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비정규직] 아프니까 청춘? 진짜 아파 죽겠다!

온갖 멸시와 하대, 위험수당조차 지급되지 않는 공공부문 청년 비정규직

서울 광진구 구의역에 스크린도어 정비 작업 중 사고로 숨진 김모(19) 씨를 추모하는 국화꽃과 메시지가 붙어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서울 구의역에서 19살 정비공이 안타깝게 숨진 사고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청년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CBS노컷뉴스는 고액연봉의 대기업이나 정년이 보장되는 공무원은 고사하고 언제, 어디서 해고통보가 날아올지 모르는 '비정규직' 신분을 벗어나 '정규직'이 되는 것이 유일한 소망인 청년 비정규직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그 첫번째 시간으로 공공부문에도 만연한 청년 비정규직들의 절규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지난 2011년 10월 입사한 서울 다산콜센터 상담사 A(28·여) 씨.

경기도 의정부 집에서 회사가 위치한 서울 동대문까지 장거리 통근을 한지 어느덧 5년이 흘렀지만 그녀는 여전히 6년차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 업체는 235만 원 챙기고, 비정규직 상담사는 150만 원만

A 씨는 콜센터 하청업체 소속 직원으로 서울시 다산콜센터와는 비정규직 계약을 맺고 있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상담사다.

공무원도, 정규직 상담사도 아니다 보니 시민들의 온갖 차별과 공무원들의 멸시는 기본이다.

"어떤 시민들은 전화를 걸고서는 다짜고짜 '넌 공무원 아니잖아, 공무원 바꿔라'며 화를 내요. 또 그런 공무원들은 저희 전화를 상당히 귀찮다는 듯이 받아요. 전화를 안 받는 경우도 많죠"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시민들의 욕설과 성희롱은 물론이며 공무원들의 하대와 멸시도 A 씨에겐 스트레스다.

"주말에는 관공서 당직실로 전화연결하면 '모른다고 해라, 없다고 해라'고 해요. 저희만 난처하죠"

하루에 받는 전화는 100여 통 정도. 상담전화가 자칫 길어지면 점심시간이나 퇴근시간을 넘기기도 일쑤다.

이렇게 한 달을 일하고 그녀가 받는 돈은 150만 원 남짓, 나머지 235만 원은 하청업체가 가져간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 2년마다 다가오는 재계약 협상 "늘 불안"

A 씨가 소속된 하청업체는 2년마다 서울시와 다산콜센터 재계약협상을 진행한다.

만일 서울시와 업체 간의 재계약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엔 A 씨를 포함한 400명 콜센터 직원들의 계약도 자연스레 해지된다. 즉, 2년마다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1월에는 기존 업체와 서울시 간의 재계약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A 씨는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도 서늘하다"며 "400여 명의 직원이 당장 일자리를 잃을 상황에도 서울시의 적극적인 개입과 중재는 없었다"고 말한다.

이어 A 씨는 "노조 측의 강력한 항의와 요구가 있고나서야 기존업체와 현재 업체간 고용승계가 이루어졌다"며 "2년마다 오는 협상에서 업체가 바뀌면 이런식으로 고용승계 투쟁을 해야한다"며 한숨을 내뱉었다.

(사진=120 다산콜센터 홈페이지 화면 캡처)
◇ 2014년 서울시의 직접고용 약속…그러나 아직도 정규직은 요원

서울시는 2014년 12월 29일 다산콜센터 상담사 직접고용 추진안을 발표했다.

당시 서울시는 "시민들의 행정서비스 질을 높이고 대표적 여성감정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을 하겠다"며 서울시 차원의 직접고용 방안과 공무직 전환 계획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2년이 흐른 지금까지 변화는 없었고 A 씨는 여전히 하청업체 소속의 비정규직 상담사다.


더 나아가 서울시는 2014년 4월, 기존 발표와는 달리 노조와의 협상도 없이 일방적으로 "서울시 차원의 직접고용이 아닌 '120서비스재단'을 설립한 뒤 재단을 통한 직접고용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400명이나 되는 콜센터 상담직원을 서울시 차원으로 직접 고용하고 공무직으로 전환할 시에는 재정적으로 부담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노조의 강력 반발에 부딪혀 서울시의 일방적 추진은 지금은 중단된 상태다.

22살의 어린나이 때부터 지금까지 이 악물고 달려온 A 씨, 하지만 큰 바람은 없다고 말한다.

"정규직이 되고 싶은 이유는 단지 삶이 안정적이고 싶어서에요. 2년마다 업체나 시청 찾아가서 고용승계 해 달라 뭐 해 달라 싸우기도 지쳐요. 이번에 구의역에서 숨진 김 군을 보면 18살 제 동생이 떠올라요. 동생은 우리나라에선 안 살았으면 좋겠어요"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 위험약품에 늘 노출…위험수당도 없는 비정규직

서울 강북구의 한 공립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의 과학실험을 도와주고 있는 과학실무사 전모(32·여) 씨는 22살 어린나이 때부터 이 일을 해온 10년차 베테랑이지만 역시 비정규직이다.

과학실험의 특성 상 늘 암모니아, 염산과 같은 위험물질을 취급하지만 전 씨에게 위험수당은 한 푼도 지급되지 않는다. 단지 비정규직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전 씨가 학교로부터 받는 임금은 월 130~150만 원.

10년째 과학실무사 업무와 더불어 교내의 각종 자질구레한 업무를 해왔지만 정규직 교사와의 임금 격차는 어째 시간이 갈수록 벌어진다.

전 씨도 처음 일할 때 계약 조건은 '10급 공무원에 준하는 대우'였다고 한다.

"처음 계약 조건은 10급 공무원에 준하는 대우였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무기계약직으로 바뀌더니 지금까지 비정규직 과학실무사로 일하고 있는거죠. 임금 상승도 없어요"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 온갖 차별에도 버티고 일했지만…학위도 땄지만…정규직 희망은 없어

정규직 교사와의 차별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루는 정규직 교사들이 커피포트를 닦으라는거에요. 그래서 불만을 말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우리가 수업 편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당신 일'이라는 말이었어요."

같은 동업자가 아닌 그저 수발을 드는 존재였다고 전 씨는 말한다.

정규직 교사가 새로 발령이 나서 학교에 왔을 때는 7년 동안 자신이 지냈던 자리를 하루 만에 뺏기고 자신은 출입문 쪽 자리로 옮겨졌다.

온갖 차별에도 이를 악물고 버틴 전 씨는 학업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자신이 고등학교만 졸업해 비정규직으로 있는가라는 생각에 퇴근 후 대학을 다니며 학위도 취득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무기계약직의 비정규직 노동자다.

이 악물고 달려왔지만 좀처럼 비정규직의 꼬리는 떼지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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