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① "검열이 연극계 판을 분열시키고 있다"
(계속)
최근 연극계의 화두는 ‘검열’이다. 지난해 정부 기관(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이 정치적 잣대로 예술작품을 사전 검열하고, 지원 선정작에서 배제한 사실이 드러나며 파문이 일었다.
창작산실지원분야의 연출가 박근형 씨는 박근혜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부정적인 언급을 한 연극 <개구리>를 무대에 올렸다는 이유로, 다원창작예술지원분야의 ‘안산순례길’ 작품은 세월호를 언급했다는 이유로 배제됐다는 심사위원의 증언이 나와 논란이 됐다.
이런 중에 발생한 ‘팝업씨어터’ 사건은 정부 기관이 ‘최소한의 눈치’조차 보지 않는다는 생각을 연극인들에게 안겼다. 연출가 김정 씨의 연극 ‘이 아이’가 세월호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문예위 산하 공연예술센터로부터 공연 방해 및 대본 제출 요구를 받은 것이다.
연극인들은 공동성명, 릴레이, 포럼, 토론 등으로 검열에 저항했다. 하지만, 상황을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장기적으로 저항하기로 했다. 방식도 바꿨다. 연극인답게 연극을 통해 검열을 말하고 비판하기로 한 것이다.
‘권리장전’은 1689년 영국의 명예혁명 결과로 이뤄진 인권 선언이다. 하지만 '권리장전2016_검열각하'의 ‘장전’은 긴 싸움(長戰)을 의미한다.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시민과 예술가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무대 위에서 긴 저항을 하겠다는 연극인들의 의지를 담았다.
‘권리장전2016_검열각하’를 제안한 연출가는 김수희(41, 극단 미인), 부새롬(41, 극단 달나라동백꽃), 윤한솔(45, 그린피그), 이양구(42, 극단 해인) 씨 등 4명이다. 이들을 만나 검열 비판 연극제를 제안하게 된 이야기부터 각자 느끼는 검열의 문제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 ‘권리장전2016_검열각하’에 대해 소개해 달라.
= 김수희(이하 김) : 젊은 연출가들이 검열을 당하는 상황이 어이가 없었고,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4명이 모여서 얘기하던 중 ‘우리는 연극하는 사람들이니 공연으로 얘기해보자’는 말이 나왔다. 우리만 괴로워하고 고민하는 게 아니라 곳곳에서 공연과 포럼으로 여러 연출가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같이 의견 나눠보자며 20팀이 모였고, ‘각자의 극단 특성을 살려 공연으로 이야기해보자, 그것이 곧 우리의 입장이 될 것이고 목소리가 될 것이다’는 생각에 다다라 시작하게 됐다.
▶ 문화예술계에 대한 검열이 현 정부 들어 더욱 심해졌다고 하는데, 직접 느끼기에는 어느 정도 수준인가.
= 윤한솔(이하 윤) : 검열은 이전부터 계속 있었다. 더 심해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대놓고 하는 세상이 됐다고 할까. 검열하는 것에 죄의식을 느끼기보다 최소한의 사회 질서를 지키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인 것 같다. 문예위의 사과문에 그런 뉘앙스가 있다.
개인적으로 검열을 당하기도 했다. ‘안산순례길’이 다룬 주제가 ‘세월호’이고, 연출가가 ‘정치적’이라며 작품이 배제됐다는 한 심사위원 분의 증언을 듣고 알게 됐다. 당시에는 심사 결과 발표 후 한참이 지난 때라 그리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기분이 나쁘긴 했지만, 작품이 별로라 그랬겠지 하는 생각도 절반 정도 있었다. 화가 난 것은 그 이후 그들의 태도였다. 그런 검열이 마치 기관의 의무이자 당연한 권리인양 말하는 사과문을 보고 불쾌하고 화가 났다.
= 부새롬(이하 부) : 이전부터 ‘블랙리스트가 있다’ 식의 소문은 있었다. 그래도 전에는 눈치를 보면서 배제한다는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눈치마저 안 보는구나 싶었다. 팝업씨어터 3인 중 1명이 우리 극단 친구인데, 공연예술센터 쪽에서 (공연 전) 대본을 내놓으라고 했다는 얘기를 전해 듣는 순간 피부로 확 와 닿았다. 분노도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무섭다는 느낌이었다.
= 김 : 이전에는 자기들 마음에 안 들면 조용히 배제했다. 이젠 이런 일로 배제해도 괜찮다는 분위기다. 부산영화제 사태도 그런 관점에서 보인다. 더 대놓고 하는 이상한 자신감을 장착했다고 할까.
= 부 : 옛날에는 종북.좌파.빨갱이 등 이념으로 괴롭히고 소외시키고 그랬는데 지금은 돈으로 배제시킨다. 이념이 안 먹히니 다른 카드를 꺼낸 거다.
◇ “‘정치적 중립성’,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얘기”
= 이양구(이하 이) : 그 공연이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도 모르는 건데, 사회적·정치적 논란이 일 거라는 판단을 공무원이 사전에 하면 안 된다. 건강한 사회라면 그 안에는 다양한 생각이 있고, 공존해야 한다. 다양한 의견이 통제되는 건 공적 세계가 파괴된 거다. 연극을 하다보면 진보적인 사람과 보수적이라는 사람이 같이 앉아 관람하는 것을 본다. 이게 극장이 갖고 있는 공간으로써의 기능이고, 연극이 지닌 공적 가치라 생각한다.
= 부 :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라는 말을 우리에게 하는데, 이게 얼마나 웃긴 얘기인가. 정치의 폭을 어떻게 보는 건지. 원래 뜻과 관계없이 ‘중립성’이라는 말에 이미 찌꺼기가 붙어 있다. 세상에 중립적인 게 있을 수 있나. 보기에 따라 모든 작품은 정치적일 수 있다.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 않으면 나쁘다는 것을 공무원 몇 명이 판단하는 것도 웃기고, 애초에 그런 언어를 안 쓰면 좋겠다.
◇ “검열이 연극판을 분열시키고 있다”
▶ 작품 만들 때 많은 생각이 교차할 것 같다.
= 김 : 공연 내용에 있어서 스스로 자유롭지 못한 모습이 있다. 혜화동 동인할 때는 국가보안법을 주제로 공연하고, 재능교육 노동자들 문제로도 공연했다. 해방공간이라는 1945~50년 사이 발표된 희곡으로도 공연했는데, 이제는 이런 공연을 할 때마다 겁이 난다. 괜히 했다가 나중에 지원금 쓸 때 불이익 당하지 않을까 하는 거다. 자꾸 자기 검열에 빠진다.
= 부 : 반대로 지원금을 받아도 이제는 기분이 좀 안 좋다. 내가 그 사람들이 원하는 순응적인 작품을 한다는 의미이니까. 지원금을 받아도 잘 못하고 있는 것 같고, 쓸 때는 스스로 검열하게 되고.
= 윤 : 얼마 전까지만 해도 누군가 지원금을 받는다는 건 부럽기도 하면서, 축하할 일이었다. 그런데 이게 경멸할 일이 돼가고 있다. '어라? 쟤 봐라. 지원금 받았네'하는 식으로. 한 작가가 그런 얘기를 했다더라. 지원금을 받은 지 한 달이 됐는데 받았다고 사람들한테 말을 못하겠다고. 검열이 이렇게 연극판을 분열시키고 있다.
= 김 : ‘권리장전2016_검열각하’ 준비 회의를 하면서 문예위에 지원 신청 여부를 놓고 논의한 적이 있다. 이 사태의 시발이 된 주체에게 시작을 알리는 의미로 지원서를 써야한다는 의견과 왜 거기에다 돈 달라는 지원서를 쓰느냐 등의 얘기가 나왔다. 여기서부터 시작해 한밤중에 ‘검열이 뭐냐’ 토론이 벌어졌다. 생각과 입장이 각자 달랐다. 이걸 보면서 한편으로 이게 우리를 뭉치게 하는 힘이 아니라 페스티벌 전에 찢어져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거 챙기고, 입단속 하고, 할 공연만 하라고, 훈련시키고 길들이는 기분이었다.
◇ “검열 페스티벌, 일회성 행사로 끝내지 않을 것”
= 윤 : 이윤택 선생님 정도면 모를까, 우리는 부담 없다. 서울시에서 일종의 소극장 지원 사업을 하고 있는데, 연우소극장을 올해 우리 4명이서 9개월간 운영하도록 지원을 받은 상태이다. 이 공간을 어떻게 쓸지에 대한 고민을 하다 시작한 것도 있다.
= 김 :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연우소극장 운영 신청을 3팀 이상이 해야 했고, 이 중 3명(김수정, 윤한솔, 이양구)은 혜화동5기 동인이니 자연스레 만나서 함께 신청을 하게 됐다. 모여서 무슨 공연을 어떻게 할까를 논의하다, 검열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해서 시작한 거다.
= 윤 : 지난해 팝업씨어터 사태 이후 한 걸음도 못 나가는 정체된 상태라 답답한 점도 있었다. 전선이 와해된 상태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하게 됐으니, 일회성 행사 같은 축제를 하고 싶지는 않다. 사실 몽니를 부린 것도 있다.
◇ “검열, 연극인만의 문제 아니다”
▶ 밖으로 나가지 않고 무대 위에서만 하는 저항이 효과가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 부 : 그 지적에는 일부 동의한다. 올해 처음 ‘권리장전’이라는 이름으로 모여 공연을 해보는 거다. 연출마다 색이 다르다. 이경성 연출은 거리극을 한다. 거리에서부터 관객들을 모아 극장으로 오겠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포럼이나 준비하는 세미나도 단순히 이 업종 종사자나 전문가들로 구성해서 아는 얘기 주고받는 게 아니라, 관객과 만나려고 한다.
검열은 예술의 고유 성격인 '발산'하고 '충돌'하는 것을 저해한다. 예술이 획일화되면 저질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검열은 연극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예술을 향유할 국민의 문화 질 자체가 낮아지는 거다. 단순히 종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 그렇게 되려면 긴 싸움을 해야 할 것 같다.
= 윤 : 모자란 생각인데, 20주를 하다 보면 피아가 구분될 거다. 문예위만 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검열은 이 안에 누군가 동조하는 사람이 있고, 앞잡이 하는 사람이 있기에 가능하지, 그러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연극 판 안에서 실명이 거론되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일들을 분명히 하고 있다. 지금은 20팀이 시작했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참여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은 분명 다른 사람으로 나뉠 거다. 직접 공연으로 참여하든, 텀블벅으로 지원을 하든, 부대행사에 참여하든, 20주가 지난 쥐, 적과 아군이 확실하게 나뉘었으면 좋겠다. 나는 내부 싸움 없이 외부와의 싸움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무도 그 싸움을 안 하고 있다. 못 하고 있는 거기도 하다. 생각으로는 그 사람 따라가서 1인시위로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 김 : 좁게는 검열이라 했을 때 당한 사람만 당했다는 인식도 있는 것 같다. 같은 작업장 안에서도 그 사람만 당했다고 생각하고, 이 계통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저 사람들만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내 얘기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려면 우선 연극을 잘 만들어야겠지만.
= 이 : 나는 검열이 피아가 구분되는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는 사람과 당하는 사람, 이렇게 이분화되지 않는다. 검열의 층위는 아주 복잡하다. 표현이라는 장에서 억압하는 모든 종류의 행위에 다른 층위가 가려지는 분위기들이 있다. 이번 ‘2016권리장전_검열각하’에서 검열은 제한이 없다. 통상적인 국가 검열부터, 내면 검열, 그리고 넓게 보면 인간이 자기 의사 표현을 하는 데 가해지는 것 등 모든 종류의 검열을 얘기할 수 있다. 연출들이 각자 어떻게 잡을지는 모르겠다.
◇ “건강한 사회라면, 어떤 이슈든 이야기할 수 있어야”
▶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부 : 건강한 토론이 가능한 시대가 되면 좋겠다. ‘지원금 주면 안 돼’가 아니라, 어떤 주제든 얘기가 오갈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은 뭐가 나오면 ‘종북’, ‘어버이연합’, ‘가스통 할배’, ‘좌빨’ 등 오염부터 시켜서 얘기 자체를 할 수가 없다. 건강한 토론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면 좋겠다.
= 김 : 우리가 지금 ‘지원금 더 주세요’를 얘기하는 게 아니다. 지원금을 거부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지원금 제도 절차가 공정하고 투명해야 하며,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거다. 건강한 사회는 어떤 이슈든 이야기하고 공유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살릴 이야기와 사라질 이야기가 생긴다. 그런 사회라면 이런 항의적 페스티벌이 없어질 거다. 그리고 20팀 모여 하는 이 공연들에 관심을 가져 달라. 모르는 건 죄가 아닌데, 알고 모르는 척하는 건 문제가 있다. 또 알면서 행동 안 한다는 것도 문제이다.
※ '권리장전2016_검열각하'는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검열 발언’을 위해 프로젝트의 공용 예산 4300만 원을 풀뿌리 후원으로 모으고 있다. 후원은 첫 공연 시작 후인 16일까지 이어진다. 후원자에게는 6월 17일부터 관람 가능한 공연티켓 등을 증정한다. - 텀블벅으로 후원하기 : www.tumblbug.com/projectforright - 계좌로 직접 후원 : 우리은행 1005-702-539358 김수희(극단미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