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식 참석차 온 안철수 천정배 공동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 등 국민의당 지도부에게 "안철수는 물러나라, 전라도로 가라"는 항의가 쏟아졌다.
"형제끼리 싸우지 말자"는 시민들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지만 결국 안 대표 일행은 몸싸움을 막는 경호원들에 호위된 채 발걸음을 움직여야 했다.
일각에선 '형제'로 칭해지는 이들 사이에 '우리가 진짜고 너희는 가짜'라는 시비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더불어민주당 내 이른바 친노(親盧) 그룹 안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적자(嫡子)'가 누구냐는 은근한 논의도 계속된다.
◇누가 진짜고 누가 가짜인가
범민주진영 내 적통 논란은 1990년대에 본격화했다.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거목인 김영삼 김대중 두 사람이 차례로 집권을 하고, 그 과정에 이합집산이 빈번하면서 '누가 범민주진영의 적자냐'는 논의가 번졌다.
적통 논란은 자연스레 민주세력 대변자를 자처하는 정당내 선거 과정에서 거세게 일었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이를 자신의 무기로 십분 활용했다.
지난 2002년 2월 노 전 대통령은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하며 "민주당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정통성을 계승할 자격과 조건을 갖추고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지역주의를 뿌리째 흔들 수 있는 사람이 후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당 경선 후보였던 이인제 당시 민주당 고문을 겨냥한 말이다.
"신한국당 경선에 떨어진 뒤 탈당, 대선에 출마했다가 패배하고 민주당에 온 사람을 민주당 후보로 하면 결국 한나라당 후보들끼리 경쟁하는 꼴"이라는 것도, 당내 라이벌이던 이 고문에 대한 노 전 대통령의 비판이었다.
그런 노 전 대통령도 적통 시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다.
당하고 있던 이인제 후보 측이 "노무현 씨야말로 1997년 대선 직전 미끄러져 들어왔다. 통추 멤버들은 대선 승리를 눈앞에 둔 1주일 전에 입당한 것 아닌가"라고 일격을 가한 것.
실제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국민통합추진위원회(통추)를 이끌던 노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과의 연대는 물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계 복귀에도 반대하다, 결국 대선 막바지에 국민회의 입당을 결정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를 두고 "조금 부끄럽고 민망하다, 솔직히 현실정치에서 살아남아 잘 해보고 싶다"는 고백을 털어놓은 바 있다.
재미있는 건 당시 노 대통령에게도 정통성 문제가 있다는 비판을 날린 이가 새천년민주당에서 이인제 후보를 지지하던, 현재의 원유철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였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에 당선된 뒤 정치인 노무현은 자연스럽게 적통의 강조가 아닌 차별의 통합을 내세웠지만 합격점을 받지는 못했다.
영남과 호남, 민주세력과 산업화세력간 화합은 물론 야당과의 대연정 제안까지 성과는 미미했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7주기가 지난 오늘까지도 범민주진영 내부는 통합이 아닌 적통 논의에 더 달궈져 있다.
"7000만 온겨레 대통합의 시대가 시작됐다"는 게 노 전 대통령 당선 일성이었지만, 적통 시비에 가린 통합 논의는 같은 진영 안에서조차 오히려 후퇴한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