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의 마지막을 함께한 뒤, 세상에 홀로 남은 루이자는 윌이 당부한 대로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고 고향을 떠나 런던에 정착하지만, 윌을 죽게 했다는 죄책감과 윌이 곁에 없다는 상실감으로 좀처럼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없다. 이런 루이자에게 어느 날 갑자기 의도하지 않은 자살 소동과 함께 상상도 하지 못한 또 다른 윌 트레이너가 찾아온다. 과연 루이자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을까?
책 속으로
나는 윌의 이름도 제대로 말할 수 없었다. 그 사람들의 가족 관계 이야기, 30년 동안의 결혼생활 이야기, 함께 살며 아이들을 키운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난 마치 사기꾼이 된 것 같았다. 나는 6개월 동안 간병인 노릇을 했다. 윌을 사랑했고, 윌이 생을 마감하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그 6개월 동안 윌과 서로에 어떤 존재였는지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상대방의 짧은 농담과 직설적인 진실과 쓰라린 비밀을 이해한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이 내가 모든 것에 대해 느끼는 방싱을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그가 내 세상을 완전히 바꾸어놓아사 그가 없이는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다는 건? 그런 생각이 드는데, 슬픔을 내내 다시 살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것을 상처를 자꾸 뜯어서 낫지 못하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나는 내가 어떤 일에 가담했는지 알고 있었다. 내 역할도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것을 자꾸자꾸 곱씹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71~72쪽
나는 미처 생각도 하기 전에 작은 테이블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잡고서 키스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앞으로 다가와 키스를 받아주었다. 그러다 누군가 와인 잔을 쓰러뜨렸지만, 멈출 수 없었다. 영원히 그와 키스하고 싶었다. 이것이 무엇이며, 무슨 의미인지, 앞으로 얼마나 일이 복잡해질지, 이런 생각은 모두 막아버렸다. ‘자, 어서. 인생을 살아.’ 나 자신에게 말했다. 온몸에서 이성이 흘러나가고 맥박만 남았다. 나는 그에게 하고 싶은 것만을 바라는 존재가 됐다.
― 233쪽 중에서
“사람들은 슬픔을 지겨워하는 것 같아요.” 나타샤가 말했다. “정해진 시간만, 6개월 정도만 슬퍼할 수 있고, 그다음에도 계속 슬퍼하면 사람들은 ‘나아지지’ 않는다고 살짝 짜증을 내죠. 불행에 매달려 있으면 제멋대로 군다고 해요.”
“그렇지!” 주위에서 모두 동의하며 웅성거렸다.
“요즘도 상복을 입으면 더 편할 것 같아요.” 대프니가 말했다. “그러면 내가 아직 슬퍼한다는 것을 모두 알 수 있으니까.”
“운전 연습생 표지처럼 한 해가 지날 때마다 상복 색깔을 바꾸는 것도 좋겠네요. 검정에서 다음에는 진한 자주색으로.” 린이 말했다.
“그러다 다시 행복해지면 노란색이 되는 거죠.” 나타샤가 씩 웃었다.
“아, 안돼요. 내 피부에 노란색은 정말 안 어울려요.” 대프니가 조심스레 웃었다
- 495쪽 중에서
조조 모예스 지음/ 이나경 옮김/북이십일 아르테/536쪽/1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