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선택의 이유는 제가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지가 가장 커요. 처음 영화를 찍을 때, 정말 말도 안되는 배려를 받으면서 촬영을 했죠. 사실 그 결과물 때문에 칭찬을 받은 것이지, 제가 칭찬을 받은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바로 다음 작품부터는 프로여야하는 상황이 됐는데 독립영화나 단편영화에서 경력을 쌓는 과정이 다 없어진 상태였던 겁니다. 그래서 생각했던 게 또 칭찬 받을 생각하지 말고 신인일 때 여기 저기 다 부딪쳐 봐야 겠다. 스스로 한계를 두지 말자. 두려움이 분명히 있는데도 스스로를 내던져봤던 것 같아요."
작품을 새로 시작할 때마다 엄습하는 두려움은 어쩔 수가 없다. 20대 김고은의 가장 큰 바람은 '연기 기복'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번 작품에서도 나름의 성장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매 작품마다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거든요. 두려움이 생기고, 또 다 지나가더라고요. 서툴렀던 부분이 더 서툴러지는 과정인 거고, 제 20대 목표는 연기 기복을 없애는 거예요."
불과 스무살의 나이. '은교'로 데뷔한 김고은은 충무로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순수한 얼굴 속에 감춰진 매혹적인 연기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처음부터 김고은이 배우를 꿈꿨던 것은 아니다. 다니던 예술고등학교에서 연극을 접하면서 배우라는 직업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
"저는 원래 부끄러움을 많이 타요. 원래 1학년 때는 영화 파트를 전공했었는데 처음 연극 오디션을 보고 덜컥 주연이 된 거예요. 비평가 역할이라 대사는 엄청 많고, 무대에서 너무 떨어서 혀를 깨물 정도였어요. 일단 잘했다고 칭찬을 받기는 받았는데 그 순간 이렇게 힘들면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영화로 돌아가려 했죠."
"당연히 더 해보라고 하길래 큰 역할을 주실 줄 알았는데 정말 1막에서만 등장하는 엄청나게 작은 역을 주신 거예요. 저는 10분 만에 연습이 끝나는데 다른 아이들은 3시간 씩 막 디렉션 받고 있고. 나중에는 요령이 생겨서 몰래 졸고 그랬는데 어느 날 갑자기 선생님이 '내가 너 잘못 본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돌맹이를 맞는 기분이었어요. 그래서 정말 짧게 배운 캐릭터 연구법을 총동원해서 캐릭터를 만들었는데 그 다음 연습에서 친구들이 반응이 달라지더라고요. 실제 연극에서는 암전이 됐는데 내려가기가 싫었어요. 주체가 안될 정도로 희열이 오는데, 그런 기분을 태어나서 처음 느껴봤어요."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출신 배우들이나 친구들과는 아직도 돈독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서로 단체 채팅방에서 연기에 대한 평가도 해주고, 작품에 대한 평도 나눈단다. 친한 친구들이기 때문에 더 신랄할 수밖에 없다는 고백이다.
"그것 또한 굉장한 배움이에요. 신중해야 하고, 정밀하게 이해와 분석을 한 상태여야 하니까요. 무조건 새 작품 나오면 봐달라고 해요. 티저부터 시작하죠. 자세하게 얘기 안하면 계속 물어봐요. 단순히 '재밌었다' 이러면 성의가 없는 거예요. 시나리오 단계부터 서로 서로 봐주기도 하고요. 사실 백날 제가 봐도 제 3자가 보는 경우의 수가 더 많거든요. 그게 갑자기 깨달음으로 오는 순간도 있고요. 누가 잘되면 서로 부둥켜 안고 난리도 아니에요. 이번에도 역시 친구들은 제가 제일 경계했던 부분을 알아봐 줬어요."
또래 배우들 중 뛰어난 연기력을 가진 배우들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김고은에게 위기감이나 열등감보다는 배움으로 다가온다.
"열등감은 별로 좋지 않은 감정이에요. 질투는 미움으로 가지만 부러움은 배움으로 가죠. 어떻게 저렇게 표현했을지, 어떻게 저렇게 생각했을지 관찰하다보면 저도 그렇게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정말 부러운 분들이 너무 많죠."
"관객의 즉각적인 반응이 연극의 장점이라면 영화에서는 연기하는 순간에 진짜 감정이 느껴지면 그런 기분이 들어요. 하려고 한 게 아니고, 어긋나는 감정일 수도 있는데 울면서 이상한 소리가 나면 그게 진짜인 거거든요. 그럴 때 소름이 돋고, 상대방과 연기를 주고 받을 때 시너지가 넘치면 그건 그것대로 기분이 좋죠."
김고은에게 배우란 단지 연기만 하면 되는 일은 아니었다. 연기 관련해서 비판도 많이 받았고, 인성에 대해 좋지 않은 소문도 돌았다.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이 돼, 그런 것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냥 무던해진 것 같아요. 전에는 속상할 일이 많았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답답했죠. 제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배우로서의 태도와 자센데 그것과 반대되는 이야기가 진짜처럼 나오니까요. 해명을 해야 될지 그런 고민도 했었는데 스태프 중의 한 분이 너와 한 작품이라도 같이 한 사람은 네가 그런 애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줄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때 조금 내려놨어요."
아직 차기작은 정해지지 않았다. '은교'로 데뷔해 지금까지 달려오면서 차기작이 없었던 적은 처음이라고. 과정을 중시하는 김고은은 연기에 제한을 두지 않고 지금처럼 굳건하게 걸어나가려 한다.
"그냥 그런 생각을 해요. 예전에 제가 했던 작품을 지금의 제가 하면 어떨지. '치즈인더트랩'이나 '계춘할망'처럼 가벼운 역할이 잘 맞아서 전작보다 칭찬 받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게 인식하면 제 스펙트럼은 사라지게 되거든요. 이전의 과정들이 있어서 확연히 성장한 것,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매 작품마다 깨닫는 게 다르고, 익숙해진 게 있죠."
일상생활에서는 배우 김고은 역시 평범한 20대 청년이다. 쉬는 동안에는 '태양의 후예'를 이틀에 걸쳐 독파하기도 하고, 친구들을 만날 계획도 세웠다. 연애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일에만 매진하겠다는 의지를 재치있게 피력했다.
"'태양의 후예'를 다 보고 나니 이틀이 없어졌더라고요. 여행도 가고, 친구도 만나면서 일상을 즐겨야죠. 연애는 뭐 십센치의 '봄이 좋냐??'를 질릴 때까지 들었다고 하면 대답이 될까요? 제 마음에 그 곡은 항상 있고, 평생 질리지 않을 것 같네요. 노래가 정말 좋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