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기업 꿰찬 '정피아·산은낙하산'…기업부실화는 인재(人災)

[금융인재(人災) ①]"금융당국·산은에 깊게 뿌리박힌 관행 '정치권 낙하산' 끝내야"

조선·해운 부실 경영과 관련해 금융당국의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다. 수조 원에 달하는 혈세가 들어갔음에도 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고, 그저 책임회피성 발언만 쏟아내고 있어서다. 실제 국책은행의 관리·감독 전권을 행사하는 금융당국은 자신은 책임이 없다는 듯, 국책은행의 방만 경영 탓만 하고 있다. 이에 관리·감독을 받는 입장인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 내부에서는 억울함을 삭이고 있는 분위기다. "정부가 시켜서 한 일인데 책임은 우리가 진다"는 하소연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CBS노컷뉴스는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이 망가진 이유와 금융당국의 교묘한 셈법 등 금융인재(人災)에 대해 집중적으로 보도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부실기업 꿰찬 '정피아·산은낙하산'…기업부실화는 인재(人災)
(사진=자료사진)
조선·해운업체들의 구조조정 여파가 국책은행의 건전성에 직격탄을 날리며 국내 금융시장에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금융권의 조선업계 전체 대출규모는 80조 원가량. 천문학적인 여신에도 불구하고 금융권은 충당금 적립을 충실하게 진행해오지 않아 지금 아노미 상황이다.

대우조선 여신은 채권은행 대부분이 '정상'으로 분류했으며, 유일하게 국민은행만 이를 '요주의'로 분류하고 있었다. 여신 건전성은 위험성이 낮은 순서대로 정상→ 요주의→고정→회수 의문→추정 손실 등 5단계로 나뉘는데, 부실채권은 고정 이하 여신을 의미한다. 정상은 충당금을 거의 쌓지 않지만 요주의부터는 상당한 충당금을 쌓아야 한다.

특히 여신의 대부분이 몰린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많게는 3조 원이 넘는 금액을 충당금으로 적립해야 해 최악의 경우 수십조 원의 자본확충이 필요한 상황이다.

◇ 건전성에 빨간불 켜진 국책은행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의 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진 지 오래다. 산은과 수은은 부실기업 구조조정 실패로 자신들이 부실해진 상황이다. 해운·조선업체 대출금만 산은 8조3800억 원, 수은 12조8400억 원 등 21조 원 이상이다.

이렇게 조선·해운업체에 돈을 많이 빌려준 산은과 수은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제경제은행(BIS) 기준 총자본비율은 각각 14.3%, 10.1%다.

산은의 경우 BIS비율만 보면 괜찮아 보이지만, 부실채권 비율과 규모를 보면 상황이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산은의 부실 채권 비율은 5.68%로 시중은행 평균 1.13%의 5배에 달한다. 부실채권 규모도 7조3000억 원으로 시중은행 평균 1조7000억 원보다 4.4배가량 높다. 산은의 자산 건전성 지표는 시중은행과 비교하면 낙제 수준에 가깝다.

산은이 조선사와 해운사에 대해 과도하게 부실여신을 제공한 탓이다. 지금 정부와 한국은행이 직접 출자와 자본 확충펀드를 통한 간접출자 방식을 놓고 격하게 대립하는 것도 산은의 과도한 부실 여신 때문이다.

수은 상황은 더 나쁘다. 수은의 BIS비율은 9%대에 불과하다. STX조선 관련 충당금을 쌓게 되면 BIS비율은 더 낮아지게 돼 금융권에서는 "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는 탄식이 나오고 있다.

더욱 암담한 사실은 성동조선해양의 주채권은행도 수은이라는 점. 일부 시중은행들은 성동조선의 지원을 거부하고 채권단에서 빠져나갔다. 올해 단 한 건의 수주를 따내지 못해 시장에서는 STX조선 다음 구조조정 대상으로 성동조선이 꼽히고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최악의 경우 30조 원이 넘는 부실이 생길 수 있어 국책은행에 대해 최대 10조 원 규모의 자본확충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 책임은 국책은행에만 있을까…떠넘기고 입다문 '정치권과 당국'

정치권과 금융당국에서는 자본확충에 앞서 산은이 은행과 구조조정 대상기업 부실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기업의 수요 예측도 하지 못한 채 무턱대고 여신을 제공한 산은의 경우 자본확충에 앞서 부실의 책임을 반드시 져야 한다는 게 정치권과 금융당국의 주장이다. 선책임을 물은 후 돈을 투입해도 투입해야 한다는 논리다.

특히 20대 국회에서 1당으로 올라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이번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의 책임은 해당 기업인들뿐 아니라 산업은행에도 있다고 못 박으며 책임론에 불을 지폈다.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 대표는 지난 23일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외환위기 때도 산은의 방만 경영은 국민 세금으로 메웠다"며 "정부가 계속 출자해 적자를 메우는 도덕적 해이를 보였고 이런 방식이 영원히 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국가가 보장하는 은행이라고 예외로 취급할 수는 없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엄격한 기준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는 20대 국회에서 산은법 개정 등을 통해 견제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지난 24일 열린 더민주 원내대책 회의에서도 산은의 책임론이 제기됐다. 이 자리에서는 기업 경영인이 아닌 산은의 사외이사까지로 책임론이 확대됐다.

변재일 더민주 정책위의장은 "산은 등 채권단이 제대로 역할을 했는지, 사외이사들은 제대로 파견됐는지 의문"이라며 "정부는 위기상황을 만든 책임자에 대해 엄정하게 처벌할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변 의장은 "대우조선이 왜 이리 많은 적자가 발생한 것인지, 분식회계로 속인 것인지 등에 대해 전부 다 수사를 해봐야 한다"며 "대기업이라서 불법 행위의 책임을 면해주고, 국가기간산업이란 이유만으로 살려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최근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을 겨냥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두 기관의 경영에 대한 국민의 실망이 큰 만큼 아무리 자본확충이 시급해도 성과연봉제 도입을 비롯한 철저한 자구노력이 전제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사진=자료사진)
◇ 금융권 "정치권·금융당국 묵인이 부른 참사"

정치권과 금융당국의 이러한 모습을 바라보는 금융권의 시선은 씁쓸하기만 하다. 이번 부실기업의 지원이 다름 아닌 정치권과 당국의 합작이라는 이유에서다.

김기식 더불어민주당의원에 따르면, 2008년 이후 새롭게 임명된 대우조선해양의 사외인사 18명 중 12명이 전문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정치권 출신 낙하산이었다.

특히 신규 임명된 사외이사 18명 중 절반 이상인 10명이 소위 정권과 관련된 '정피아'로 분류된다. 대우조선해양의 사외이사 자리가 새누리당(한나라당) 정권의 보은인사에 이용됐다는 것이다.

대우조선해양 이사회는 사외이사 5명과 대표이사, CFO(최고재무책임자) 등 사내이사 2명, 통상 산업은행 기업금융 4실장인 기타비상무이사 1명 등 8명으로 구성된다. 사외이사의 임기는 2년이다.

2008년 이후 대우조선해양에 임명된 사외이사는 18명으로 교수 3명, 금융권 인사 2명, 대우그룹출신 1명, 관피아 2명, 정피아 10명이었다.

정권별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에서 임명된 사외이사는 총 11명으로 낙하산 사외이사는 7명(63.6%)이었으며, 7명 중 5명이 정피아였다.

이명박 정부에서 임명된 정치권 사외이사로는 안세영 뉴라이트 정책위원장, 김영 17대 대선 한나라당 부산시당 대선 선거대책 본부 고문, 장득상 힘찬개발 대표이사, 김영일 글로벌 코리아 포럼 사무총장,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을 들 수 있다.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대우조선해양에 임명된 사외이사는 7명 중 5명이 낙하산(71.4%)이었으며 5명 모두 정피아였다. 박근혜 정부에서 정치권 출신의 낙하산 인사가 더욱 심해졌다는 얘기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임명된 정치권 사외이사 5명 중 이종구 전 국회의원(17·18대), 조전혁 전 국회의원(18대), 이영배 인천시장(유정복) 보좌관 이상 3명은 현재 사외이사로 재임 중이다. 이 외에도 임기는 종료되었으나 신광식 제18대 대통령선거국민행복캠프경제민주화추진위원회위원, 고상곤 자유총연맹이사 역시 정치권 낙하산으로 꼽힌다.

◇ 산은도 자기 배만 채우기에만 급급

산은의 방만 경영에 대한 질타의 목소리도 거세다. 산은이 최대주주로서 대우조선해양의 관리·감독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최근 임명된 행장의 면면만 봐도 그렇다.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은 기재부 장관까지 지낸 MB 정부의 실세였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서금회(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 핵심이었던 홍기택 교수가 산업은행장을 맡았고 수출입은행장은 또 다른 서금회 멤버인 이덕훈 행장이 꿰찼다.

뿐만 아니라 산은은 관치금융을 그대로 답습했다는 평가다. 구조조정 대상 기업에 퇴직자를 내려보내는 관행을 버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최근 5년간 산업은행 출신 인사 19명이 구조조정 작업을 한 뒤 해당 기업의 상근감사, 재무담당 부사장 등 사내이사로 등재된 것으로 알려졌다. 구조조정 대상 기업 가운데 절반가량에 산업은행 출신 사내임원이 거쳐간 셈인데, 구조조정 기업당 한 명꼴로 있는 산업은행 출신 사외이사까지 더하면 전체 등기임원은 50여 명에 달한다는 것이다.

현재 구조조정의 핵심으로 떠오른 대우조선해양에도 전·현직 임원 자리에 여러 명의 산은 출신 인사가 자리를 꿰찼다고 전해졌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구조조정 기업에는 '산은 지정석'이 있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산은 의지대로 이뤄진 것이 없었던 측면이 있다"며 "정치권과 공무원 등 낙하산 인사로 채워져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고민볼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국기술교육대 산업경영학과 한상일 교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도를 겪으면 하나의 경제적 손실이 귀결되는데 현재는 그 손실에 대한 책임을 국고로 막으려고 한다"며 "그렇다보니 정치권이나 산은에서 구조조정을 통해 부실 기업을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리 보전을 위해 행동을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 교수는 "경제적 손실 주체가 확정돼야 하고, 그 주체한테 의사결정권을 줘야하고 그렇지 않으면 지금처럼 정치권이 개입하려고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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