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욱 떨어진다 홍시하나 / 서늘하다"

신간 시집 '마지막 사랑 노래', 문충성 지음

외할머니 얼굴 보듯
그 때
높은 가지에서
투욱 떨어진다 홍시 하나
서늘하다
-'홍시' 부분

문충성 시인의 스물한번째 시집 '마지막 사랑 노래'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됐다.

문충성은 바다, 무지개, 바람, 달빛과 같은 따뜻하고 친근한 시어들을 그리움이란 감정에 엮어 그가 끝내 채우지 못한 결핍과 갈망의 정서를 풀어놓는다. 특히 하늘, 허공, 무지개 등의 자연적 물상은 시인이 바라는 이상적 모습을 상징하는 시어로 기능하면서 이곳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과 목메도록 애타는 심정을 보여준다.

그대에게도 날아가나니 괴로움이여!
그대도 내게로 날아오라 그리움이여!
하나가 될 수 있을까 사랑이여!

(중략)

눈 되어 눈으로 만날까
물 되어 물로나 만날까
그대 그리움이여! 아아!
흙이 될 나의 꿈


마지막 나의 노래 아무도 몰래
하늘 한 녘에 묻고 가나니 푸르르르
-'마지막 사랑 노래' 부분

하늘이라는 높디높은 곳을 향하는 그의 마음은 괴로움이자 그리움이다. 하늘에 끝내 도달하지 못한 채 지상으로 떨어지는 화자의 마음은 때론 눈으로 때론 물로, 마침내 흙으로 곤두박질친다. 시인은 도달하지 못한 마음을 “아무도 몰래” “하늘 한 녘”에 묻을 수밖에 없다. 그대와 함께 도달하고픈 공간은 결코 닿을 수 없는 곳들이고, 이에 대한 절망은 오히려 사랑과 자유에 대한 그리움을 증폭시킨다.

거짓말쟁이들이 아름다운 세상을 아름답게
뒤섞어놓는다고 그런가
잘나고 형편 있는 녀석들
꼽아보며 아부 잘하고 비슷비슷한 끼리끼리 만들어
힘 기른 자들 오늘도
좌지우지하는 세상
-'절룩 절룩 밥 세상' 부분

이번 시집의 해설을 쓴 김진하 문학평론가는 “낭만적 지향이 강렬한 만큼 이를 가로막은 현실의 타락은 신랄한 비판의 대상이” 된다고 말한다. 끼리끼리 뭉쳐 아부하고 서로 힘자랑하는 이들이 판치는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목소리는 항상 낭만을 품고 사는 시인의 손에서 씌어졌기에 더욱 강렬하게 부각된다. 실제로 문충성은 그의 산문을 통해 “산업화 시대에 나는 서서히 아웃사이더가 되어갔”고 “1980년대 접어들어 나는 나를 잃어버”렸다는 문장으로 돈이 최우선이 되는 현실을 겉도는 자신을 고백하곤 했다. “거짓말쟁이들이” “좌지우지하는 세상”에서 시인은 “울려 해도 울지 못”할 뿐 아니라 스스로를 “싸구려”(「요즘 귓속에서」)라는 단어 속에 가둠으로써 스스로의 아픔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시인은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다. “나는 살아 있는 동안 이 ‘한 편의 시’ 쓰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다짐처럼 완성된 하나의 이상적 낭만을 향해 나아가는 그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그런 그가 꿈꾸는 이상은 무엇일까. 그의 존재의 뿌리가 되는 지향점, 이상향으로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두 가지로 얘기해볼 수 있을 것이다. 첫번째는 절망스러운 현실 속에서 유일한 안식이 되어주는 모성의 존재들이다.

올라간다 미끄러지며
이 하늘 저 하늘로

찢어진 구름 타고
오늘도

엄마가 사는
하늘로
-'승천 연습' 부분

그간 그의 시집에서 그는 외할머니, 아내, 딸, 손녀, 며느리 등 그의 주변에 머무는 여성들에 대한 강한 애정을 보여왔다. 이번 시집에서는 “엄마”라는 존재를 직접적으로 호명하면서 이상적 존재의 모습을 좀더 명확히 제시한다. “엄마가 사는/하늘”이라는 시구는 이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데, 그가 다양한 물상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이상적 공간에는 “엄마”가 살고 있고, 우리는 그곳으로 가야 한다는 지점에서 그러하다. “이번 시집에서 호명되는 ‘엄마’는 시인이 그동안 구원의 처소로 의탁하였던 모든 여성적 존재들의 시원에 있는 근원적 모성으로서, 그리고 모태의 소리로서”(김진하) 그가 모색하는 낭만적 심상에 모성으로 대표되는 사랑의 충만함이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문득 옛 생각
내 유년의 가오리연
빈 감나무 가지에 걸려
아직도 울고 있을까
제주도 제주읍 남문배꼇
빈 길 된
초가
-'산수유 가지에 걸려 우는 가오리연' 부분

두번째 그의 근원의 공간은 바로 제주도다. 제주도는 50여 년의 세월을 보낸 시인의 실제 고향이자 시시때때로 돌아다보게 되는 회귀의 장소이다. 각주 없이 달린 중간중간의 제주도 방언(도체비 고장, 고치밤부리, 대죽낭 등)은 제주에서 태어나 마음속에 평생 고향을 품고 살아온 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지난 시집 '허물어버린 집'(문학과지성사, 2011)에서 4.3 사건으로 얼룩진 유년 시절의 기억을 그렸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지나치게 상권에 침식당해 이전의 흔적을 지워가고 있는 현재의 제주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과 그럼에도 차마 놓을 수 없는 애착을 드러낸다. “삶이 고달프면 바닷가로 나오라”는 시인의 권유처럼 시인에게 제주도와 제주바다는 “불타는 가슴/어루만져줄”(「바닷바람」) 치유의 공간으로 작용하며, 시인을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문충성 지음/문학과지성사/139쪽/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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