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마크' 신발탈취제에도 독극물…'케미포비아' 전방위 확산

환경부 살생물제 전수조사 등 불안 진화 안간힘…전문가들 "법 체계 뜯어고쳐야"

한바탕 유해성 논란이 벌어졌던 페브리즈, 환경부가 성분 내역을 제출받아 검토한 결과 일차적으로는 위험성이 낮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하지만 별도의 독성검사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단서가 달렸다. 여전히 안심하기에는 이르다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환경부가 지난해 7월부터 6개월 동안 벌인 331개 생활화학제품의 안전기준 준수여부 조사에서, 바이오피톤(주)가 생산한 신발탈취제인 ‘신발무균정’ 제품이 가습기 살균제 물질인 헥사메틸구아니딘(PHMG)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PHMG는 가장 많은 피해자가 발생한 가습기살균제인 '옥시 싹싹'에 사용된 살생물제(biocide)다. 사망에까지 이르는 폐손상 질환과 가습기 살균제간의 인과관계가 드러난 직후, 2012년부터 유독물로 분류돼 스프레이형 제품에는 아예 사용이 금지됐다.

그런데 그 이후에도 유독물인 PHMG를 사용한 생활화학제품이 버젓이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사실이 이번에 드러난 것이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신발무균정’ 제품에 찍혀 있는 KC마크다.

◇ 못믿을 KC마크...금지물질 사용해도 무사통과

KC 자율안전확인제도는 지난해 4월 이전까지 산업부에서 생활화학제품을 관리하던 제도로, 공산품안전법에 따라 자율안전확인신고를 완료한 제품에 KC 인증마크를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 버젓이 사용금지 물질인 PHMG를 사용한 제품에 KC인증 마크가 발급됐다는 점에서 정부의 생활화학제품 관리에 큰 허점이 있다는 사실이 이번에 드러났다. 이처럼 정부의 인증마크 마저 믿을 수 없는 상황은 생활화학제품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번지고 있다.


세종시의 한 대형마트에서 만난 주부 김모(35)씨는 “아기한테 조금이라도 (유해물질이) 가면 안 되는데 믿을 것이 없어 불안하다”며 “믿을만한 것을 사려고 하는데 정보가 없으니까 사람들한테 물어보기도 하고 후기를 보고 사기도 하는데 그래도 걱정된다”고 말했다.

회사원인 이정주(45)씨도 “이런 사고가 생기는 것을 보면 솔직히 제품을 쓸 때 겁이 난다”며 “불신이 다른 제품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쇼핑을 나온 주부 박인옥(63)씨도 “우리한테 선전할때는 좋은 것만 선전하는데 이런 피해를 누가 생각이나 했겠느냐”며 “천연향이니 어쩌고 하는 것도 못 믿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들 사이에는 해당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넘어 아예 화학제품 자체를 믿을 수 없다는 화학물질 공포증, 이른바 ‘케미컬 포비아’가 번지고 있는 것이다.

◇ 케미컬 포비아 진화나선 환경부... 역부족, 법 체계 뜯어고쳐야

환경부는 일단 국민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화학물질평가등록법(화평법) 상 위해우려품목 15종에 들어있는 살생물질은 올해 안에 모두 조사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어떤 살생물질이 쓰이고 있는지 제품들을 일일이 파악하겠다는 것.

살생물질의 목록이 확정되면 이들 물질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국내외의 유해성 심사 자료가 있는지 살펴보고, 자료가 있으면 그것을 토대로 안전성을 검토하고, 자료가 없는 경우는 자체적으로 독성실험을 거쳐 유해성을 검증하는 단계를 밟게 된다.

환경부 홍정섭 화학물질정책과장은 "위해성 평가를 할 때, 독성실험을 해서라도 평가를 정확하게 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우려제품 안전기준을 다시 한 번 개정하는 것을 추진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번에 문제가 된 KC인증의 경우 오는 9월 30일부터는 환경부로 관리권이 넘어온 위해우려품목 15종은 표시기준에 맞게 표시사항을 전면 교체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안전기준을 위반한 제품은 퇴출시킨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여전히 제품이 출시된 이후에 유해성을 검토하는 지금의 사후 관리 체제는 허점이 많아 국민 불안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관련해 한국환경독성학회와 한국환경보건학회는 18일 결의문을 발표하고, “유럽처럼 우리도 살생물제법을 별도로 만들어 살생물제품이 시장에 출시되기 전에 제품등록과 사전허가제도를 시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모든 화학물질의 등록과 평가를 골자로 하는 화평법의 전면적 재검토, 화학물질의 등록·평가와 제품 출시 이후 감시를 할 수 있는 독성물질감시센터 설립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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