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계기로 생활화학제품에 대한 불신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시민들은 “제대로 된 정보가 없어 불안하다”거나 “제품을 쓸 때 겁이 난다”, “천연 제품이라는 것도 믿을 수 없다”며 불신을 넘어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를 호소하고 있다.
이런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안전성을 입증하지 못하는 제품은 아예 시장에 출시되지 못하게 하는 법은 없을까. 실제로 유럽연합 이런 내용을 담은 BPR 즉 살생물제품규제를 2013년 9월부터 시행 중이다.
환경부도 지난 11일 윤성규 환경부 장관이 국회 현안보고에서 “기존의 사후관리 방식에서 안전성 입증을 우선하는 사전관리 방식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언한 이후, 유럽의 BPR과 유사한 살생물제관리법을 만드는데 속도를 내고 있다.
살생물제관리법이 제정되면 항균, 멸균, 살충, 소독 등 생물을 죽이거나 억제하는 물질을 모두 조사해 이들 물질을 함유한 신제품을 출시할 때는 반드시 유해성 심사를 거치도록 할 계획이다.
환경부는 이미 관련 법제를 마련할 조직 구성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주 중으로 전문가 포럼을 구성해 법안 기초 작업에 착수하고, 이달 중으로는 살생물제관리법을 비롯해 전반적인 관리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과장급 TF조직을 새로 출범시킬 계획이다.
국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관련 법제를 정비하는데 최대한 속도를 내겠다는 것이 환경부의 입장이지만, 독성 시험 등 상당한 비용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기업의 반발이 예상된다. 지난해 우여곡절 끝에 시행에 들어간 화학물질등록평가법(화평법)도 재계의 강한 반발로 결국 곳곳에 구멍이 난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 정부 내에서도 당장 기업의 사정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산업부나 농약, 화장품, 의약외품 등 살생물질을 함유하고 있는 제품군을 별도로 관리하고 있는 농림부, 보건복지부, 식약처 등과의 조율도 필요해, 넘어야 할 산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