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 아니면 굴복…한국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훼손되는가

[6월민주항쟁 29주년 세미나 ①] "모호한 '가치정치' 갈등만 부추겨"

1987년 6월,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반독재·민주화를 열망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박정희·전두환 정권으로 이어진 26년 군사독재의 악순환을 끊고,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6월민주항쟁이죠. 10일로 6월민주항쟁이 29주년을 맞았습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지난 8일과 9일 '2016 민주주의 국제연대 세미나'를 열어 이를 기념했죠. 6월민주항쟁으로 얻어낸 우리네 민주주의의 성과와 과제는 무엇일까요? 그 실마리가 될 세미나의 주요 발표 내용을 전합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지배 아니면 굴복…한국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훼손되는가
② 우리나라 화폐에는 왜 근대의 지도자가 없을까
③ 이방인의 한국 군사독재 증언 "학살 막기까지 주어진 3시간"


1987년 6월민주항쟁 당시 반독재,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대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 (사진=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관련 영상 캡처)
한배호 전 고려대 정치학과 교수는 '한국 민주화의 특징과 현황'이라는 기조발제를 통해 한국의 민주화 과정을 설명한 뒤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을 꼼꼼히 짚어냈다.


한 교수는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 대해 "식민지역이던 제3세계는 2차 세계대전 뒤 외부세력에 의해 민주화를 강요당했는데, 모두 실패하고 비민주적·권위주의적·군부권위주의적 정권으로 변화했다"며 "1945년 한국에 도입된 민주제도와 정치 역시 실패해 일당우위·일인지배 체제(이승만 정권)로 변질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1960년 (4·19혁명으로 들어선) 장면 민주당 시절은 9개월 만에 쿠데타로 실각했고 이후 26년간의 군사독재(1961~1987)가 이어졌다"며 "1987년 6월 시민항쟁을 통해 달성한 한국의 민주화는 자성(自性)적이라고 볼 수 있는데, 민주화는 자성적이라야 성공 가능성도 크다"고 덧붙였다.

그는 "유교적 문화가 민주화의 저해요인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유교권의 아시아에는 민주주의가 맞지 않는다' '유교 때문에 민주정치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가설로서 근거가 희박하다. 오히려 유교의 권위주의적 문화에 반발하던 젊은 세대의 반항이 민주화를 촉진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 한 교수의 견해다.

'경제적 요인이 민주화를 가능케 하는 결정적 요인'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4·19민주혁명은 빈곤과 빈부격차가 심했던 1960년 초에 일어났다. 그 후 4·19는 민주화운동세력에게 영감을 줬으며, 심지어 5·16쿠데타 집권세력도 4·19 정신 계승을 자처할 정도로 군사정권하에서도 큰 영향을 끼쳤다"며 "어느 수준의 경제 발전이 있어야 민주화가 된다는 가설, 산업화가 민주화를 다룰 때 인과관계처럼 다루는 것 역시 근거가 희박하다"고 전했다.

결국 "산업화가 저절로 민주화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필요조건일 수는 있지만 필수조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 교수는 남과 북이 대치하는 긴장과 위기 상황 속에서 달성한 민주화를 설명하면서 "(남북 대치라는) 객관적 조건이 장애 요인이기보다는 민주화를 조장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6월민주항쟁의 성과인) 1987년 새 헌법 제정 과정에서 여야간의 협상에 있어서 위기강화와 전쟁위협을 구실로 상호견제작용·양보를 얻어내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이 민주화된 데는 1970, 80년대 해외운동세력의 역할도 컸다는 것이 한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1970년 중반 이후 박정희 정권에게 가해지는 외부압력이 거세지기 시작했고, 대내적으로도 유신체제의 혹독한 탄압 속에서 오히려 민주화운동이 더욱 탄력을 받았다"며 "박정희 정권의 인권탄압이 국제적인 쟁점으로 비화되면서 대외적으로 카터 행정부의 경우 노골적으로 반대를 표명했는데, 미국정부로서는 처음으로 인권문제와 안보문제를 분리해 박정희 정권을 압박한 것이 1980년대 민주화의 기폭제로서 부마사태와 그 후의 민주항쟁으로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이어 "1980년대 후반 레이건 행정부의 대남미 민주화정책 변화, 미국과 소련의 냉전 종식 등으로 미국·유럽 여러 나라에서 활동하던 민주화운동세력이 자기들 정부에게 한국의 인권문제와 민주화운동을 지원하도록 활동했다"며 "이들이 한국 민주화세력과의 연대를 강화한 것이 1987년 6월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돼 필리핀,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아시아 등 여러 나라에서 민주항쟁이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 "가치정치임에도 그 가치가 불분명하다보니 갈등 해소 공식마저 부재"

6월민주항쟁 21주년이던 지난 2008년 6월 10일 서울 세종로에서 '국민 무시 이명박 정권 심판 100만 촛불 대행진'이 열리고 있다. 당시 경찰은 시민들이 청와대로 향하는 것을 막기 위해 광화문 사거리 등에 컨테이너 박스를 설치했었다. (사진=노컷뉴스/자료사진)
한 교수는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기에 앞서 '민주정치의 공고화'를 설명하는 데 공을 들였다.

그에 따르면 민주정치는 '행동' '태도' '제도'를 통해 다져진다. △행동면에서 어떤 중요한 정치적 집단도 민주적 정권을 뒤엎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태도면에서 국민의 절대 다수가 정치적 변화는 민주적 절차로 이뤄진다고 믿고 있다. △제도적으로 모든 행동자들이 정치적 갈등은 확립된 규범에 따라 해결할 것이라는 사실에 익숙해 있는데, 그 규범을 위배할 경우 이에 따르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보고 있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이런 정의로 본다면 한국의 민주화는 상당히 공고화된 것으로 생각되며 적어도 첫째, 둘째는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면서도 "문제는 세 번째로 정치적 갈등의 해소를 위한 규범이 확립돼 있지 않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정치가 '가치정치'(value Politics)와 '계급정치'(class politics) 중 가치의 정치에 속한다"고 설명했다. "계급정치에서는 정당이 특정 계급의 이익을 대표하고 그 계층의 지지를 얻어 집권하는데, 한국의 경우 객관적 조건들에 의해 가치정치적 성격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가치의 정치에서는 전통에 대한 태도, 종교적 차이, 연령, 교육수준과 배경, 집단간의 편견과 불신, 역사에 대한 인식 등이 정치적 선호를 결정하는 요인들이 되고 정치적 대열을 형성한다"며 "우리나라의 정치는 '낡은 가치'와 '새로운 가치'가 대립하는 가치정치인데도, 그 가치가 무엇인지조차 불분명하다보니 갈등 해소를 위한 공식이 없는 게 오늘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일본은 '만장일치', 미국은 '다수결의 원칙'을 철저히 준수하는 반면 한국은 '지배냐 굴복이냐'로 해소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여당이나 야당이 다 '가치의 정치'를 하고 있는 상황으로 다수결의 원칙은 무시되고 있다. 이로 인해 갈등이 생길 때 해소 가능성이 적다. 가치관의 대립은 갈등을 심화시키는 경향을 지니며 민주적 공고화 과정에 저해요인이 되고 있다."

한 교수는 대통령제에 대해서도 "권력의 집중화를 가져온 것이 문제점"이라고 지목했다.

그는 "조선시대만 해도 전통적으로 행정부 중심의 국가질서를 유지해 왔고, 입법부라는 제도는 1948년부터 도입됐으나 그마저도 군사정권시절 철저하게 종속적인 조직으로 전락했다"며 "현재는 행정부와 국회간의 정통성 경쟁과 갈등이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노무현과 이명박 정권을 분기점으로 권력의 중심이 행정부에서 입법부로 이동해 온 것인데, 그 과정에서 마찰이 일어나고 있다. 일부 국회의원들의 지나친 세력 과시, 행정부과 입법부 사이 갈등은 국민들의 불신을 낳는 원인이 되고 있다"며 "민주화 과정은 민주적 제도의 본래 기능과 권한으로의 복귀·환원을 의미하는 만큼 입법·행정·사법간의 권력 관계가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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