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대 대표 그룹 사운드 '외인부대' 4기 보컬 출신입니다. '대학가요제'에도 출전했는데, 아쉽게 수상은하지 못했죠. 그땐 트로트가 아닌 록 음악을 했어요. 헤드벵잉하고 마이크 집어 던지고 하하. 당시 정서와는 조금 맞지 않았죠. 군 시절에는 위문공연단 전우 가수로도 활동했고, 전역 이후 복학해서는 대학 동문인 가수 유열 씨와 캠퍼스 내에서 음악 활동을 같이했었고요."
대학 졸업 후 조 씨의 발걸음은 방송국이 아닌 증권사로 향했다. 아쉽게도 가수의 꿈은 이루지 못했으나, 조 씨는 탄탄대로를 걸었다. 서른 다섯 나이에 최연소 지점장 타이틀을 달았고, 투자자문사 대표를 역임하기도 했다. 지금도 인터넷에서 증권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증권맨 가수'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활동에 나서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성공한 증권맨이 단순히 취미삼아 음반을 발표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의 삶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40대 초반, 인생에 큰 위기가 찾아왔어요. 좋지 않은 사건에 휘말리면서 100억 원이 넘는 재산을 날렸죠. 당시 함께했던 동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어요. 잘 나가다가 큰 폭풍우를 맞은 거죠. 생계를 책임져야 할 가장으로서 주저앉을 수는 없었기에 아이스크림 장사, 가방 공장, 막노동, 대리운전 등 안 해본 일이 없었고요."
"몇년 전부터 야간에는 일산 풍동 '애니골' 일대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를 불렀어요. '지천명(知天命)'이라는 쉰이 넘으면 꼭 다시 정식 가수에 도전하리라 마음먹고 있었죠. 조금 더 성숙한 인간이 되었을 때, 사람들에게 제 노래를 들려드리고 싶었거든요. 그러다 운 좋게도 유상록 작곡가를 만나 곡을 받았고, 지난해부터 앨범 제작에 돌입했어요. 정규 음반 CD가 나왔을 때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군요."
조 씨는 신나는 멜로디가 돋보이는 세미 트로트곡 '알아요'와 차분하고 슬픈 분위기의 발라드풍곡인 '바람이 불던 날' 두 곡으로 전국을 종횡무진 누빌 각오다. '알아요'를 중국어 버전으로 녹음해 향후 중국에서도 활동하고 싶다는 큰 포부도 밝혔다.
"요즘 너무 즐겁고 행복합니다. 나이를 잊고 산다고 할까요. 가수 활동을 통해 그동안의 아픔을 씻고 내고 싶어요. 매니저도 없이 홀로 활동하고 있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승부사' 기질을 발휘해 이곳저곳 뛰어다니다 보면 좋은 기회가 올 거라고 믿습니다."
'증권맨 가수'로 제2의 삶을 시작한 그는 "돈을 벌기 위한 목적보다는 중장년층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크다"고 강조했다.
"사실 50대는 은퇴하고 우울하게 지낼 시기잖아요. 제가 정식 음반을 발표했다는 소식을 접한 친구들이 깜짝 놀라더군요. '넌 우리의 희망이야'라면서 응원을 해주는 덕분에 힘을 많이 얻죠. 앞으로 노래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통해 중장년층에게 희망과 행복을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