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백년의 신화'전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린다. 이중섭 탄생 100년을 기념한 것이다. 이번 전시는 이중섭의 원작을 최대한 한 자리에 모아 원작을 전체적으로 감상하고 살펴볼 수 있다. 60개 소장처로부터 200여 점의 작품, 100여 점의 자료를 빌려왔다. 그의 대표적인 유화 60여 점 외에 드로잉, 은지화, 엽서화, 편지화, 유품 및 자료가 망라되었다.
이번 전시 작품들은 이중섭의 여는 전시와 마찬가지로 소와 가족, 자연물들이 다양하게 변주되며 그만의 화풍을 풍부하게 느껴볼 수 있다. 대체적인 흐름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소처럼 힘차게 일어서려는 힘, 가난 속에서도 가족들과 자연생활의 즐거움, 가족과 이별의 고통 속에서도 재회의 간절한 소망을 작품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중섭의 작품 '세병관'(1954)도 특이하다. 그가 통영 시절(1953-1954)에 그린 작품이다. 통영시절엔 건강이 회복되어 마음이 안정되었을 때이며, 이 때 다수의 황소그림을 그렸다. 이 시기 황소그림들이 역동적이고 힘차다. 이와 달리 '세병관'은 왠지 초라하고 힘빠진 느낌이 든다. 실제 세병관의 모습은 우람한 기둥들이 넓게 펼쳐진 기와지붕을 받치고 있어 군사 훈련기관임을 실감케 한다. 그런데 이중섭의 작품에 그려진 '세병관'은 한 칸 정도의 기와지붕만 등장하고, 담장에 식물 한줄기가 서 있는 풍경이다. 나라를 지키는 군사기관을 이처럼 묘사한 것은 식민지배를 받은데 이어 전쟁의 혼란에 놓인 나라의 처지를 투영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노란 태양과 가족'(1955)에서 처럼 작고하기 직전에 그린 작품들에는 '노란'이 들어간 제목이 많다. '꽃과 노란 어린이'(1955), '나무와 노란 새'(1956). 왜 어린이, 새, 태양을 '노란색'으로 표현했을까?
1955년에 그린 '소'는 뚜벅뚜벅 걸어가는 소의 형상을 그린 것이다. 몹시 마르고 지친 모습으로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늘어뜨린 얼굴의 이마에는 상처가 나서 피가 묻어있고, 바닥으로는 선연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진다. 이 피 흘리는 소는 작가가 정신병원을 오가며 고통 속에 있을 때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작가 자신이 처한 비극적 현실을 드러내고 있는 듯하다.
이중섭이 죽기 직전에 그린 '돌아오지 않는 강'(1956,맨 위 작품) 연작은 진한 슬픔의 여운을 남긴다. 소년은 창에 턱을 괴고 어머니를 기다리고, 소년의 시선이 닿지 않은 골목길에 한복차림의 어머니가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집으로 오고 있다. 작가는 신산한 생을 마치며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었으리라.
이중섭이 일본인 부인과 주고 받은 편지들은 그에게 부인의 존재가 삶의 버팀목이자 예술혼의 샘물임을 실감케 한다.
가장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아내와
모든 것을 바쳐 하나가 되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좋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없어요.
독신으로 작품을 만드는 사람도 있지만,
아고리는 그런 타입의 화가는 아니에요.
이중섭은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 7월경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떠나보내고 홀로 남겨졌다. 이후 그는 여러 지역을 정처없이 떠돌며 가족들에게 수많은 편지를 보냈다. 처음에는 언제든 곧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즐겁고 다정다감한 편지를 많이 썼다. 특히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아들을 염려하며, 그림을 곁들인 사랑스러운 편지들을 많이 남겼다.
은지화는 이중섭이 창안한 새로운 기법의 작품이다. 그는 상당히 오랜 기간 약 300점의 은지화를 제작했다는 증언이 있는데, 그 중 40여 점의 수준 높은 은지화 작품이 이번 전시에 선을 보였다.
전시 기간: 6.3- 10.3
전시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전시 작품: 유화 60여 점을 비롯해 드로잉, 은지화, 엽서화, 편지화 등 200여 점
유품 및 자료 100여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