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 영화톡]기자들의 '곡성' 뒷담화…현혹 당한 7가지 키워드

종교적 상징부터 나홍진 감독까지

이른 더위가 찾아온 봄, 극장가는 '곡성'에 홀렸다.

7년 만의 복귀. 나홍진 감독은 '추격자'의 강렬함과 '황해'의 리얼리티에서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시험하려는 듯, 인간을 초월한 존재들로 지독한 스릴러를 완성시켰다. '곡성'은 현재 500만 관객을 코 앞에 두고, 든든한 뒷심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 '곡성'을 관람한 세 명의 기자들이 있다. 과연 그들에게 '곡성'은 어떤 영화로 다가왔을까. 7가지 핵심 키워드로 세 기자가 나눈 이야기를 정리했다.

◇ 감상평

유연석 기자: 시간가는 줄 모를 정도로 영화에 빠져들었다. 미동도 하지 않고 봐서, 보고 난 후에 뻐근함이 느껴질 정도더라. 명료하다기보다 수수께끼 같은 내용들이 많아서 무슨 의미인지 고민해야 하는 점이 많아 답답한 점도 있지만, 그 덕에 이야깃거리가 풍성해진 것 같다.

이진욱 기자: 상징과 함의, 즉 미끼가 너무 많다. 큰 줄기 안에서는 삶의 불확실성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더라. 영화 속 사람들은 내내 원인과 이유를 찾아다니며 확신을 갖고 살아가려 하지만, 존재 자체에 그렇지 못하는 본질적인 이유가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유원정 기자: 처음 봤을 때는 사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사람 입장이니까. 이유도 모른 채 위기에 처한 사람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이것과 무관하게 이야기는 흘러간다. 굉장한 회의감과 패배감이 들더라. 종교적인 상징과 함의를 통해 나홍진 감독만의 방식대로 잘 풀어낸 것 같다. '미끼'에 대한 설정이 과하다는 느낌도 받았는데 그건 그냥 감독의 색채라고 생각한다.

◇ 종교

유연석: '곡성'은 기본적으로 종교를 중요한 소재로 사용하고 있다. 그것도 하나의 종교가 아니라 여러 가지를 섞었다. 일반적으로 종교는 누군가 고통받을 때 그 원인이 고통받는 자에게 있다고 말한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벌을 받는다는 인과이다. 기독교에서는 어떤 곳에 큰 재난이 일어났을 때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건 비성서적인 말이고, 기독교적인 메시지도 아니다. 성경을 보면 고난을 받는 데는 아무 이유가 없다. 죽는 것에도 마찬가지다. 욥이 그랬고, 실로암 근처 예루살렘 성벽에 세워진 망대가 무너진 사건도 그러하다. 죽은 사람을 두고 사람들은 숨겨진 죄가 있어서 그랬을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예수는 '(죽은 사람들이) 너희보다 죄가 많아서 그 사건을 당했겠느냐'고 지적한다. '곡성'은 그러한 '이유 없음'에 대해 말하고 있어 신선했다.

이진욱: 나홍진 감독이 종교에 끊임없이 기대며 삶의 원인을 찾고, 삶의 불확실성 또한 종교를 통해 상쇄시키고 억누르려고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주인공이 경찰이라는 지점도 흥미롭다. 경찰은 '범죄'라는 결과가 일어났을 때 단서와 원인을 찾아야 하지 않나. 그런 당사자가 직접적으로 원인 모를 사건의 피해자가 되는 부분이 강렬했다.

유원정: 영화에는 선악을 떠나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초월적 존재들이 존재한다. 종구(곽도원)에게 외지인은 의심하는 존재고, 무당 일광(황정민)은 의지하는 존재 그리고 무명(천우희)은 무시하는 존재다. 이것이 신에 대한 인간의 관점을 세 가지 정도로 쪼갠 것이 아닌가 한다. 믿음이 뭔가 해결하는 수단이라고 하기에는 인간인 종구를 비롯한 다른 피해자들이 그 세 존재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휩쓸린다. 그들은 계속 세상에 존재할 것이고. 오히려 종교나 신에 대한 원망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진욱: '초월적 존재의 눈에 들어 어쩌다 잘못 걸린 미끼'라고 하기에는 몇 가지 선택지를 준다. 무명이 '닭이 세 번 울 때까지 집에 가지 말라'고 했던 장면에서 결국 집에 가길 선택한 주체는 종구다. 무속인을 찾아가는 것부터 시작해서 결국 모든 결과에는 종구가 결정하고 선택한 것들이 담겨 있다. 그러나 다른 죽은 자들에 대해서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영화 '곡성'에서 외지인 역을 맡은 일본 배우 쿠니무라 준.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 외지인

유원정: 나홍진 감독은 외지인의 모티브를 예수에게서 가져왔다. 세상이 혼란스러워지면 예수가 온다고 하는데 과연 우리가 진짜 예수를 알아볼 수 있을까. 유대인에게 예수가 이단으로 취급된 것과 같이, 우리 역시 그럴 가능성이 높다. 의심하고, 배척하게 된다는 거다. 마지막에 외지인이 악마의 형상으로 나타난 이유도 부활한 예수를 알아보지 못한 제자들의 이야기와 연관이 있다. 결국 어떻게 믿느냐에 따라서 그 대상은 다르게 보이는 셈이다. 그가 하는 일이 선인지 악인지 구분이 힘들지라도 일단 외지인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부인하고 부정당한 예수의 존재를 닮아 있다.

유연석: 예수의 삶을 이야기한다기보다는 예수가 표면적으로 당했던 고난과 고뇌만 가져다 붙인 것 같아 개인적으로 아쉽다. 죽었던 외지인이 부활한 장면도 등장하는데, 부활은 예수가 예수일 수 있었던 데 핵심이 아니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메시지를 전했으며, 왜 죽임을 당했는지가 연결돼야 한다. 예수는 로마 제국의 압제 속에서 기득권의 눈엣가시가 될 수밖에 없었고, 제국은 독립에 대한 민중 열망을 막기 위해 그를 죽였다. 육신의 부활보다 예수가 꿈꿔왔던 세상에 대한 의지가 다른 이들을 통해 번져나가는 것이다..

이진욱: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이라는 소설이 있다. 그 책에 예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다양한 시선이 나온다. 유다는 예수를 혁명가로 봤고, 제자들은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따른다. 모든 시선이 겹치지 않고 다 어긋난다. 여호와를 다룬 문학·영화를 보면 사실 신이 특별한 이유나 원인을 갖고 일을 행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보면 신에 대한 나홍진의 물음은 재밌다. 신 역시 불확실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따뜻한 존재가 아니다.

유원정: 영화를 보면서 실제 세상보다 신에 대해 굉장히 회의적이고 오히려 신 안에서 인간이 무력화되는 느낌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평안과 안식을 찾기 위해 신을 믿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곡성' 속의 신적 존재들은 인간을 휘두르고, 시험하고, 의심하게 만든다. 그래서 영화가 이렇게 말한다고 생각했다. 종교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이 너희를 보살펴 주는 수단은 아닐 것이다. 세상이 이렇게 혼탁한데, 대체 신은 어디에 있는가. 과연 있기는 한 것인가. 나홍진 감독은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유연석: 신의 부재에 대한 질문은 새로운 게 아니다. 종교가 생긴 이후, 그것에 종사하는 이들이 항상 고민하는 문제가 이것이다. 어떤 종교를 갖든 하게 되는 질문이기 때문에 답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놓을 수도 없다. 이런 진부하면서도 중요한 고민을 어떻게 새롭게 보여줄 수 있느냐가 관건인데 나홍진 감독은 그런 부분에서는 성공한 것 같다.

◇ 차별점

이진욱: 색다른 한국 영화를 봤다는 느낌이 들었다. 최근 대형 주류 배급사·투자사에서 만든 영화를 보면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원인과 결과를 잇는 개연성에 집중하는 탓에 '다 거기서 거기'라는 인식이 생기고 결과가 나왔을 때 예상 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곡성'은 개연성을 쳐내고, 불확실성을 강조한 덕에 답습의 폐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유원정: 이번 영화는 이전보다 나홍진 감독의 욕망이 훨씬 더 많이 반영된 것 같다. 영화는 다 열려 있는 것 같으면서도 쉼없이 관객들을 좌지우지하고, 어떻게 보면 다른 영화에 비해 좀 더 거대한 어장 안에서 휩쓸리는 느낌이다. 마치 하나씩 퀘스트를 깨 가면서 탈출구를 찾는 미로 게임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탈출구는 찾을 수 없지만, 일단 과정 자체는.

이진욱: 영화가 개봉하기 전, 곡성의 시나리오를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사라진 장면 중에서 외지인의 정체를 알게 하는 보다 뚜렷한 단서가 하나 있다. 엔딩도 다소 달랐다. 결과적으로 완성된 영화는 더 복잡하고 모호하게 만들려는 노력이 스며 있다. 모호함을 더 모호하게 만들고, 선명한 걸 더 선명하게 만들고자 한 결과물이 불확실성을 강화한 셈이다.

영화 ‘곡성’의 나홍진 감독.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 메시지

유원정: 일단 영화 자체가 피해자가 피해를 받아야 했던 원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가해자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만 알게 되면 피해자는 너무 쉽게 '운이 없었다' 정도로 끝나는 게 사실이다. 지금 시점에서는 강남역 살인사건이 생각난다. 왜 한 번도 피해자 입장에서 생각하고, 공감할 수 없었는지 돌아보게 되더라. 왜 피해자가 이렇게 당해야 할까? 너도 한 번 생각해보라는 메시지를 느꼈다.

유연석: 아무래도 강남역 살인사건과 연결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약자에 대한 혐오살인이나 표적살인을 '곡성'과 접목시키기는 어렵다. '곡성'의 피해자들은 굉장히 무작위적이다. 단지 피해자의 심정은 느껴진다. '내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가'라는. '곡성'은 그 상태에서 끝난다. 강남역 사건은 현실에서 일어난 것이기에 '내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해'로 끝내지 않을 수 있다.

이진욱: 개인적으로 '삶은 모순되고 부조리하다'는 실존주의자들의 말에 공감한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닥치는 일들에 대한 부조리함을 제시한다. 강남역 사건,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등이 우리의 불확실한 삶 앞에 주어지는 과제일 것이다. 결국 이런 일들이 일어난 후에 제대로 된 합의 하에 원인을 찾아 가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다음에는 좀 더 시행착오를 줄여가자는 의미에서 인류의 공동선이 필요한 까닭이다. 이번 강남역 살인사건에 사람들이 형성하는 '나일 수도 있다'는 공감대를 보면서 희망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우리 시민 의식은 굉장히 성숙해지고 있다고 느낀다. 영화 속에서는 회의적인 문제제기로 끝났지만, 현실과 접목해 보면 세상은 충분히 진보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유연석: 다른 얘기인데 영화를 보면서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생각도 떠올렸다. 극중 종구가 외지인을 만났느냐고 딸을 다그치는 장면에서, 딸 대사 중에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외치는 부분이 있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네 잘못이 아니야'라며 아픔을 보듬어 주려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경위를 파헤치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 장면은 딸에게 악령이 깃든 유무를 떠나 피해자와 피해자 부모의 대화 같았다. 정말 과연 무엇이 중요할까.

이진욱: 딸이 있는데 '내 아이가 그 입장이라면 어떨까' 생각해보니 너무 마음 아프더라. 지금 사회는 사람을 품어주지 못하고 궁금해 할 뿐이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라고 감싸주지 못하는 사회다. 그런 모습을 종구와 딸의 대화에서 엿볼 수 있었다.

◇ 배우들

유연석: 솔직히 배우가 기억에 남지 않는다. 나쁜 의미가 아니다. 그만큼 배우가 영화에 잘 녹아 들어갔고, 연기를 잘했다는 의미다. 그래도 꼽으라면 종구의 딸 역할을 맡았던 아역배우 김환희의 연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진욱: 나홍진 감독이 의도한 부분일 수 있겠지만 종구 역을 맡은 배우 곽도원은 굉장히 평범하다. 외모도 화려하지 않고, 누군가의 아빠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정말 현실적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고, 그런 면에서 곽도원도 잘 해냈다고 본다.

유원정: 아무리 존재감이 넘치는 배우들이더라도 이들의 연기는 영화에 녹아드는 식이었는데 외지인 역을 맡은 일본 배우 쿠니무라 준은 예외였다. 아마 나홍진 감독은 쿠니무라 준의 연기 톤을 영화에 더 섞이도록 누르고 싶었을 것 같다. 관객을 강렬하게 잡아끄는 그런 인물 하나쯤은 있어도 나쁘지 않았다.

◇ 감독 나홍진

유연석: 나홍진 감독에게 박수를 치는 마음 한편으로, 그만 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재능에 대한 칭찬 못지 않게 인간 나홍진에 대해 들려오는 영화판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아쉽다. 그만큼 나 감독이 치열하게 작품을 만들기 때문에 생기는 마찰음일 것이다. 하지만 안 그래도 감독은 가장 강한 힘을 갖고 있는데, 그런 사람이 점점 거장이 되면 얼마나 더 절대권력을 휘두를까 하는 우려가 든다.

이진욱: 자본이 이끌어 가는 사회 안에서 하나의 작업은 결국 협업일 수밖에 인식이 생겼으면 한다. 감독 한 사람에게만 모든 공을 돌리는 관행은 깨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유연석: '곡성'이 잘 되고 칭찬을 받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 모든 칭찬이 나홍진 감독에게만 돌아가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감독이 가장 고민하고 힘들었겠지만 다 같이 나눠 가져야 될 영광과 칭찬이 아닐까.

이진욱: "박정희가 경부고속도로를 만들었다"는 식의'영웅주의'가 떠오른다. 경부고속도로에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섞여 있는데 말이다. 어떤 일을 한 사람의 공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구조적인 기득권의 의지 역시 서서히 깨져나가야 한다고 본다.

유원정: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지만 예술에는 어느 정도 그런 고집도 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본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인격적 모독 같은 것이 있으면 안되겠지만. 아직 한국 영화계는 감독에 대한 작가주의가 강해서 그렇게 감독 한 사람에게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고 있는 것 같다. 나홍진 감독이 도전을 한 것은 맞다. 탄탄한 연출력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어떤 결과일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하거나 선명하게 보여주지 않아도, 명확한 기승전결이 없어도 관객들이 반응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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