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5월의 마지막 금요일인 27일 '금요일의 법칙'이 오랜만에 돌아왔다. 일명 '상시 청문회법'으로도, '청문회 활성화법'으로도 불리는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정부의 거부권 행사가 그렇고, 검찰의 홍만표 전 '검사장' 소환조사도 마찬가지다.
◇ 금요일 오전 '긴급 임시국무회의' 열어 '대리' 거부권 행사
우선 정부의 재의 요구를 보자. 정부는 이날 오전 7시쯤 "임시 국무회의"를 오전 9시에 열겠다고 '긴급' 공지했다. 국무회의는 통상 매주 화요일 개최된다. 필요에 따라 '임시' 회의를 그때그때 소집한다고 규정돼 있지만 말 그대로 임시일 뿐,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국회법 개정안은 지난 1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나흘 뒤인 23일 정부로 송부됐기 때문에 24일 '정례' 국무회의에서 논의했으면 될 일이다. 그러나 정부는 그러지 않았다.
하지만 정부는 금요일 오전 황교안 국무총리를 통해 재의 요구를 전격 발표하는 '변칙'을 택했다. 대통령이 정면에 나서지 않는 '대리 거부권' 행사에다 재의권한을 둘러싼 법적 논란에 기댄 '꼼수' 국무회의다.
◇ 국회 교체기 법적 논란에 기댄 '꼼수'라는 지적도
헌법 등에 따르면 대통령이 국회에서 송부된 법률안을 공포하는 대신, 재의를 요구하면 국회는 15일 내로 본회의를 열어 다시 법률안을 의결해야 한다. 29일로 임기가 끝나는 19대 국회는 본회의 소집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과반의석을 차지한 새누리당이 의사일정에 협조할 리가 없다.
이런 사정 때문에 국무회의 직후 긴급 기자회견을 연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다음주에 정례회의에서 의결하면 20대 국회로 재의권한이 넘어간다고 판단해 오늘로 당긴 것 아니냐"며 "나라를 정직하게 운영해야 하는데 이런 정략적 계산을 국민들이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고 지적했다.
◇ 검찰은 왜 홍만표 변호사를 금요일에 소환했을까?
강원 삼척 출신으로 대일고·성균관대를 졸업한 홍 변호사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 차남 현철씨 등이 연루된 대형 사건 등을 처리했다. 특히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비난을 사는 '박연차 게이트' 수사 당시 핵심 보직인 대검찰청 수사기획관을 지냈다.
이후 대검 기획조정부장이던 2010년 검-경 수사권 조정의 책임을 지고 홀연히 검찰을 떠낸 대표적인 '전관'이다. 검찰 입장에서는 검사장 출신의 유명 변호사를 피의자로 소환 조사하는 자체가 '망신살'이 아닐 수 없다.
'정운호 게이트'에 연루된 홍 변호사의 이니셜인 'H'가 여러 언론에 일제히 등장한 건 정확히 한 달 전인 4월 27일이다. 서초동의 '법조 기자'들 사이에서 홍 변호사의 이름은 그 한참 전부터 거론됐다. 그렇다면 검찰은 왜 홍 변호사를 꼬박 한 달이 지난 5월의 마지막 주 금요일에 소환했을까.
◇ '금요일의 법칙' 원조는 검찰…주말 동안 여론 희석돼
사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압수수색과 주변 조사 등을 거치다 보니 자연스레 이날로 소환 날짜가 정해졌을 가능성도 분명 있다. 반대로 검찰은 더 일찍 그를 부르고 싶었지만 홍 변호사 본인이 이날 출석하겠다고 주장했을 수도 있다.
다만 금요일이 상대적으로 뉴스의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검찰과 원조 특수통인 홍 변호사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리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반나절만 소나기를 맞고 나면 주말 동안에는 여론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 있다.
◇ '대리'에 '꼼수'…대통령의 전략은 과연 통할 것인가
다시 거부권 행사로 돌아가 보자. 정부가, 아니 청와대가, 정확히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날 국회에 재의를 요구한 것은 고도의 전략적 행위다. 24일의 정례 국무회의를 넘기고 오는 31일과 다음달 7일의 두차례 회의를 앞둔 상황에서 25일도, 26일도, 30일도 아닌, 27일 금요일을 '택일'한 것이다.
박 대통령의 '꼼수' 택일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20대 국회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의 반발이 만만치 않고, 법조계에서는 굳이 이날을 고른 데 대해 '원천무효'라는 주장까지 제기된 상황이다. 만약 재의에 부쳐진다면 총선 참패 한 달이 지나도록 계파 싸움에 골몰하고 있는 새누리당 내에서 추가 이탈표가 나오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13년 11월 헌정사상 초유의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를 해외 순방 중에 전자결재로 재가했다. 이번에도 국민의 대표인 국회 운영에 관한, 더불어 행정부를 통제하는 내용의 국회 고유의 법안을 거부하면서 자신의 얼굴은 감춘 채 전자결재로 서명만 했다.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거부권의 행사는 의회주의에 대한 예외적인 중대한 간섭과 개입이기 때문에 결정권자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국민들에게 그 권한행사의 정당성을 설명해야 마땅하다"며 "대통령이 빠진 채로 법제처장이 발표한 것은 책임정치의 실종"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