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야권을 중심으로 벌써부터 집중적인 견제가 시작되는 등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다. 장고를 되풀이하며 최종 선택은 최대한 늦출 가능성도 예상된다.
반 총장은 25일 오후 제주공항으로 입국, 제주포럼 참석을 시작으로 오는 30일까지 제주, 서울, 경기 일산, 경북 안동, 경주 등을 차례로 방문할 예정이다.
반 총장의 방한은 공식 일정에 따른 것으로 고향인 충북 음성 방문도 생략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총선 참패로 여권 유력주자가 ‘전멸’한 가운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어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든 게 정치적으로 해석될 공산이 크다.
특히 오는 29일 경북 안동 방문은 TK(대구·경북)와의 연대를 통한 ‘충청대망론’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고국이 어려운 시기에 방한한 반 총장이 임진왜란시의 명재상 서애 류성룡의 고택 ‘충효당’에서 TK 유력인사들과 오찬을 함께 하는 것은 그 자체가 강력한 정치적 메시지다.
◇ 野, ‘반반총장’ 집중 견제구…“출마시 검증 못 버틸 것”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24일 기자들과 만나 “반기문 총장이 대통령 선거에 나올 가능성도 반, 여당으로 갈 가능성도 반”이라고 꼬집었다. 모호한 행태를 빗대 ‘반반(半半) 총장’으로 부르며 견제구를 날린 것이다.
같은 당 이상돈 최고위원도 이날 방송 인터뷰에서 “(반 총장이 실제 출마할 경우) 검증을 견디기 어려울뿐더러 100% 패배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도 23일 한 방송에 출연해 “모호하게 하시는 분 중에 성공하신 분이 없어서 제대로 말씀하시는 게 좋을 것 같다”면서 “(대선 후보로) 모셔올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고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이런 가운데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반 총장을 ‘역대 최악의 총장 중 한 명’으로 혹평하는 등 그의 자질이 과대평가됐을 수 있다는 ‘거품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국내에서도 참여정부의 인사 내막을 잘 아는 인사는 최근 펴낸 책에서 반 총장의 입신에 대해 ‘운칠기삼(運七技三·운이 7할이고 기가 3할이라는 뜻)’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여기에는 당시 반기문 장관이 경질 위기에 몰릴 때 “욕은 내가 먹겠다”고 하면서까지 보호해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은공도 숨어있다.
한 달여 전에는 또, 반 총장이 미국 하버드대 연수생이던 1980년대에 당시 미국 체류 중이던 김대중(DJ) 감시 활동에 참여한 정황이 드러나 파문이 일기도 했다.
따라서 정치권에선 반 총장이 막상 대권 경쟁에 뛰어든 이후에는 파괴력이 생각만큼 크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성완종 리스트’ 등을 놓고 야당은 물론 여당 내부의 경쟁자들로부터 집중적인 표적이 될 수밖에 없고, 전형적 관료 체질인 반 총장이 이를 견뎌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마침 반 총장의 방한을 하루 앞둔 24일 주식시장에선 이른바 ‘반기문 테마주’가 동반 급락했다.
반 총장 동생인 반기호 보성파워텍 부회장을 사외이사로 영입한 광림의 주가가 이날 코스닥시장에서 8.55% 하락한 게 대표적이다.
이는 그간 많이 올랐던 것에 따른 자연스러운 조정 측면도 있지만 최근 국내외에서 제기된 부정적인 평판과도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 출사표 최대한 늦출 듯…與 집권 가능성 낮으면 불출마 가능성도
이런 점을 감안할 때 반 총장이 실제로 대선에 뜻이 있다 하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출사표는 가능한 늦게 던질 것이라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정국구도를 지켜보면서 어떤 시점이 가장 효율적이고 명분을 극대화할 것인지를 따져볼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 모호한 태도가 유지될 공산이 큰 셈이다.
다만 ‘결단’의 시기는 새누리당 내 친박·비박 간의 관계 설정과 권력 분화 가능성에 따라 앞당겨질 수도 있다.
새누리 내분 사태는 일단 봉합됐지만 근본 치유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언제든 터져 나올 수 있다.
반 총장에겐 이로 인한 정계개편 움직임과 영입 제의에 어떻게 대응할지가 1차 시험대인 셈이다.
이와 관련해 반 총장은 대권주자가 즐비한 야당보다는 여당을 택할 것으로 보이지만, 새누리당의 집권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되면 대권 출마 자체가 없던 일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 교수는 “반 총장이 과연 새누리당만 고집할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현재로선 속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