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에 고통스런 시를 표현한 여성" 프리다를 만나다

프리다 칼로 &디에로 리베라, 5.28~8.28

버스, 1929, 프리다 칼로. 캔버스에 유채, 26x55.5cm, 돌로레스 올메도 미술관 소장.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와 그의 남편 디에고 리베라의 불꽃같은 삶이 생생히 느껴지는 전시이다. 5월 28일 개막하는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 미술관의 '프리다 칼로& 디에로 리베라' 전시는 강한 여운을 남긴다. 그 둘은 화가로서, 혁명적 열정의 동지로서, 부부와 연인으로서 애증이 교차하며 각자의 정체성을 작품을 통해 드러내는 개성이 강한 작가이다. 멕시코 혁명시기를 겪은 두 작가는 멕시코 민중의 삶과 역사,정체성을 담은 사회성 강한 작품을 그렸고, 동시에 인간의 고통과 본질을 작품으로 표현했다.

디에고 리베라(1886-1957)와 프리다 칼로(1907-1954)는 1929년 결혼한다. 43살의 디에소는 21살 어린 22살의 프리다를 세번째 부인으로 맞는다. 결혼 전 디에고는 1927년 멕시코 혁명 12주년 기념행사에서 러시아 정부의 초청을 받을 정도로 혁명가로서 화가로서 이름을 날렸다. 프리다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았고, 18살 때 타고 있던 버스가 열차와 충돌해 척추를 크게 다친다. 결혼 후 세번의 유산을 겪고, 결혼 10년 차인 32살에 디에고와 이혼했다가 이듬해 그와 재결합한다. 프리다는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다. 그녀의 일기장 마지막 페이지는 신산한 삶을 말해준다. "행복한 외출이 되길,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희망한다."

부러진 척추, 1944, 프리다 칼로. 캔버스에 유채, 39.8x30.5cm, 돌로레스 올메도 미술관 소장.
프리다의 개인적 삶의 고통은 작품으로 다양하게 표현된다. 1926년 버스사고로 심하게 다친 이후 고통은 <사고>(1926), <버스>(1929),<부러진 척추>(1944)로 변주된다. 그녀는 <부러진 척추>를 그리며 일기를 쓰기 시작하고 이 일기는 죽는 날까지 계속된다.

"소망한다
고통을 품고,
망가진 척추로 걷지도 못하고
드넓은 길에서 멀리 본다.
강철로 된 생명을 부지한다."
-프리다의 일기

디에고는 프리다의 고통스런 삶과 예술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프리다처럼 캔버스에 고통스런 시를 표현한 여성은 그녀 이전에는 아무도 없었다."-디에고 리베라

프리다의 작품 중 산뜻한 이미지도 있다. <테우아칸에서 온 소녀 루차 마리화의 초상화>(1942)는 35세 때 그린 것이다. 이 작품은 똑똑해 보이는 한 소녀가 하늘 가득한 흰 뭉게구름 사이로 빛나는 태양과 달을 배경삼아 갈색의 비옥한 들판 위에 앉아 있다. 37세 때 그린 <생명의 꽃>(1944)은 인간의 몸체를 핏빛 식물로 형상화했다. 이 작품에서 커다란 이파리들로 표현된 하체, 태양과 번개, 그리고 머리에 빛나는 섬광은 성인이 다시 핏덩이로 태어나는 느낌을 준다. 죽음과 같은 고통을 건너온 자의 부활을 꿈꾸고 싶었던 것일까. 이 두 작품처럼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을 드러내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38세 때 그린 <희망은 없다>(1945)처럼 절망을 드러낸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은 병상에 누운 프리다가 해골과 죽은 생선,동물을 상상하는 이미지를 담고 있다.


<루터 버뱅크의 초상화>(1932)는 프리다가 사회적인 의미를 담은 작품 중 하나이다. 이 작품은 사막에 오렌지 재배를 성공시킨 미국 과학자의 초상을 그린 것이다. 양복 정장을 한 인물을 나무 몸체로 하고 그 뿌리들은 유골에 맞닿아 있다. 이 작품은 죽음과 생명의 탄생이 유기적 순환을 이루는 자연에 대한 존중의 메세지를 전한다.

헨리 포드 병원, 1932, 프리다 칼로. 금속 위에 유채, 31x38.5cm, 돌로레스 올메도 미술관 소장.
프리다의 <몇 개의 작은 상처> (1935) 역시 사회성이 강하다. 당시 살인사건을 다룬 신문 기사를 소재로 했다. 이 작품은 액자에게까지 핏자국들이 가득한 채 살해당한 여성의 몸과 칼을 들고 서있는 남자가 등장하고, 그 남자가 "어 몇번 안 찔렀는데"라고 중얼거리는 말풍선을 담고 있다. 남성들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행위 또는 작은 상처가 여성에게는 살인과도 같은 치명적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일깨운다. 디에고 리베라의 외도로 인해 프리다가 받은 상처를 표현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디에고에 대한 프리다의 질투는 일기에서도 잘 드러난다. 프리다의 일기 중 <질투하는 여자>는 노랑 바탕에 녹색 얼굴을 한 여성이 등장한다. 노랑을 질병을, 녹색을 질투를 상징한다. 그 인물의 목에선 태극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아즈텍 문명에서 이원론적 세계관을 반영한다. 즉 삶에 대한 질투, 미련에서 벗어나 균형화 평화를 바랐던 심정을 대변하고 있다.

1951년 이후 그녀는 진통제 없이 작품을 만들 수 없을 정도였다. 프리다 일기의 마지막장 그림은 커다란 물방울들이 떨어지고 형상과 그 아래 날개달인 천사가 그려져 있다. 태양은 윤곽만 드러내고 광선은 희미하다. 초록색 날개를 단 인물은 천사이지만, 붉은 잉크의 몸통은 피로 얼룩진 듯하고, 다리의 검은 빛은 죽음이 다가왔음을 암시한다.

"사람들은 내가 초현실주의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결코 꿈을 그리지 않았다. 나는 바로 나의 현실을 그렸다."-프리다의 일기

그녀는 백일몽에 불과한 인생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화가이다. 그녀의 그림은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듯하자민 사실은 "아는 사실만을" 그린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디에고 리베라의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초기에 그린 정물 작품들,큐비즘 작품, 중기에 그린 사회성이 강한 작품들, 만년에 그린 인물화 등.
32살 때 그린 <안젤리나 벨로프>의 주인공 안젤리나는 러시아 출신 여성화가로 파리에 디에고를 파리에서 12년 동안 만난 동반자이다. 고야의 마야부인 풍으로 그렸다. <칼라와 누드>는 스위스 여성을 그린 것으로, 그 모델 여성은 올해 90살로 생존해 있다.

농민 지도자 사파타, 1932, 디에고 리베라. 종이 위에 석판 인쇄,45.2x35.1cm, 돌로레서 올메도 미술관 소장.
디에고의 <농민지도자 사파타>는 멕시코 혁명을 그린 벽화를 재현한 석판화이다. 이 석판화에서 사파타는 인자한 모습으로 서 있는 반면, 그가 타도한 독재자는 그의 발밑에 쓰러져 있다. 이 작품은 멕시코 혁명에 대한 리베라의 존경심을 보여준다.

<태양게게 바치는 춤>(1942)는 디에고의 무용수의 동작을 그린 작품으로 생동감과 생명력이 넘친다.

디에고와 프리다의 회화 작품들을 보고 나서, 프리다의 일기를 보면 그녀의 내면세계를깊이 있게 느껴볼 수 있다. 마지막 전시코너인 두 사람의 사진첩을 보면 그들의 열정이 얼마나 뜨거웠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네번째 결혼기념일에 프리다와 디에고>(1933), <푸른 집에서 디에고와 프리다>(1950)에서 두 사람이 포옹하며 뜨겁게 키스하는 장면은 그 열정과 충만의 순간을 영원의 시간속에 잡아두었다. 17년의 시차에 상관없이, 그것이 흑백이든 칼라사진이든 간에.

전시 기간:5.28~8.28
전시 장소: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1,2 전시실(1층)
전시 작품: 회화, 드로잉, 사진, 의상 등 총 150여점. 멕시코 '돌로레스 올메도 미술관'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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