 좀 힘들었어요. 영화도 제대로 못 봤는걸요. 원래 선배들도 연기한 작품을 많이 보지를 못한다고 했는데 저는 그냥 눈둘 바를 모르겠더라고요. 프랑스 칸에서는 그랬고, 한국에 와서 제대로 보니까 영화는 재밌었어요. 연기는 엉망진창이죠."
신문방송학과에 재학 중인 김태리는 대학교에서 연극 동아리에 들면서 본격적으로 배우의 꿈을 키웠다. 까딱 잘못했으면 평생 연기와는 인연을 맺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가씨' 오디션에 도전하기까지는 많은 고민과 생각을 거듭했다.
"제가 원래 그렇게 생각이 많은 스타일은 아닌데 많이 고심했어요. 걸리는 부분도 있었지만 하고 싶다고 결론을 내렸고 그렇게 만나게 됐어요. 과정은 평범했어요. 일단 오디션용 낱장 대본을 읽어보고, 각생 중이던 '아가씨' 대사를 주시더라고요. 일상적인 대화 같은 것도 많이 나누고…. 될 거라고는 생각을 안했는데 운이 좋았던거죠. 제가 원래 긴장도 많이 하는 성격이라 될 것 같다는 생각이나 잘해야겠다는 생각은 안했거든요. 그냥 욕심내지 않고 담담하게 제 몫을 했던 것을 좋게 보셨나봐요."
촬영 전, 프리 프로덕션 기간에는 박찬욱 감독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캐릭터에 대한 연구를 전문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장면이 나오면 열어 놓고 의견을 나눴고, 대사 리딩까지 함께하며 어려운 부분은 함께 풀어 나갔다. 그렇게 사전 준비가 철저해서였을까. 현장은 그야말로 순조롭게 흘러갔다.
"비교치가 없어서 그렇긴 하지만 확실히 현장에서 소란스러운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너무 잘 굴러갔고, 문제가 발생하는 일이 없다 보니 조용했어요. 워낙 준비가 철저했고, 그 단계가 전문적이었으니까 그랬던 것 같아요."
"제가 못해서 누가 될까봐 불안한 점은 계속 있었지만 너무 좋았고, 행복했죠. (김)민희 선배한테는 나름대로 치근덕대고, 친한 척도 했어요. 선배는 항상 분장실에 작은 책상과 의자를 준비해서 자기 공간을 만들어 놓거든요. 거기에 시나리오나 콘티나 빵, 커피 이런 것들이 올려져 있고요. 그 공간에 있는 걸 좋아해요. 저는 언니 안색을 살피다가 뭐 필요한 게 없나 살피고, 빵 떨어지면 빵 갖다주고 혹시 목이 말라 보이면 음료 같은 거 챙기고 그랬어요."
여성과의 사랑을 표현하는데는 특별히 어려움은 없었을까. 김태리는 고개를 저었다.
"다들 아는 감정이잖아요. 한번쯤은 겪어봤던 감정들이고, 다들 공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원래 편견은 없었어요. 세상에 얼마나 많고,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맞지 않다. 그렇게 규정지을 수가 없다고 생각해요."
지금 충무로는 여성 배우들을 위한 영화가 가뭄인 상태다. 그 가운데에서도 박찬욱 감독은 유독 여성 배우들이 극을 이끌어 나가는 영화를 많이 제작한 감독 중의 하나다.
"감독님이 여성이 주체가 되는 영화를 많이 만드셨죠. 저는 감독님이 굉장히 깨어있고, 열려있는 분이라고 느꼈어요. 가정적이시고, 여성적인 면도 있죠. 저는 '아가씨'가 두 여성의 성장영화라고 생각해요. 히데코는 억압받던 세계를 벗어나 그 세계를 전복해 정말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세계로 나아간 것 같고, 숙희 같은 경우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는 숙명적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개척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