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는 지난 2014년 9월 독일 출신의 울리 슈틸리케 감독에 축구대표팀 지휘봉을 맡겼다. 당시 한국은 국제축구연맹(FIFA) 세계랭킹에서 역대 최저인 63위까지 밀려난 상황이었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조별예선 탈락이라는 아픔을 맛본 한국 축구에 스타 플레이어 출신의 슈틸리케 감독은 새로운 희망과도 같았다.
외국인 감독 부임의 효과는 분명했다. “0부터 시작해 점차 강한 대표팀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목소리를 높인 슈틸리케 감독은 빠르게 한국 축구를 안정시켰다. 2014년 슈틸리케 감독 체제로 치른 네 차례 A매치 성적은 2승 2패. 파라과이와 요르단을 꺾었고, 코스타리카와 이란에는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2015년부터 ‘슈틸리케호’는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20차례 A매치에서 무려 16승 3무 1패의 뛰어난 성적을 거뒀다. 20경기를 치르는 동안 44골을 넣었지만 실점은 4골에 불과했다. 경기당 0.2골이라는 놀라운 기록은 FIFA 회원국 가운데 최저였을 정도로 한국 축구가 거둔 성과는 분명했다.
아시안컵 준우승, 그리고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동아시안컵 우승이라는 기대 이상의 성과도 한국 축구가 빠르게 브라질월드컵의 악몽에서 깨어나는 데 도움이 됐다. 하지만 2015년 한국 축구가 상대한 팀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1-1로 비긴 일본과 두 경기에서 1승 1패를 주고받은 호주 정도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객관적인 전력에서 한 수 아래의 상대들이다. 라오스는 두 경기를 치르며 13골을 헌납했고, 미얀마도 6골을 내줬다. 2016년 들어서도 3월에 치른 경기에서 한국 축구는 모두 한 수 아래의 팀에 승리를 거뒀다.
스페인, 체코와 원정 평가전은 그동안 약체를 상대했기 때문에 결과가 좋았다는 비난을 씻을 절호의 기회였다. ‘슈틸리케호’가 꿈에서 깨어나 진짜 세상 밖으로 나오는 첫 번째 관문이었다. 하지만 스페인과 첫 경기에서 1-6으로 대패를 당하며 2018년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을 앞둔 슈틸리케 감독의 계획은 무산됐다.
세계랭킹 6위 스페인만큼은 아닐지라도 29위 체코도 분명 강한 상대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번 유럽 원정 평가전이 자칫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을 앞둔 ‘슈틸리케호’의 자신감을 꺾는 결과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과거 히딩크 감독 체제의 축구대표팀도 두 차례나 0-5 참패의 아픔을 겪고 극복한 덕에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쓸 수 있었다.
'슈틸리케호'는 스페인에 이어 체코에도 패할 수도 있다. 객관적인 전력의 차가 분명하다. 하지만 두 경기가 같은 결과로 끝나더라도 내용까지 같아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