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집게'냐 '문제 도둑'이냐…'스타강사'의 결말은?

모의평가 '유출' 맞다면 누가 흘렸나…수능당국 대응도 '도마'

(사진=자료사진)
2일 치러진 대입수능 6월 모의평가의 일부 문제가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3일 학원 강사인 이모(48)씨의 집과 차량을 압수수색하는 등 본격 수사에 나섰다.

이씨는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지만, 문제 유출이 사실로 최종확인될 경우 후속 파장은 커질 전망이다.

국무총리실 산하이자 수능을 주관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공식 시험이 보안 측면에서 중대 허점을 드러난 데다, 이를 사전인지하고도 시험을 강행한 결정 역시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6월과 9월 모의평가는 같은해 11월 본수능을 치르게 될 수험생들에겐 출제 경향과 난이도의 '가늠자'이자, 과목 선택과 수시 전략 수립의 '근간'이 될 만큼 중요한 시험이다. 이번 6월 모평에도 전국 2049개 고등학교와 413개 학원에서 60만명 넘는 수험생이 응시했을 정도다.

논란에 휩싸인 이씨는 서울 강남과 목동 및 노량진 일대의 학원 여러 곳에 출강중으로, 국어 영역에선 내로라 하는 '스타 강사'다.

경찰과 평가원에 따르면, 이씨가 지난달 강의도중 6월 모평에 나올 지문과 출제 경향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는 제보가 잇따라 접수됐다. 이에 평가원은 모평을 이틀 앞둔 지난달 31일 수사를 의뢰했다.

지난주부터 서울 양천구의 한 자사고와 학부모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한 '강의 필기' 사진 파일에 따르면, 이씨는 강의도중 "6월 모의고사(에서) 중세국어 문제가 비(非)문학 지문(으로 나온다)"이라거나 "비문학 지문은 지문이 길다. 복합유형이고, 사회지문은 X(아니다)" 등으로 언급한 것으로 돼있다.


강의 필기에는 또 "문학의 현대시(에서) (강은교 시인의) '우리가 물이 되어'(에서) 불(의 이미지를 묻는 문제)", "고전시가(에서) 가시리, 청산별곡, 서경별곡, 동동, 정석가 중(에서 나온다)", "현대소설(에서) 삼대, 고전소설(에서) 최척전(이 나온다)" 같은 내용도 적혀있다.

실제로 이번 모평에서 처음 문이과 통합형으로 치러진 국어 영역에서 11·12번 문항은 중세국어 문법 영역이 비문학 지문과 함께 출제됐다. 또 비문학 지문이 길어 난도가 높은 것으로 분석됐고, 이씨가 거론한 분야별 작품들도 모두 지문으로 출제됐다.

물론 이씨가 워낙 국어 영역의 유명 강사로 활동해온만큼, 통합 국어의 출제 경향을 '족집게'처럼 간파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씨는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평가원에 아는 사람도 없으며 '평가원 사람으로부터 들었다'고 학생들에게 말한 적이 없다"고 관련 의혹을 일체 부인했다.

하지만 회자된 '강의 필기'대로라면, 아무리 직관이 뛰어난 전문가라도 예측할 수 있는 수준을 훌쩍 뛰어넘었다는 게 입시업계의 공통된 반응이다.

서울 시내 대입학원 한 관계자는 "출제 경향이나 지문을 어느 정도 예상은 할 수 있지만, 이번 경우엔 너무 구체적이어서 유출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만약 문제 유출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어떤 경로를 통해 이뤄졌는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시험이 모두 끝나야 출제위원 합숙이 풀리는 수능과 달리, 모의평가는 시행 한 달전쯤 전공 교수나 현직 교사 가운데 출제위원을 선발해 2주가량 합숙하며 문항을 만든다.

이번 6월 모평 출제를 위한 합숙 과정도 지난달 중순쯤 종료된 만큼, 그 이후 출제위원 가운데 누군가로부터 이씨가 관련 정보를 제공받았을 수 있다. 또는 아예 합숙 시작 전 출제위원이 이씨에게 예제를 알려주고 출제에 임했거나, 인쇄 및 배포 과정에서 샜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출제위원들은 합숙 과정에서 비밀을 유지하지 않을 경우 민형사상 책임을 지겠다는 서약서도 작성한다. 평가원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대목 가운데는 이 '서약 위반' 여부도 포함됐다.

이와 관련, 평가원측은 "출제 기간에는 외부와 소통이 일체 단절되므로, 문제가 유출될 수 없는 구조"라며 "새로 문항을 만들기 때문에 예제가 사전에 유출됐을 가능성도 크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이러한 해명과 달리 경찰 수사에서 문제 유출이 확인될 경우, 수능 출제당국인 평가원의 보안 절차에 치명적 허점이 드러난 셈이어서 후폭풍을 피하기 힘들 전망이다.

특히 평가원이 유출 의혹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모의평가를 예정대로 강행한 걸 두고도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이번 경우처럼 학부모 등의 제보가 아닌 다른 비공개 경로로 유출 가능성을 알게 됐다면 덮고 넘어갈 수도 있지 않겠냐는 의문이 당장 제기된다.

이에 대해 평가원측은 "경찰 수사에서 사실로 확인되기 전까지는 유출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며 "수험생들의 혼란을 막기 위해 모의평가를 예정대로 실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평가원은 일단 경찰 수사 결과가 나온 뒤 개선방안 마련에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유출 사실이 드러나면 '뒷북 대응' 비판은 물론, 가뜩이나 잇따른 출제 오류와 난이도 조절 실패로 쌓여온 수능에 대한 불신도 한층 커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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