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구글에 가다'의 저자인 철학자 리베카 골드스타인은 인지과학자 스티븐 핑커와 부부이자 늘 서로 자극을 주고받는 지적 동반자이다. 앎을 향한 사랑과 상대방에 대한 관심으로 가득 찬 과학자와 철학자 간의 열띤 대화는 바로 이 책의 주제이자 형식이기도 하다.
자기공명 영상 장치가 놓인 연구실. 인지과학과 조교가 파란 수술복을 걸친 피험자를 데려온다. 뇌 처리 과정을 보여 주는 자기공명 영상을 촬영할 이 백인 남성, 고등교육 수료자, 그리스 출생, 2400살의 철학자는 바로 플라톤이다. 직업이 철학자라는 말에 실험을 진행하는 인지과학자는 웃으며 ‘점성술사, 연금술사와 같은 연구실을 쓰느냐’고 묻는다. 인간의 자유 의지나 도덕성 같은 능력을 모두 뇌의 작용으로 설명할 수 있을 때, 당신 같은 철학자에게 남은 일은 무엇이냐는 질문이 이어진다. 플라톤의 대답은?
또 다른 대목. 플라톤이 출간 기념 강연회를 하러 구글 본사에 나섰다. 강연장으로 가다가 마주친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의 구글 직원이 ‘세계의 모든 지식을 모은다’는 구글의 목표를 홍보한다. 정교한 알고리즘으로 구현되는 구글 검색엔진을 이용하면, ‘소크라테스의 변명’같은 키워드만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좋은 삶인가’라는 윤리적 문제에도 답이 나온다는 것. 그러나 플라톤은 좋은 삶에 대해서 제대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철학자뿐이라고 말한다. 토가를 입은 플라톤을 구경하던 사람들은 그의 시대착오적인 주장에 처음에는 황당해하고, 나중에는 반발하다가 차츰차츰 생각에 빠져들게 된다.
오늘날 물리학자, 생물학자, 화학자 가운데 아무도 최초의 과학자라 할 데모크리토스를 읽지 않는다. 양자철학자들이 뉴턴의 저서를 읽을 필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철학에서는 2400년 전 플라톤을 아직도 열심히 읽는다. 철학이란 학문은 그동안 뭘 한 것인가?
저자 골드스타인은 동료 과학철학자들이 철학에 보내는 냉소와 몰이해, 분과 학문으로서의 지위에 만족하는 아카데미 철학자들의 무사안일에 모두 거리를 둔다.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시작해 고대 그리스 사상가들, 갈릴레오와 케플러에서 아인슈타인에 이르는 위대한 과학자들, 스피노자에서 푸코까지 철학의 거장들 그리고 마사 너스바움, 피터 싱어 등 동시대 일급 학자들까지 방대한 참고 문헌을 날카로운 통찰로 종합하면서 플라톤이라는 거인의 사상을 추적해 나간다. 엄밀한 논증에 유머까지 곁들여진 골드스타인의 철학적 연구는 연구실에 틀어박힌 과학자들을 대화의 자리로 부르는 한편,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현대 철학에 새로운 빛을 던진다.
깊고 넓은 플라톤 사상에서 추출한 정수는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철학을 한다는 것은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플라톤의 목소리가 생생해진다. 플라톤은 우리가 우리 뜻대로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것, 바로 우리의 삶에서 시작한다. 플라톤에게 철학이란 ‘잘 사는 법을 알려 주는 학문’이다.
우리가 2400년 전 플라톤이 쓴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새겨 읽듯 ‘플라톤의 변명’에 귀 기울여 본다면 플라톤 사상은 이렇게 번역된다. 우리는 평범한, 만족하는, 보통의 삶을 고수하려 들 것이 아니라, 뛰어난 인간이 되기 위해 죽을 때까지 노력해야 한다. 이는 플라톤 자신이 일생 동안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으로부터 괴롭게 얻은 깨달음이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인들이 자신들의 만족스러운 생활을 교란한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할 때까지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물음을 그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책은 인간이 놓을 수 없는 그 오래된 질문을 다시 복원하면서 독자를 절실한 대화 속으로 초대한다.
리베카 골드스타인 지음/김민수 옮김/712쪽/2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