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 아픔 이긴' 조언래 "마지막 피는 꽃, 가장 아름답죠"

'이제 다시 시작이다' 한국수자원공사 조언래가 19일 '2016 실업탁구챔피언전' 남자 단식 결승에서 우승을 확정한 뒤 승리의 포즈를 취한 모습.(대구=월간 탁구 안성호 기자)
남자 탁구 국가대표 출신 '탱크' 조언래(30 · 한국수자원공사)가 다시 일어섰다. 팀 해체의 아픔을 딛고 새 유니폼을 입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조언래는 19일 대구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6 실업탁구챔피언전' 남자 단식 결승에서 신예 박강현(20 · 삼성생명)을 3-0(11-7 11-6 11-7)으로 완파했다. 4강전에서 김민석(24 · KGC인삼공사)을 3-1로 누른 데 이어 거푸 후배들의 거센 도전을 이겨내고 정상에 올랐다.

지난 3월 창단한 수자원공사의 감격적인 첫 우승이다. 무엇보다 조언래로서는 지난해 소속팀 에쓰오일의 해체라는 청천벽력의 아픔을 이기고 이뤄낸 정상이었다.

▲"해체 충격에 몇 달 동안 라켓 못 잡아"

5년째 탁구단을 운영해왔던 에쓰오일은 기업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해체를 선언했다. 2010년 탁구단 창단을 주도한 그룹 2대 주주였던 조양호 대한항공 및 대한탁구협회 회장이 에쓰오일 지분을 매각하면서 내려진 결정이었다.

당장 직장이 없어지는 선수들로서는 날벼락이었다. 비보를 전해들은 조언래와 김동현 등 선수들은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수자원공사가 창단돼 김동현(22), 이승준(25), 박신우(19), 강지훈(19) 등 선수들이 새 보금자리를 찾았지만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이런 가운데 조언래가 맏형으로서 창단 첫 우승을 일궈낸 것이다. 경기 후 조언래는 "팀이 새로 창단해서 부담이 있었는데 좋은 결과가 있어서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다시 뛸 수 있게 동기 부여를 해준 강희찬 감독님, 김영진 코치님께 감사한다"고 코칭스태프에 대한 고마움을 드러냈다.

'얘들아 좀 웃어' 조언래(가운데)가 2016 실업탁구챔피언전 남자 단식에서 정상에 오른 뒤 팀 후배들, 응원을 펼쳐준 팬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대구=임종률 기자)
특히 그동안 마음고생이 컸다. 조언래는 "사실 팀 해체 소식을 듣고 충격이 컸다"면서 "몇 개월 동안 (탁구) 라켓도 들 수 없을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태극 마크에 대한 의지도 사라졌다. 조언래는 "소속팀이 없다 보니 심적으로 국가대표를 멀리 했다"면서 "워낙 좋은 후배들도 많았지만 선발전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고 말했다.

2010년 러시아 모스크바 세계선수권 단체전 동메달을 따낸 조언래는 지난해 국가대표 상비군이었다. 그러나 팀 해체 홍역을 치르면서 제대로 선발전을 준비하지 못했다.

▲"몇 년이 됐든 올림픽 나가고 싶어"

방황하던 조언래를 붙든 사람이 강희찬 감독(46)이었다.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리스트인 강 감독은 지친 조언래에게 "마지막에 피는 꽃이 제일 아름답다"면서 "마지막을 한번 불태워보자"고 다독였다. 조언래는 "감독님의 말을 듣고 다시 일어섰다"고 돌아봤다.

에쓰오일에 대한 감정은 없다. 조언래는 "선수들이 국가대항전에서 성적을 내거나 이슈를 만들어야 기업과 팬도 힘이 날 것"이라면서 "결국 선수들의 몫이고, 조금 더 노력하면 (기업들이) 더 많은 기회를 줄 것"이라고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탱크처럼 밀고 나간다' 조언래가 19일 2016 실업탁구챔피언전 남자 단식 결승에서 강력한 드라이브를 펼치는 모습.(대구=월간 탁구 안성호 기자)
첫 대회였던 지난달 '제 62회 전국종별남녀탁구선수권대회'는 썩 좋지 않았다. 복식에서만 3위에 올랐다. 조언래는 "한 달 동안 나름 준비는 많이 했는데 공백기를 무시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이번에는 질 때 져도 준비 과정을 잘 하자고 했는데 조금 좋은 결과 나왔다"고 웃었다.

대표팀에 대한 의지도 생겼다. 조언래는 "이제는 조금은 (태극 마크를) 노려보고 후배들과 경쟁도 해보고 싶다"고 다부진 표정을 지었다. 롤 모델은 2012 런던올림픽 단체전 은메달을 합작한 오상은(39 · 미래에셋대우), 주세혁(36 · 삼성생명), 유승민 삼성생명 코치(34)다. 올해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출전은 불가능하지만 2020년 도쿄대회를 노린다.

조언래는 "대표팀에서는 3명 형들에게 가렸다"면서 "형들보다 부족했는데 따라만 해도 많이 늘 정도로 대단했다"고 말했다. 이어 "세계선수권은 나갔지만 올림픽 같은 큰 무대와 인연이 없었는데 한번 나가보고 싶다"면서 "끝까지 도전하다 보면 기회가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몇 년이 될지 모르지만 후회 없이 마지막라는 생각으로 하겠다"고 말하는 조언래의 얼굴에는 비장함과 함께 마지막이어서 가장 아름답다는 웃음꽃이 어느새 피어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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