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뒤흔든 '이자겸의 난'은 이자겸이 일으킨 게 아니다?

(사진=KBS 제공)
한국사 교과서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이자겸의 난'. 이자겸이 누군지는 자세히 몰라도 그가 난을 일으켰다는 사실은 어렵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난을 일으킨 장본인은 이자겸이 아니라고 한다.


12일(일) 밤 9시 40분 방송되는 KBS 1TV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이름은 익숙하지만 진실은 흐릿한 이자겸의 난을 파헤친다.

이자겸은 왕을 능가하는 권력을 휘두르던 고려 귀족이다. 문종·순종·선종·헌종·숙종·예종·인종까지 일곱 왕, 80여 년간 외척으로서 권세를 누리던 인주(仁州) 이 씨 가문이다. 그 가문이 누린 전성기의 중심에 바로 이자겸이 있다.

이자겸은 고려 16대 왕 예종의 장인이며, 17대 왕 인종의 외할아버지이자 장인이기도 하다. 왕실에 세 딸을 시집보내고 무려 '삼겹 장인'이 된 셈이다.

그는 자신의 처소를 의친궁이라 칭하고, 생일을 인수절이라 불렀다. 스스로 국공에 올라 왕태자와 동등한 예우를 받기도 했다.

기세등등하던 이자겸은 '왕(王)' 씨가 아닌 '이(李)' 씨가 왕이 된다는 '십팔자(十八子) 도참설'을 신봉하며 그 야심을 거북이에 새겼다고 한다. 강원도 원주시 법천리에 남겨진 거북 석상의 등에 가득한 '임금 왕(王) 자'는 이자겸과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고려 최고의 문벌 귀족인 이자겸의 집에서는 사방에서 모여든 선물로 수 만근의 고기가 썩어났다고 전해진다. 남의 토지를 강탈하고 종들을 풀어 백성들의 수레와 말을 빼앗아 자기 물건을 실어 나르는 등의 횡포도 자행했다.

이자겸 집안의 권세에 눌려 위엄을 잃은 왕은 이자겸을 몹시 미워했다.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외손자인 인종마저 외할아버지 이자겸을 제거하기로 결심한다.

이에 따라 1126년 2월 밤, 인종의 은밀한 지시를 받은 군사들이 이자겸 일파를 기습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섣부른 거사는 실패한다. 이로 인해 인종은 왕궁을 잃고 이자겸의 사저로 들어가게 된다.

행동거지와 식사마저 자유롭지 못하게 된, 사실상 유폐된 인종은 이자겸의 오른팔인 척준경을 포섭하려는 계책을 세운다.

마침 이자겸 집안의 종과 척준경의 종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고, 이 일로 두 사람 사이에는 갈등이 싹튼다. 이때 인종은 척준경에게 이자겸 일파를 공격하라는 편지를 보낸다. 과연 척준경은 이자겸과 인종 가운데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고려 사회를 통째로 뒤흔든 외척 이자겸의 실체가 역사저널 그날 '이자겸, 외손자에게 기습을 당하다' 편에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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