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정석, 베갯잇, 찐빵…실연을 전시합니다"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류정화 ('실연 박물관' 부 디렉터)

요즘 별의별 전시회며 박물관이 많은데요. 지금 제주도에 한 박물관에선 이별을 전시 중이라고 합니다. 이른바 실연박물관이 5월에 문을 열었습니다. 이별을 전시한다? 선뜻 상상이 잘 안 되시죠. 오늘 화제의 인터뷰, 제주 실연박물관에 류정화 부 디렉터를 연결 해 보겠습니다. 류정화 부디렉터님 안녕하세요.

◆ 류정화> 안녕하세요.

◇ 김현정> 이별을 전시한다? 그러니까 이별을 주제로 한 무슨 예술작품, 그림, 사진 이런 거 전시하시는 거예요?

◆ 류정화> 아니에요. 앵커님도 한두 장 정도의 이전 남자친구의 사진은 갖고 계시죠?

◇ 김현정> 예전 남친? 저는 첫사랑인데요. (웃음) 첫사랑과 결혼이라 없습니다, 딱히.

◆ 류정화> 안타깝습니다. (웃음) 저희 박물관엔 버리기도 없앨 수도 또 간직하기도 좀 애매한 실연이나, 상실, 이별에 관련된 사연이랑 물품을 일반 분들에게 기증을 받아서요. 그 물품과 사연을 함께 전시하는 콘셉트입니다.

◇ 김현정> 진짜 '실연'이 가득한 박물관이네요?

◆ 류정화> 네, 맞습니다. 따로 전시 작품, 물품, 이런 것들이 아니고요. 정말 일반 분들에게 기증받은 물품입니다.

◇ 김현정> 재미있네요. 어떤 물건들, 어떤 사연들이 전시가 돼 있나요?

'실연박물관' 전시 물품. (사진=박물관 제공)
◆ 류정화> 굉장히 다양해요. 그러니까 작게는 하트 모양으로 된 램프에요. 램프 아래에는 '언제나 변함없이 너와 함께'라는 글귀가 있는데 저는 그 문구를 볼 때마다 역시 만남이란 이런 걸까 하는 그것을 하게 됩니다. (웃음)

◇ 김현정> (웃음) '언제나 변함없이 너와 함께'하던 두 분은 왜 헤어진 걸까 궁금하네요.

◆ 류정화> 정말로 이렇게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사연과 물품들이 굉장히 많아요.

◇ 김현정> 그래요. 또 재미있었던 뜻밖의 물건, 야, 이게 왜 들어왔지 하는 게 있어요?

◆ 류정화> 한국 수험생들의 최고의 애증의 징표죠. '수학의 정석'이 대표적인 것 같아요.

◇ 김현정> 잠깐만요. 실연박물관에 '수학 정석' 책이 있습니까?

◆ 류정화> 실연이라는 게 단순히 남녀간의 관계를 말하는 게 아니라 이전의 나의 모습과의 결별이었어요. 그런 의미에서는 수험생이던 시절의 자신의 모습과의 결별도 이 카테고리에 포함되는 거죠.

◇ 김현정> 이제 더 이상 '정석' 안 봐도 된다. 수학 안녕. 이런 거군요.

◆ 류정화> 맞습니다. 그래서 기증자는 그렇게 하지 않고 아무래도 좀 더 간직을 하고 싶었었는데, 딱 이 때 이런 특별한 어떤 이벤트를 통해서 드디어 버릴 때가 된 것 같다라고 하면서 기증해 주셨었어요.

◇ 김현정> 또 어떤 게 있어요?

◆ 류정화> 해외에서 온 물품과 사연들은 한국 물품보다 좀 더 쿨하고 재미있는 것들이 있는데요. 그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거는 헤어지기 전에 뜨개질로 만든 남자친구의 스웨터였는데요. 헤어지고 난 이후에 아주 엉뚱하고 못난 방식으로 완성한 사연이었어요.

◇ 김현정>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 류정화> 한쪽 목은 막 늘어나 있고 한쪽 팔은 굉장히 길게 돼 있어서 스웨터이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입을 수 없는 스웨터였거든요. 좀 소심하지만 굉장히 재미난 복수를 전 남자친구한테 하게 된 거죠.

◇ 김현정> 그러니까 남자친구를 위해서 떴던 스웨터인데 선물하기 전에 헤어진 거구요.

◆ 류정화> 나름의 복수를 한 것 같습니다. (웃음)


◇ 김현정> 그런 재미있는 실연을 물건들도 있고. 또 우리 류정화 디렉터 개인적으로 가장 가슴 찡했던 물건이 있다면?

◆ 류정화> 음. 제주도라는 지역과 관련된 가슴아픈 사연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데요.

◇ 김현정> 어떤 건가요?

◆ 류정화> 제주 4.3사건 당시에 끌려가던 남편이 탄 차를 앞에 두고 요기라도 하시라고 빵을 던진 아내의 사연이 있었는데, 빵 사연을 듣고서는 참 줄곧 아내가 남편이 돌아올 거라고 정말 믿었을까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 김현정> 결국은 그 남편은 못 돌아오신 거에요?

◆ 류정화> 그렇죠. 이 사연을 간직하고 계신 제주도의 할머니를 인터뷰하셨던 다른 분이 전달해 주셨던 건데요.

◇ 김현정> 그렇게 놓여 있는. 빵 한 조각. 마음 아프네요.

◆ 류정화> 또, 화재로 어머니를 잃은 사연도 있었는데요.

◇ 김현정> 그분이 직접 사연하고 써서 주셨어요? 어떤 물건이랑 같이?

◆ 류정화> 베갯잇이었어요.

'실연박물관' 전시 중인, '수학의 정석'과 '엄마의 베갯잇'. (사진=박물관 제공)
◇ 김현정> 베갯잇이요?

◆ 류정화> 네. 사연을 좀 읽어드리면 '마지막 순간까지 엄마의 머리 아래 있던 베개 커버만 남았다. 영안실 바닥에서 베개를 붙잡고 울며 뒹굴었다. 19년이 지났는데도 나는 그대로 멈춰 있다. 이제 나의 엄마를 보내드려야겠다. 나중에 제가 늙어서 천국에서 만나요.'

◇ 김현정> 아유…. 19년 동안이나 그 베갯잇을 지니고 있다가 '이제는 엄마를 놓아드려야겠어요.' 하면서 박물관에 기증을 한거군요. 이게 참 실연 박물관이라고 해서 저는 남녀 간의 실연만 생각했는데 정말 다양한 이별의 물건들이 전시가 되네요.

◆ 류정화> 네. 한국에서 수집된 사연들이 조금 더 무겁고 가슴 아픈 사연들이 많았고요. 전 세계에서 온 사연과 물품들 중에는 아까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스웨터처럼 조금 더 재미난 사연과 물건들도 있었어요.

◇ 김현정> 상심해 있는 분이라면 오히려 가서 아픔을 나누면서 힐링을 해 보시면, 이런 말씀이시네요.

◆ 류정화> 그런 점도 있고, 아직 안 겪으신 분들은 앞으로 겪게 될 것을 미리 경험해 보셔도 좋고요. (웃음)

◇ 김현정> 오늘 재미있는 전시회 잘 소개해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 류정화> 감사합니다.

◇ 김현정> 실연박물관의 부 디렉터였습니다. 류정화 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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