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부터 불거진 폐지설에 "월권"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적극 부인하던 방통위가 하루도 채 안돼 "여러 안 중에 검토중"이라는 말 바꾸기식 대응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던 와중에 내놓은 입장 표명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애매하기 짝이 없다는 평가와 함께, "시장과 소비자들의 혼란만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특히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의 최대 성과이자 수혜자인 알뜰폰과 중저가 단말기 시장은 정부 입만 바라보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지원금 상한제가 폐지되면, 낮은 보조금 속에 성과를 보여온 알뜰폰 등은 가격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조변석개 방통위, 애매한 입장 반복에 알뜰폰·중저가 단말기 시장은 '혼란'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날 "휴대전화 지원금 상한제 관련 정책은 단통법 관련 조항과 이동통신시장의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논의·결정하는 사안"이라며 "구체적인 방향은 정해진 바 없다"고 거듭 밝혔다. 그러면서 "현재 실무적 차원에서 개선 방안을 검토해 왔고 의견 수렴, 논의 등을 거쳐 정책 방안을 검토해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지원금 상한제는 현행 단통법의 핵심 조항이다. 방통위나, 상한제 폐지설의 근원지로 알려진 청와대 등의 뜻대로, 고시를 개정해 지원금 상한을 출고가 이하 수준까지 올린다면, 단통법은 사실상 20개월 만에 폐지되는 셈이다.
이에 따라 이통사의 지원금 경쟁이 다시금 촉발될 것이란 우려와 함께 규제 완화에 따라 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란 기대가 서로 엇갈리고 있다.
특히 알뜰폰 업계는 큰 혼란에 빠진 모습이다. 알뜰폰 업체들은 지난 2014년 10월 단통법 시행으로 알뜰폰 출범 이후 최대의 성과를 냈다. 단통법은 시행 초기부터 최근까지도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단말기 지원금이 낮아지면서 중저가폰이 확산되고 알뜰폰 가입자도 지속적으로 늘면서 가계 통신비 인하 등의 성과를 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원금 상한제가 폐지되면 80만원을 호가하는 최신 프리미엄 스마트폰 등 모든 단말기에 대한 보조금을 재고물량과 제조업체 및 이통사의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책정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지원금 상한제 폐지는 그간 이통사들의 과열 경쟁을 막았던 족쇄를 풀어, 최신폰이나 인기 단말기에 보조금의 집중적 배치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단통법 시행 전처럼 공짜폰도 얼마든지 가능해진다.
반면 중고폰, 구형 모델에 기반한 알뜰폰 시장은 결국 몰락할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고가 단말기 시장을 합리적으로 재편했던 중저가폰 시장 역시 침체될 전망이다.
알뜰폰 업계 한 관계자는 "열악한 알뜰폰 업체에 고가 단말기 수급과 지원금 배정은 꿈도 못꾼다"면서 "사실상 공짜폰 시대가 다시 온다면 알뜰폰에는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 마케팅 과열, 가계 통신비 증가로 이어질 것…20%25요금할인제 없어질 수도? 부작용 '우려'
지원금 상한제가 유명무실해지면 이동통신 시장이 혼탁해질 가능성 또한 제기되고 있다. 이통3사의 과열 경쟁이 촉발돼, 서비스 경쟁보다는 가입자를 끌어모으기 위한 지원금 경쟁이 성행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마케팅 과열로 인한 가계 통신비 증가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통사도 영업 전략을 다시 짜야한다. 단통법 시행 뒤 "지원금 상한제로 체감 통신비는 오히려 증가했다"는 소비자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이통사들은 데이터 특화·연령별 특화 등 서비스들을 대거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지원금 상한제가 폐지되면 이들 서비스와 각종 요금제도 다시 손봐야하는 셈이다.
지원금에 상응하는 요금할인제(선택약정제도) 개편도 불가피하다. 현행 단통법에는 이통사를 통해 단말기를 구입하지 않는 고객에게 20% 요금할인 혜택을 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통신사와 단말기 제조사가 함께 부담하는 공시지원금과 달리, 요금할인제는 전적으로 통신사 몫이다. "보조금 경쟁을 벌일수록 이통사들은 요금할인제에 큰 부담을 느껴, 지원금 상한제가 폐지돼도 쉽게 보조금을 올리진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