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원 8명 죽음의 공포 속 2시간…'정부는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5월31일 전복된 협동호, 해수부·해경 상황실 구조신호 먹통

조업중이던 배가 전복되면서 구명뗏목을 타고 2시간 동안 표류하다 어선순시선에 의해 구조되는 선원들.
지난달 31일 독도 남쪽 바다에서 조업을 하던 29톤급 어선이 전복됐지만 선원 8명 전원이 극적으로 구조됐다.

그런데, 해양수산부와 해양경찰, 수협 등 3개 기관은 어선이 전복된 사실도 선원 8명이 2시간 동안 망망대해에서 죽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던 상황도 전혀 몰랐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 해역을 지나던 동해어업관리단 소속 어선순시선이 우연히 발견해서 다행이지, 대형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도 있었던 아찔했던 순간이었다.

정부가 2014년 세월호 참사와 지난해 돌고래호 전복사고를 계기로 선박 사고예방과 인명 구조 체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번에도 정부의 역할은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 근해통발어선 '협동호' 전복…사고 일지

울산 선적의 근해통발어선인 협동호(29톤)는 지난달 31일 독도 남쪽 51마일 지점에서 조업을 하고 있었다. 이 배에는 선장을 포함해 모두 8명이 타고 있었다.

그런데 낮 12시쯤 협동호 선체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기울어지면서 전복됐다. 선장 주모 씨는 "배가 어구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한쪽으로 쏠리면서 전복됐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다행히 구명뗏목이 펴지면서 선원들은 뗏목에 올라 탈 수 있었다. 이후 선원 8명을 태운 뗏목은 2시간 가량 망망대해를 표류하다 이날 오후 2시쯤 근처를 지나던 어선순시선(무궁화34호)에 발견돼 극적으로 구조됐다.

◇ 긴급 구조신호 장비 먹통…정부 상황실 깜깜이

문제는 이처럼 협동호가 전복돼 선원 8명이 2시간 남짓 표류하는 동안 해수부와 해경, 수협 등 관리감독 기관은 아무도 몰랐다는 사실이다.


동해어업관리단 관계자는 "선원들이 쏘아 올린 신호홍염(붉은색 연기)을 순시선에 타고 있던 관리단 직원들이 봐서 다행이지, 전복사고와 관련해 구조 요청이나 지시를 받은 바가 없다"고 말했다.

당시 사고 선박은 AIS(자동위치식별장치)와 VHF-DSC(초단파대 무선전화기), V-PASS 등 3개의 신호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이 중 AIS와 VHF-DSC는 수협 무선통신국을 통해 해수부 상황실과 연결되고, V-PASS는 해경 상황실과 연결된 장비다.

해수부 관계자는 "이들 장비를 갖춘 선박은 조업위치와 입출항 등이 자동으로 각 기관 상황실에 전달되는데, 협동호가 너무 갑자기 기울어지는 바람에 선장 주 씨가 미처 버튼을 누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 해수부, 해경 구조신호 체계 방치…해상안전 무방비 노출

하지만, 선박은 상황에 따라 순식간에 전복될 수 있는 돌발변수가 얼마든지 있다. 따라서 선박의 좌우 기울기를 판단해 자동으로 위기경보를 전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

바로 해경이 관리하는 V-PASS 장치다. 소형 어선을 포함해 국내 거의 모든 선박이 이 장비를 갖추고 있다. 그런데, 해경이 지난해 돌고래호 전복사고 이후 V-PASS의 이런 자동발신 기능을 없앤 게 화근이 됐다.

해수부 관계자는 "해경에 위기상황이 접수돼 출동하면 잘못된 발신이 많아서 상황실 업무에 혼란을 준다는 이유로 V-PASS 자동발신 기능을 폐지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결국, 이번 협동호 전복사고의 경우, V-PASS의 자동발신 기능이 작동됐다면 선원들이 2시간씩 죽음의 공포와 싸우지 않아도 됐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뿐만 아니다. 해수부와 수협이 통제하는 AIS 위치식별장치의 경우도 설치 선박들은 반드시 전원을 껸 상태에서 운항해야 한다.

하지만, 어선 선장들은 조업위치가 드러나 자신들만 알고 있는 황금어장이 노출될 수 있다며 전원을 끈 상태에서 운항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해수부와 수협은 이들 선박에 대해 별다른 제재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해수부 관계자는 "선박들이 AIS 전원을 수시로 껐다, 켰다 반복하기 때문에 단속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세월호 참사 이후 선박 안전과 신속한 구조 활동을 위한 장비설치 예산을 지원했지만 관리감독을 소홀히 하면서 해상안전을 방치하고 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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