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면적으로 정진석 원내대표의 비상대책위원회‧혁신위원회 구상에 공개적인 반기를 든 건 친박계 초‧재선 의원 및 당선자 20명이었다. 이들은 지난 16일 반박 성명을 통해 '반(反) 정진석 비대위' 기류를 주도했다.
당 안팎의 궁금증은 20명을 움직이는 또 다른 '보이지 않는 손'이 있는지 여부다. 친박계의 패턴 상 '오더(order‧지시)' 정치는 낯설지 않다. '박심(朴心‧박 대통령의 의중)'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지시의 주체로 우선 거론되는 인물은 각각 '실세' '맏형' 등으로 묘사되는 최경환, 서청원 의원이다. 이들을 의심하는 쪽은 20명 중 두 의원의 지역 기반인 영남과 충청권 출신이 다수이고, 최측근들이 포함돼 있다는 점도 근거로 든다.
그러나 참여를 제안받고 내놓은 반응으로 미뤄 배경이 아니라는 반론이 제기된다. 20명 중 TK 출신인 한 의원은 측근에게 "나도 동참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만약 최 의원의 직접 지시라면 굳이 동참 여부를 측근에게 타진했겠느냐는 의심이 나오는 대목이다. 지난 17일 전국위 회의장에 측근인 추경호 당선자가 나타난 점도 최 의원의 '방해 지시'를 반박하는 방증이다.
서 의원에게도 비슷한 알리바이가 적용된다. 측근인 박종희 전 의원이 회의 참석차 국회에 방문했었다. 서 의원의 측근 인사가 정 원내대표 측과의 통화에서 "(친박계의 보이콧을) 막아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고 한다.
때문에 이들보다 강경한 입장의 누군가가 더 적극적으로 관여했을 것이란 설(設)에 무게가 실린다. 비박계 강경파 중심의 비대위‧혁신위에 가장 부담을 느낄만한 위치에서 움직임을 만들어 냈을 것이란 얘기다.
정 원내대표를 겨냥해 친박계에서 나돌았다는 '유승민보다 더한 과(科)'라는 표현에서 실마리를 찾아 볼 수 있다. 청와대 관점에서 볼 때 '자기 정치를 너무 빨리 펼쳤다'는 반감이 담겨 있다.
초‧재선 20명 중 한 의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인선(人選)을 청와대 모르게 할 것이었으면 최소한 최 의원이나 서 대표와 상의를 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청와대에 대한 설득 노력을 정 원내대표의 '생존 조건'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불편한 관계를 반영하는 듯 정 원내대표와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은 18일 5‧18 기념식 참석하는 길에 탑승한 KTX 열차에서 어색하게 조우했다. 현 수석이 정 원내대표 바로 앞자리에 앉았지만 광주에 도착할 때까지 약 2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평소 강경 입장에 동의하지 않았던 의원이 강압에 못 이겨 성명에 참여한 듯한 정황도 '수직적인 지시' 의혹을 강화한다. 모 의원의 경우 온건 성향이지만, 최근 선거법 위반 혐의 때문에 받고 있는 검찰 수사가 압박이 됐다는 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