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창의적인 삶을 위한 과학의 역사'

신간 '과학의 역사'는 과학사를 쉽고 재밌게 풀어쓴 책이다. 문명의 발생부터 디지털 시대에 이르는 과학이 40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다. 이는 각 장이 짤막하게 구성되어 있음을 알려준다. 각 장의 내용을 서술할 때, 먼저 사회적 배경을 찬찬히 설명해줌으로써 당시 과학의 상태나 발견들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1장을 보자.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과학은 마법·종교·기술과 함께 세상을 이해하고 통제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구체적으로 과학은 쉽게는 매일 아침 떠오르는 해를 관찰하는 것이며, 어렵게는 새로운 화학 원소를 발견하는 것이다. 마법은 별을 보고 미래를 점치거나 검은 고양이가 지나간 자리를 피하는 등 우리가 미신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종교는 우리로 하여금 신의 노여움을 가라앉히기 위해 제물을 바치게 하거나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고, 기술은 불을 밝히거나 새로운 컴퓨터를 만드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인도와 중국 그리고 중동의 강가에 정착했던 최초의 사람들은 과학과 마법, 종교, 기술 이 네 가지를 적절히 이용했다. 강 유역은 비옥해서 큰 공동체를 먹여 살릴 만큼 충분한 작물을 매년 수확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공동체의 몇몇 사람들은 한 가지 일에 집중해 전문가가 될 시간적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 이 최초의 ‘과학자’(물론 당시에는 그렇게 부르지 않았겠지만)는 아마도 당시의 사제들이었을 것이다.”

이 책의 도입부이니만큼 과학의 본질을 “인간에겐 주변 세계에 대해 탐구할 능력뿐 아니라 호기심이 있었다. 이 호기심이 바로 과학의 핵심이다”고 밝히면서 사회생활과 연결해 먼 옛날의 과학을 서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좀더 구체적으로 알기 위해 고대 이집트에 대한 내용을 따라가 보자.

“고대 중동 지방에는 강력한 힘을 가진 몇몇 집단들이 있었다. 그런 집단 중 우리가 가장 많이 알고 있는 것은 일찍이 기원전 3500년경 나일 강 유역에 정착한 이집트인이다. 이집트만큼 하나의 자연 현상에 의존한 문명은 전무후무했다. 이집트인의 삶은 나일 강에 달려 있었다. 나일 강은 매년 크게 범람하면서 토사를 충분히 공급해 강둑 주변의 땅을 기름지게 했고, 그 결과 사람들은 다음 해 농사를 준비할 수 있었다. 이집트 날씨는 매우 덥고 건조하기 때문에 그림과 상형문자 등을 포함한 많은 유물이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것들을 보고 감탄하며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한다. 하지만 이집트가 그리스와 로마에 정복당한 후 상형문자를 읽고 쓰는 방법이 잊히는 바람에 약 2000년간 이집트 상형문자의 뜻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1798년 프랑스의 군인 한 명이 이집트 북부 로제타 인근 작은 마을의 오래된 돌무더기에서 둥근 판(tablet)을 발견했다. 판에는 상형문자, 그리스 문자 그리고 데모틱(demotic)이라는 더 오래된 이집트 문자로 선언문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 로제타석은 영국으로 옮겨졌고, 지금은 대영박물관에서 관람할 수 있다.) 이는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할 수 있게끔 해준 놀라운 발견이었다. 학자들은 그리스어를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신비한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할 수 있었다, 이로써 오늘날 우리는 고대 이집트인의 생각과 관습에 대해 확실히 알 수 있다.
이집트의 천문학은 바빌로니아의 천문학과 비슷했다. 하지만 이집트인은 내세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의 천문학은 더 실용적이었다. 그들은 달력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했다. 달력은 언제 씨앗을 뿌리는 것이 가장 좋은지 알아내거나 나일 강의 범람을 예측하기 위해서도 필요했지만 종교 축제를 계획하는 데도 무척 중요했다. 그들에게 한 해는 360일이었다. (일주일은 10일, 한 달은 3주, 1년은 12개월이었다.) 그리고 계절에 차이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한 해가 끝날 때마다 5일을 추가했다. 또 이집트인은 우주가 상자 모양의 직사각형이라고 여겨, 세계는 상자 바닥에 있고 나일 강이 정확하게 세상의 한가운데를 흐른다고 믿었다. 한 해는 나일 강이 범람하면서 시작되었는데, 나중에는 밤하늘에서 가장 밝은 별인 시리우스가 뜨는 것으로 기준이 바뀌었다.”

이처럼 구체적으로 사회적 배경과 일반 역사를 연관지어 과학을 더욱 흥미롭고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저자는 과학도 누적된 지식 속에서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학문이라는 점을 특히 강조하면서, 과학도 여러 분야로 나뉘는데 이를 극복해 종합적 관점에서 책을 집필함으로써 독자들이 좀더 쉽게 과학의 틀이 확대하고 심화하는 과정을 이해하도록 이끈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과학의 최신 성과까지 모두 아우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지막 세 장(38장 ‘생명의 책’ 읽기: 인간 게놈 프로젝트|39장 빅뱅|40장 디지털 시대의 과학)은 현재 과학의 트렌드를 분석한다. 마지막 장 “디지털 시대의 과학”에서는 알파고가 보여준 성과에 우리 모두가 놀랐듯, 처음 컴퓨터를 본 사람들이 놀라고 당황했음을 감추지 못했다고 먼저 밝힌다. 컴퓨터 개념을 처음 제시한 19세기 영국의 수학자 베비지가 보여주고자 한 것은 “기계가 자연의 정상적인 과정에서는 보여줄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컴퓨터가 현재의 기술 수준에 도달하기까지의 역사를 추적한다. 우선 1800년대 말에는 미국 수학자 허먼 홀러리스(1860∼1929)가 많은 정보를 분석하기 위해 구멍 뚫린 두꺼운 종이를 사용한 전자 기계를 발명했다. 종이에 구멍을 정확하게 뚫어 기계에 넣으면 그 기계가 데이터를 ‘읽어서’ 정보를 처리할 수 있었다. 홀러리스 기계는 정부가 인구를 더 잘 파악하기 위해 모은 센서스 양식에 사람들이 기록한 정보를 분석할 때 매우 효과적이었다. 기계는 사람들이 돈을 얼마나 버는지, 각 가구당 몇 명의 사람이 사는지, 나이와 성별은 어떤지 같은 기본적인 정보를 무척 빠르게 계산할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대부분의 컴퓨터는 이 천공 카드 방식으로 작동했다. 그 이후 컴퓨터는 군사적 용도로 사용되면서 발달했다. 포탄이 얼마나 날아갈지 계산하고, 적의 메시지를 해독하는 기밀 작전에서 컴퓨터는 아주 유용했다.

그러던 중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뛰어난 수학자 한 명이 등장하는데, 그가 바로 엘런 튜링이다. 그는 에이스(Ace)라는 초기의 전기 컴퓨터를 발명하고, 컴퓨터가 작동하는 방식과 인간의 두뇌가 작용하는 방식 사이의 관계 그리고 ‘인공 지능(AI)’, 곧 체스를 둘 수 있는 기계 개발과 관련해 엄청난 통찰력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전쟁 중에 제작한 거대한 기계들은 충분히 가치 있었지만 과열되는 진공관 때문에 한계가 있었다. 이어서 컴퓨터를 비롯해 많은 것을 변화시킨 발명품이 탄생했는데, 바로 트랜지스터다. 1947년 말에 존 바딘(1908∼1991), 월터 브래튼(1902∼1987) 그리고 윌리엄 쇼클리(1910∼1989)가 개발한 이 장치는 전기 신호를 증폭하고 전환할 수 있었다. 트랜지스터는 진공관보다 작고 열이 훨씬 적게 발생했다. 그들은 이것을 사용해 온갖 종류의 전기 장비를 만들었다. 그중 트랜지스터라디오는 진공관 라디오보다 훨씬 작고 더 효율적이었다. 3명은 이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고, 바딘은 트랜지스터와 현대적인 회로를 가능케 해준 ‘반도체’ 연구로 생애 두 번째 노벨상을 받았다.

이어서 냉전 기간인 1945년부터 1991년까지 군대에서는 계속해서 컴퓨터를 개발했다. 두 초강대국이던 미국과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동맹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불신했다. 상대방의 정보를 분석하기 위한 컴퓨터들이 계속 개발됨으로써 점점 더 강력하고 대량의 정보를 고속 처리하는 컴퓨터는 과학자들에게 아주 유용했다. 덕분에 컴퓨터공학자들은 재빨리 다양한 과학 연구팀의 일원이 되었다.

1960년대 초에는 디지털 메시지를 더 작은 단위로 쪼개 각 단위를 가장 쉬운 경로로 보낸 다음, 목적지인 수신 컴퓨터 화면에서 재조립하는 방법인 ‘패킷 교환(packet switching)'을 발명했다. 그 이후 컴퓨터 그룹의 연결인 네크워킹이 더욱 용이해졌으며, 이는 과학자뿐 아니라 일반 학자들에게도 많은 혜택을 가져다주었다. 컴퓨터는 학계가 연구하고 서로 소통하는 방법을 계속 변화시켰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물리학자들이 일하는 유럽입자물리학연구소, 곧 CERN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입자가속기, 곧 강입자가속기를 보유하고 있으며(39장 참조) CERN의 컴퓨터 전문가들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통신망과 자료 분석을 새로운 경지로 끌어올렸다. 그들 전문가 중에는 팀 버너스 리(1955∼ )도 있었다. 버너스 리는 언제나 컴퓨터의 매력에 심취했다. 게다가 부모도 컴퓨터 분야의 초창기 선구자였기 때문에 컴퓨터와 함께 성장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버너스 리는 옥스퍼드에서 물리학을 공부한 다음 CERN에 근무하던 중 1989년 ‘정보 관리’를 위해 연구비를 신청했다. CERN의 상사들이 도움을 주긴 했지만 그는 컴퓨터와 전화선만 있으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인터넷상의 정보를 누구나 쉽게 얻을 수 있게끔 해주는 아이디어를 고집스럽게 추구했다. 그리고 동료 로베르 카요(1947∼ )와 함께 월드와이드웹(WWW)을 발명했다. 월드와이드웹은 처음 CERN과 다른 물리학 연구소 두 곳에서만 사용했다. 그러다가 1993년에 대중에게 공개했는데, 직장뿐 아니라 가정에서 PC 사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시기였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1955∼ )와 애플의 스티브 잡스(1955∼2011)처럼 PC 혁명을 주도한 사람들은 현대 과학의 영웅이다. (그리고 큰 부자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1955년은 컴퓨터와 관련해 매우 중요한 해다. 버너스 리, 게이츠, 잡스 모두 그해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이처럼 40장을 요약해 소개한 바와 같이 과학은 누적적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최신의 과학까지 이 책은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자가 이 작은 책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과학이 특별한 순간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망원경의 발명은 천체에 대한 당시의 인식을 바꿔놓았으며, 최근의 허블 망원경은 더욱더 그러하다. 그리고 현미경의 발명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던 세상을 연구할 수 있게 했다. 그것은 과학의 특별함이 단 한순간에도 벌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강화한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명심해야 할 사실은 오늘날의 과학이 얼마 전까지 신의 영역이라고 간주하던 분야까지 넘볼 정도로 과거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두운 측면도 있다. 컴퓨터는 과학자와 학생뿐 아니라 범죄자와 해커도 사용할 수 있다. 공익을 위해 과학과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악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에겐 훌륭한 과학자도 필요하지만 과학이 더 나은 세계를 만들 수 있도록 감시할 훌륭한 시민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윌리엄 바이넘 지음/ 에코리브르/336쪽/ 1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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