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가 노벨평화상 후보까지 간 이유"

"알리와 이노키 이종격투기 대결, 무승부로 끝"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변상욱 대기자 (김현정 앵커 휴가로 대신 진행)
■ 대담 : 최동철 (스포츠 앵커)

무하마드 알리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 복싱계의 전설이었죠? 40년 전 권투선수가 왜 현재까지도 최고의 전설로 남아있는지, 왜 세계는 일제히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지 무하마드 알리의 이야기 나눠보겠습니까. 스포츠 앵커 최동철 씨입니다. 안녕하십니까?

◆ 최동철> 오래간만입니다. 최동철입니다.

◇ 변상욱> 세계적인 권투 선수, 무하마드 알리가 세상을 떠난 얘기 나눠야 할 것 같습니다.

◆ 최동철> 그렇습니다.

◇ 변상욱>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런 사람이다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 최동철> 1960, 1970년대 최고의 프로권투복서죠. 헤비급 챔피언을 3번이나 차지를 했고요. 그리고 자유와 평등, 정의를 위해서 인종차별을 위해서 애썼던 정말 전설의 프로복서로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게 무하마드 알리입니다. 74살의 일기로 지난 4일 세상을 떠났습니다마는 대단한 선수였었죠. 우리나라에도 왔었고요. 1976년에 왔었고 그때 MBC에서 중계를 했습니다.

◇ 변상욱> 그랬군요. (웃음)

◆ 최동철> (웃음) 기억이 나고요. 그때는 뭐 알리가 최고였으니까요.

◇ 변상욱> 처음에는 그냥 '클레이'라고 부르지 않았나요? 맨 처음에?

◆ 최동철> 캐시어스 클레이였는데 개종을 하면서 이름을 바꿨어요.

◇ 변상욱> 종교적 개종을 하면서 이름을 무하마드 알리, 이슬람식으로 이름을 바꾼 거군요. 그 유명한 대사 있지 않습니까?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

◆ 최동철> 그러니까 무하마드 알리가 18살 때 1960년 로마올림픽에 라이트헤비급 세계 챔피언이 됩니다. 그러고 나서 1964년 프로권투 WBA, WBC 통합 챔피언인 소니 리스턴, 대단한 선수예요. 이 선수를 7회로 꺾죠. 그때 당시에 무하마드 알리가 한 얘기가 바로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고 하는 유명한 그 말을 남기죠. 7회 TKO로 소니를 꺾고 세계 챔피언이 된 겁니다.

◇ 변상욱> 그런데 사실은 그 거대한 몸집의 헤비급 선수가 나비처럼 난다는 게 '말이 그렇다는 얘기겠지' 생각했는데 사실 그랬더라고요? (웃음)

◆ 최동철> 굉장히 풋워크가 좋았고요. 그리고 지금 제가 지금 기억나는 건 그 주먹도 셌지만 테크니션했어요. 아주 뭐 기량이 대단했고 그다음에 경쾌한 풋워크가 있었고요. 지금 말씀하신 대로 원래 헤비급 몸은 굉장히 체중이 나가잖아요. 그런데 무하마드 알리는 제가 보기에는 빨랐어요. 특히 풋워크가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무지하게 빨랐어요. 그거를 흉내내는 또 우리 선수들도 많았고요. 그리고 얼굴도 잘생겼죠. 잘생겼습니다.

◇ 변상욱> 그렇죠. 아무튼 풋워크도 그렇고 워킹이나 이런 더킹 같은 것들도 대단 해서 도대체 안 맞았던 그런 기억이 납니다.

◆ 최동철> 그래도 많이 맞았기 때문에 84년에 파킨슨병이 생긴 겁니다.

◇ 변상욱> 그랬군요. 그런데 지금 소니 리스턴 얘기를 해 주셨는데. 돌주먹이라고 하던 조지 포먼하고도 세기의 대결을 한 것도 기억나고 어떤 경기들이 기억나십니까?

◆ 최동철> 제가 기억나는 조지 포먼이죠. 조지 포먼은 그때 정말 강철 같은 주먹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선수를 1974년에 KO로 꺾고 챔피언이 됐죠.

◇ 변상욱> 그거는 저도 기억나거든요.

◆ 최동철> 기억나세요? (웃음)


◇ 변상욱> 조지 포먼한테 스치기만 해도 사망이라고, 다른 선수들은 슬쩍 맞아도 다 쓰러졌기 때문에, 이거는 안 되겠다, 이것만은 안 되겠다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

◆ 최동철> 저도 조지 포먼한테는 안 될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오히려 조지 포먼이 알리 주먹을 맞고 엉덩방아를 찧죠. 지금 화면을 보더라도 그것이 기억이 납니다. 조지 포먼이 알리한테 엉덩방아를 찧고 결국은 KO로 지죠. 이게 제일 기억에 나요.

◇ 변상욱> 그런데 멋있는 경기 얘기만 쭉 하고 있었는데, 이상했던 경기도 하나 있습니다. 안토니오 이노키 일본 프로레슬러하고 세기의 대결을 벌인다고 해서 한 사람 누워만 있고 한 사람 서 있다가 끝난 것이죠.

◆ 최동철> 맞아요. 그때 당시에 일본에서는 또 안토니오 이노키. 지금 참의원이죠. 정확히 6월 26일에 우리나라도 중계가 됐습니다. 그때 도쿄 무도관에서 이종격투기를 했죠. 그런데 안토니오 이노키는 누워서 경기를 했고 알리는 서서했는데, 왜 그런 경기를 했고 알리는 서서 했었죠. 무승부로 끝났지만요. 그만큼 70년대에 알리의 그 시대였다고 볼 수 있죠. 대단했습니다.

◇ 변상욱> 1970년대라고 하는 전체 한 시기가 알리의 시대라고 말 할 수 있을 만큼. 그런만큼 권투가 아닌 사회적인 문제들도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흑인 인권운동도 했는데, 참 흑인이니까 당연히 할 만도 하다고 하지만 그때 당시의 사회분위기로는 쉬운 건 아니었겠죠?

◆ 최동철> 그렇죠. 왜냐하면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라이트급의 금메달을 따고 나서 금메달을 차지하고 식당에를 갔는데 들어가지를 못합니다,

◇ 변상욱> 유색인종이라서?

◆ 최동철> 그렇죠. 지금도 (인종차별이) 조금 있기는 있습니다마는, 당시에 흑인이라고 해서. 그래서 자기가 화가 가서 그 금메달을 강에 던져버리죠.

◇ 변상욱> 금메달을 강물에 확 던져버려요?

◆ 최동철> 네. 던져버려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때 IOC가 다시 금메달을 주기는 합니다마는 그때부터 무하마드 알리가 인종문제를 가지고 세계 전도사로, UN 친선대사가 되죠. 평화의 메신저로 활동을 하기 시작하죠. 그리고 1967년에 베트남 전쟁 때 영장이 나오는데 거부를 하죠. 그래서 그때 프로복서 타이틀 박탈 당하고 프로복서 자격을 상실 당하고요. 그때 5년 징역을 받게 됩니다. 그렇지만 대법원까지 가서 3년 동안 법정 싸움에서 결국은 자기의 타이틀도, 프로복서로서 자격도 얻게 되죠.

◇ 변상욱> 그렇게 해서 방랑자의 생활이 시작됐고 병도 얻고 참 말년은 순탄치 않았죠?

◆ 최동철> 그렇습니다. 1981년에 은퇴를 하고 그다음에 1984년에 파킨슨 병을 얻습니다. 그래가지고 1996년에 애틀랜타올림픽 개회식 때 최종으로 성화를 점할 때 손을 떨면서 성화를 점화한 기억이 나요. 지금 프로권투는 인기가 없어서 안타깝지만은, 앞으로도 무하마드 알리는 프로복서로서의 전설로서 영원할 것입니다. 전 종목을 통해서도요. 그래서 노벨평화상 후보까지 갔지 않습니까?

◇ 변상욱> 노벨평화상까지요?

◆ 최동철> 네. 후보까지 갔었어요. 대단했던 선수죠.

◇ 변상욱> 스포츠 경기를 통해서 주목을 받았지만 또 자기의 그런 것들을 뒤로 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함께 나선 이런 활동들도 참 대단하네요.

◆ 최동철> 그렇죠. 반기문 사무총장도 무하마드 알리에 대해서 '평화와 평등의 세계 챔피언이었다' 이렇게 애도를 표했고요.

◇ 변상욱> 평화와 평등의 세계 챔피언.

◆ 최동철> 네, 제가 보기에는 참 대단했던 선수예요. 복싱도 잘했지만, 정말 세계 평화, 정의를 위해서 힘썼던 전설의 복서입니다.

◇ 변상욱> 21세기의 또 다른 누군가의 영웅을 한번 기대해 보죠. 오늘 고맙습니다, 최동철 앵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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