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법조계와 정치권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롯데는 지난 1987년 서울시로부터 송파구 잠실에 있는 부지를 매입한 후 33층 규모의 호텔과 백화점을 신축하려 했으나 번번이 정부의 반대에 부딪혔다.
112층(555m 높이) 규모의 초고층 빌딩을 짓기로 계획을 바꾼 롯데는 다시 정부에 승인을 요청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제2롯데월드는 신격호 총괄회장의 '숙원 사업'이었기에 롯데 측은 인허가에 더욱 집요하게 매달렸다.
이 과정에서 실제로 롯데 측이 정·관계 로비를 시도한 정황이 법원 판결을 통해 확인됐다. 서울고법 등에 따르면 변호사 A씨는 제2롯데월드의 사업시행사인 롯데물산으로부터 정·관계 로비 대가로 1억여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기소돼 지난 2010년 징역형이 확정됐다.
정치권에 연줄이 있는 A씨는 지난 2007년 4월 롯데물산 사무실에서 당시 롯데물산 사장이던 강모씨와 이사 김모씨를 만나 "제2롯데월드 신축 인허가와 관련한 심의가 통과되도록 정·관계에 로비를 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1억여원을 받았다.
당시 제2롯데월드 신축안은 정부 간 이견을 중재하던 행정협의조정위원회의 심의를 받던 상황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수장으로 있던 서울시는 건축을 허용하자고 주장한 반면, 국방부는 비행안전 문제가 걸려 있어 고도제한이 필요하다며 반대했기 때문이다.
의견 대립 끝에 안건이 행정협의조정위로 넘어오자 롯데 측은 A씨를 통해 조정위원과 정·관계 인사들을 상대로 로비를 시도했지만, 같은 해 7월 조정위가 '불허' 결정을 내리면서 로비는 결국 불발로 끝났다.
이때 A씨와 함께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이사는 무죄를 선고 받았다. 김 전 이사는 "롯데물산에서 로비 자금을 줄 수 없으니 하도급 업체로부터 미리 자금을 당겨쓰고 나중에 공사를 하도급 주면 된다"고 말했다는 등의 이유로 죄가 성립되지 않아 처벌을 면했다.
A씨가 롯데물산과 하도급 업체로부터 받은 수억원을 실제 정·관계 인사들에게 전달했는지 여부는 당시 검찰 수사 대상이 아니어서 밝혀지지 않았다.
'초고층 건물을 세울 경우 비행안전에 지장을 초래한다'며 20년 간 줄곧 반대를 외치던 국방부는 돌연 입장을 바꿔 롯데 편에 섰다. 서울공항 동편 활주로 방향을 3도 변경하고, 그 비용 등을 롯데 측이 부담한다는 조건이 붙었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민주당 안규백 의원 등은 서울공항 비행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정부의 검증용역 결과에 대해 "검증용역기간이 15일에 불과했고, 중간보고서도 8일 만에 나왔다"며 졸속 심사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때부터 제2롯데월드 신축은 급물살을 탔다. 지난 2010년 6월 서울시 건축심의를 통과한 데 이어 넉 달 후 관할구청인 송파구로부터 최종 승인을 받은 제2롯데월드는 첫 삽을 뜬 지 6년 만인 오는 연말 완공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13년 서울 도심 건물에 헬기가 부딪치는 사고가 발생한 데 이어 제2롯데월드 공사장과 그 주변에서 사고가 잇따르자 초고층 건물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고, 롯데가의 경영권 분쟁까지 터지면서 여론은 악화됐다.
롯데 측이 인허가 과정에서 이 전 대통령과 가까운 장경작 전 사장을 롯데호텔 사장에 앉히고, 그룹 정책을 결정하는 정책본부의 고위 임원 자리를 이 전 대통령의 고려대 인맥으로 채웠다는 소문이 도는 등 유착 의혹도 제기됐지만 국정조사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과거 롯데 측이 인허가 과정에서 최소 한 차례 로비를 시도했다는 점이 이미 드러난 이상 이명박 정권 당시 정·관계 인사들에 대한 수사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행정협의조정위와 국방부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돌연 입장을 바꾼 배경이 석연치 않은 만큼 허가 결정을 내린 최종 책임자가 누구인지도 규명이 필요한 부분이다.
검찰 관계자는 "롯데물산은 지난 10일 압수수색 대상에서 빠져 있지만, 인허가 과정에서 (금품 로비가 오갔다는) 단서가 나오면 (당연히) 살펴볼 것"이라며 당시 건축 승인을 해준 이명박 정권 실세들을 사실상 정조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