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교 배구계 관계자들은 과거 대부분 팀이 20명에 가까운 대규모 선수단을 이끌고 대회에 나섰다고 회상한다. 하지만 요즘은 교체 선수가 1, 2명에 불과하거나 아예 없는 팀도 대회에 출전하고 있다. 배구선수를 꿈꾸는 학생들의 수가 줄면서 실력 있는 선수를 데려오려는 스카우트 경쟁은 날로 심화하고 있다.
중고등 선수의 수급 부족은 프로배구 V-리그의 수준과도 직결된다. 선수 부족 문제가 계속될 경우 V-리그의 질적 수준 저하는 물론, 각 구단의 영입 경쟁도 비이성적으로 과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한국배구연맹(KOVO)이 내린 결론이다.
이를 위해 KOVO는 다른 프로종목의 사례를 빌려 연고지 우선 지명제를 추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유소년 배구교실과 배구대회를 열고 배구의 저변 확대는 물론, 유망주 발굴과 육성에 나섰다.
지난 2012년 9월 시작된 KOVO의 유소년 배구교실은 2016년 현재 전국 40개교에서 9000여명의 청소년이 참여하는 규모까지 성장했다. KOVO는 단순히 배구교실에 그치지 않고 매년 두 차례 전국대회를 열어 ‘한국 배구의 미래’의 발굴에 적극 힘쓰고 있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다. 지난 8일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상지초등학교에서 열린 유소년 배구교실 공개수업에는 다른 학교에서 수업하는 기존의 강사와 함께 유소년 배구교실에 관심 있는 인근 지역 학교 관계자가 대거 참석했다.
이날 공개 수업은 과거 V-리그 여자부 현대건설과 한국도로공사에서 활약했던 이진희 강사가 상지초등학교 4학년 기쁨만 학생들에게 배구의 기본기 중 하나인 서브를 교육하는 내용이었다. 4학년부터 3년간 배구를 배우는 학생들이라 아직은 어색하고 서툴렀지만 눈빛만큼은 살아있었다.
유소년 배구교실은 유망주 발굴이라는 주된 목표 외에도 선수들의 은퇴 후 진로 개발에도 새로운 ‘길’이다. 이진희 강사 외에도 국가대표 라이트 출신의 나혜원 등 상대적으로 여자선수의 관심이 많다.
3년 전부터 유소년 배구교실 강사로 활동하는 이진희 강사는 “많은 선수가 은퇴 후 진로가 뚜렷하지 않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은퇴 후 대학을 다녔지만 졸업하고 나니 미래가 불투명해 고민이 컸다”면서 “지도자 경력이 없는 상황에서 유소년 배구교실을 통해 어린 학생들에게 배구를 가르치는 보람이 있다”고 소개했다.
실제로 유소년 배구교실을 통해 배구에 입문한 학생들의 반응도 좋다. 이날 공개수업에 참여한 상지초등학교 4학년 기쁨반 류세은 어린이는 “처음 배구를 할 때는 쉽지 않았지만 어려워도 꾸준히 노력하면서 이제는 정확하게 공을 받고 때릴 때 재미를 느낀다. 주말에는 집에서도 부모님과 배구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칫 ‘한국 배구의 미래’를 위한 투자는 결과도 얻지 못한 채 사장될 위기다. 그동안 문화체육관광부의 스포츠토토 지원금으로 전액 운영됐던 유소년 배구교실은 지금까지 매년 평균 5억원의 예산이 필요했다. KOVO는 미래 선수 자원 발굴을 목표로 꾸준히 사업을 확대했고, 이제는 전국적으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문체부가 스포츠토토 지원금 체계를 개편하며 인건비가 사업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유소년 배구교실의 지원이 사실상 끊겼다. 연간 5억원 이상의 예산이 필요한 사업을 중단할 수 없는 KOVO는 문체부와 남녀부 각 구단에 협조를 요청했다.
스포츠토토 지원금을 프로스포츠 활성화 지원에 사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문체부에 유소년 배구 발전이 V-리그의 발전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주장했다. 각 구단에도 유소년 교육 사업 투자 비용이 구단의 미래와 맞닿아 있지 않은 현 상황에서 벗어나 연고지 우선지명제도의 도입을 추진하는 등 적극적인 투자를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지금까지 유소년 배구교실에 필요한 용품을 지원하는 수준이었던 V-리그 남녀부 각 구단은 KOVO의 지원 요청에 대체로 긍정적인 답변을 내놨다. 선수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만큼 ‘흙 속의 진주’를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각 구단을 움직이게 했다. 하지만 여전히 소수의 구단은 부정적인 입장이다. 유소년 배구교실에 투자해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둘 것인지 불분명하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배구 인프라 확충과 잠재적인 팬층 확대를 목표로 하는 유소년 배구교실이지만 분명 부가 효과도 있다. 5년간 이어진 KOVO의 유소년 배구교실을 통해 동호인 선수에서 엘리트 선수로 성장한 사례가 벌써 나오고 있다. 지난 5년간 무려 61명이 대한배구협회에 등록을 마쳐 실제 배구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KOVO 관계자는 “초반에는 5~6명 수준이던 선수 등록이 3년 차부터 크게 늘었다. 유소년 배구교실을 통해 선수 자원을 확대하는 효과를 기대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