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 말아요, 그대" 새삼 떠오른 6개월 전 '김현수의 한 마디'

'시련을 이기면 웃을 수 있습니다' 볼티모어 김현수는 스프링캠프에서 다소 부진하면서 주전 경쟁에서 밀리는 설움을 겪었지만 묵묵히 벤치 신세를 이겨내며 30일(한국 시각) 데뷔 첫 홈런을 결승포로 장식하는 등 서서히 입지를 다지고 있다. 6개월 전 미국 진출 기자회견 때 야구 후배들에게 전한 그의 메시지를 스스로 실천하는 모양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회견 당시 모습.(자료사진=황진환 기자)
30일(한국 시각) 드디어 메이저리그(ML) 데뷔 첫 홈런을 쏘아올린 'KBO산 타격 기계' 김현수(28 · 볼티모어). 클리블랜드와 원정에서 7회 통렬한 우월 1점 솔로포를 터뜨렸다.

특히 4-4로 맞선 가운데 터진 결정적 한방이었다. 결국 볼티모어가 6-4로 이기면서 김현수의 홈런이 결승포가 됐다. 김현수는 경기 후 "내 첫 홈런이 팀 승리에 기여해 정말 기쁘다"고 벅찬 소감을 밝혔다.

김현수의 데뷔 첫 홈런이 더 감격적인 것은 그동안 겪은 설움 때문이다. 김현수는 두산에서 뛰던 지난해 생애 첫 한국시리즈(KS) 우승을 이끈 뒤 FA(자유계약선수)로 볼티모어와 2년 700만 달러(약 82억 원)에 계약했다. 그러나 스프링캠프에서 다소 부진하면서 갖은 고초가 시작됐다.

ML 입성을 반겼던 구단은 태도가 싹 바뀌었다. 벅 쇼월터 감독은 마이너리그행을 권유했고, 구단은 현지 매체에 '한국 복귀설'을 흘렸다. 2014년의 윤석민(KIA)처럼 마이너리그에 보낸 뒤 KBO 리그로 유턴시키려는 속셈이었다.


김현수는 버텼다. 계약 조건에 포함된 마이너리그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빅리그 로스터에 살아 남았다. 구단의 눈밖에 난 김현수는 당연히 기회를 보장받지 못했다. 신인 조이 리카드에 밀려 대부분 경기를 벤치 멤버로 치렀다. KBO 리그 정상급 타자의 설움이었다.

'살다 보니 이런 날이...' 볼티모어 김현수(왼쪽)가 30일(한국 시각) 클리블랜드 원정에서 결승포로 팀 승리를 이끈 뒤 볼티모어 지역 방송과 인터뷰를 하는 모습.(사진=중계 화면 캡처)
그런 김현수를 버티게 한 것은 그의 인생 역정이었다. KBO 리그 시절 겪었던 시련과 고난을 이겨냈기에 ML에서도 인내할 수 있었다. KBO 스타로서 군림했던 전성기가 아닌 불안했던 연습생 신분이던 데뷔 초창기로 돌아간 마음가짐 때문이었다.

알려진 대로 김현수는 신고 선수 출신이다. 신인 드래프트에서 외면받은 김현수는 2006년 두산에 연습생으로 입단했다. 이후 2군에서 피나는 훈련을 소화한 끝에 김경문 감독(현 NC)의 눈도장을 받아 주전으로 도약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과 타격왕에 오르는 등 정상급 타자로 거듭났다.

이런 김현수의 입지전적인 삶은 ML 진출 기자회견에서도 드러났다. 볼티모어와 계약한 이후 지난해 12월 국내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김현수는 자신의 인생관과도 같은 조언을 야구 미생들에게 남겼다.

당시 김현수는 자신처럼 2군에 머물러 있는 선수들에게 대한 당부를 묻는 취재진에 의미있는 답을 내놨다. 김현수는 "기회가 언제 찾아올지 모르니까 자기 마음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2군에 있고, 연습생이니까 하는 생각보다 (1군과) 똑같은 선수라 생각하고 마음을 놓지 않고 언제든 1군에 간다는 생각하고 준비를 잘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공의 원동력이 된 고된 2군 생활을 함께 한 은사들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았다. 김현수는 당시 회견에서 "1군 기회를 주신 김경문 감독님(현 NC)과 연습생으로 들어왔을 때 1년 동안 타격을 만들어주신 김광림 코치님(현 NC), 또 송재박 2군 감독님과 수비를 많이 도와주셨던 김민호 코치님(현 KIA) 등 키워주신 분들이 기억난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이제 시작이다' 김현수는 스프링캠프 시범경기에서 부진을 보이며 고전했지만 최근 5경기 연속 선발 출전하는 등 차츰 팀내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자료사진=구단 홈페이지)
이런 자세는 감격적인 ML 첫 홈런을 날린 직후에도 같았다. 이날 결승포를 날린 뒤 김현수는 현지 인터뷰에서 벤치 신세에 대해 "내가 못했기 때문에 벤치에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곧이어 "언제든 나가면 잘하려고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면서 "그게 지금의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며 뿌듯한 소감을 밝혔다.

아직까지 김현수는 주전을 확보한 것이 아니다. 절박한 상황에서 이를 악물고 뛰면서 현재는 타율 3할8푼3리의 고타율을 유지하고 있으나 이 기세가 계속되리라 보장할 수는 없다. 조금 주춤한다면 외야 주전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

하지만 김현수의 멘탈은 이미 KBO 최고다. 2007, 08년 SK와 한국시리즈에서 잇따라 승부처 병살타로 팬들의 집중포화를 받은 김현수다. 그럼에도 김현수는 오뚝이처럼 일어서 지난해 우승을 일궈냈다. 지난해 포스트시즌 도중에는 "자신을 욕하는 기사를 써달라"는 여유를 보이기까지 했다. 그에 비하면 ML의 고초는 아무 것도 아니다.

초반 벤치 설움을 이겨내고 차츰 ML 주전급 선수로 도약을 이뤄가고 있는 김현수. 숱한 시련과 고난을 이겨낸 그이기에 현재의 입지가 더욱 탄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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