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우리나라에서 안타까운 두 죽음을 놓고 시끄럽습니다. 하나는 동물원 우리에 빠진 4살짜리 아기를 구하기 위해 동물원에서 총으로 쏘아 죽인 멸종위기 고릴라이고 다른 한쪽은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스크린 도어 정비업체 직원의 얘깁니다.
어떻게 고릴라와 사람을 비교하느냐고 화를 내실 분들도 있겠지만, 죽음의 무게를 비교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두 생명을 앗아간 탐욕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 동물원에 살던 고릴라 '하람비'의 죽음을 놓고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동물원 측에서는 "위험한 고릴라로부터 아기를 구하기 위해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강변했지만, "고릴라가 아기를 해치려 한 것이 아니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동물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하람비는 아기를 데리고 우리 중앙으로 데려가더니 등과 손을 만지는 등 위협적인 행동을 했다기보다 호기심 어린 반응을 보였다는 겁니다. 일부 학자들은 "고릴라는 인간 아이를 공격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며 거들고 나서기도 했습니다.
이에 동물원 폐지론까지 나왔습니다.
'감금의 윤리학'의 저자 로리 그루엔 교수는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야생의 자유를 전혀 경험하지 못한 하람비는 인간의 목적을 위해 동물원에 갇히게 됐다"며 "동물원은 야생동물들의 안식처가 될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찬반 공방이 일었습니다. 한 네티즌은 자신의 케냐 야생 동물원을 경험을 예로 들며 "동물원은 동물들이 느릿느릿 거닐면서 잠을 자고 편안해보이지만 절대 활기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동물들에게 선택권이 있다면 동물원보다 야생을 선택할 것 같다"고 주장했습니다.
다른 네티즌은 "현대 동물원은 동물들은 좁은 우리에 가두지 않고 충분한 공간과 먹잇감을 제공하고 있다"면서 "또 동물원이 없다면 우리는 야생동물들을 가까이서 접하지 못할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하지만 하람비의 죽음의 궁극적인 원인은 인간의 탐욕으로 보금자리를 잃은 야생동물들이 동물원에서 보호받아야 하는 현실에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인간에 의해 멸종위기에 몰려 동물원 신세를 지다가 결국 인간의 손에 죽임을 당했으니까요.
하람비의 가족들도 다른 동물원에서 인간들의 실수로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하람비의 죽음 뒤에 있는 탐욕은 사실 눈여겨보지 않으면 평소에 인식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모두의 잘못이라는 말은 자칫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허무적인 결론에 다다르기 쉽기도 합니다.
반면 김군의 죽음 뒤에는 눈에 보이는, 손에 잡히는 탐욕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업무 규정과 달리 '나홀로 작업'에 내몰려 열차에 치어 숨진 김모군의 죽음 뒤에도 서울메트로 출신 직원들의 '욕심'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비정규직이면서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을 받은 김군은 정규직이면서도 기술 자격증이 없는 메트로 출신 임직원의 몫까지 일하다보니 '2인1조' 규정도 지킬수 없는 극한 상황에 처한 것입니다.
메트로 출신 임직원들이 훨씬 많은 월급과 복리후생을 보장받는 대가로 김군 같은 비정규직은 생명을 담보로 한 작업 환경을 감당해야만 했습니다. 제2의 김군이 지금도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파트너 없이 홀로 일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하람비 사태보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하람비는 아이가 울타리 안으로 떨어지지는 돌발 상황에서 극단적인 선택이 강요됐다고 하지만, 쳇바퀴 같은 일상적인 위험에 노출됐던 김군은 예고된 참사 앞에 속절없이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분노는 더욱 커질수 밖에 없습니다.
두 죽음은 탐욕들이 만든 역설적인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연 상태'로 돌아갈수 없었던 하람비는 인간이 만든 '원치 않은' 울타리 속에서 생을 마감했고, 사회적 울타리가 필요했던 김군은 울타리 밖을 맴돌다가 참사를 당했습니다.
정규직이라는 울타리 안에 들어오기를 학수고대했던 김군은 생명을 건 작업환경 속에 위태로운 줄타기를 했습니다.
박봉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역시 자본이 만들어 낸 편리한 장치입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임금을 적게 줄수 있고 특히 일자리가 궁한 청년들은 비정규직의 덫에서 헤어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정글이 필요했던 하람비가 아닌 김군이 '정글' 같은 삶속에서 허우적대야만 하는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