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논평] 5.18 영령을 모독하는 전두환의 '궤변'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의 추모탑 (사진=박종률 기자)
내일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36주년이 되는 날이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5월의 '빛고을' 광주에는 두 개의 5.18 묘역이 있다. 하나는 국립 5.18 민주묘지이고, 다른 하나는 망월동 묘역이다.


두 개의 묘역에는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이 하나씩 있다. 국립 5.18 민주묘지의 '그것'은 '눈을 들어 올려다 봐야 하는 것'이고, 망월동 묘역의 '그것'은 '밟고 지나가는 것'이다.

'눈을 들어 올려다 봐야 하는 것'은 높이 40미터의 추모탑으로 탑신 중간 부분에 있는 알 모양의 조형물이다. 알 모양의 조형물은 5.18 영령들의 혼이 새 새명으로 태어나길 바라는 염원을 담고 있다.

반면에 '밟고 지나가는 것'은 이른바 '전두환 민박 기념비'라는 이름이 붙여진 비석이다. '전두환 대통령 각하 내외분 민박 마을'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이 비문은 땅바닥에 박혀 있어 망월동 묘역을 찾는 사람들은 누구나 밟고 지나간다.

망월동 묘역의 전두환 비문 (사진=박종률 기자)
전두환 비문이 땅바닥에 박힌 사연은 이렇다. 1982년 3월 당시 전두환 대통령 내외가 광주를 직접 방문하지는 못하고 인근에 있는 담양군 성산마을을 찾아 민박집에서 하루를 보냈는데 그 기념으로 비석을 세웠다.

그러나 분노와 수치심을 떨칠 수 없었던 광주-전남 민주동지회는 1989년 1월 이 비석을 부순 뒤 5.18 영령들의 원혼을 달래는 마음으로 망월동 묘역으로 가져와 땅바닥에 박은 것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 (사진=자료사진)
1980년 전두환 신군부 세력이 광주를 무참히 짓밟았던 것에 맞서 지금은 세상이 그들을 밟고 있는 셈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면 국론분열'이라는 몰이성적 황당논리에 '5월의 양심'이 한숨 짓는 사이에 전두환 그 마저도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올해 안에 자신의 회고록을 출간할 예정이라는 그는 지난달 연희동 자택에서 몇몇 측근 인사들과 만남의 자리를 가졌는데 이 자리에 월간 신동아 기자 2명도 동석했다.

신동아 최신호 보도에 따르면 그는 "광주사태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서 발포책임을 전면 부인했다. 그는 "어느 누가 국민에게 총을 쏘라고 하겠어.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그래"라고 말했고, 부인 이순자씨도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닌 건 아닌 건데…"라며 거들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조선일보 16일자에는 '전두환의 뿌리'라는 제목의 외부 칼럼리스트 글이 실렸다. 내용은 천안 전씨인 전두환 집안은 원래 전북 고부에 뿌리를 뒀으나 동학혁명 후에 섬진강을 건너 경남 합천의 산골로 도망갔던 것으로서 전두환의 뿌리는 전라도인데, 왜 이런 그가 광주와 악연을 맺게 되었을까?라는 도발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조선일보는 또 이날자 지면에 "전두환은 12.12와는 상관있지만 5.18과는 무관하다"는 이희성 당시 계엄사령관(92)의 인터뷰 내용을 실었다가 데스킹 과정에서 삭제했다.

그러나 삭제되기 이전 PDF 스크랩서비스에 올라온 기사를 보면 이희성 전 사령관은 "발포명령을 내린 지휘관은 없다"면서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은 5.18에 책임이 없으며, 광주가 수습되고 3개월 뒤 그가 대통령이 됐기 때문에 책임자로 지목됐다"고 말했다.

전두환 측의 해명만을 전달하는 일부 보수언론의 편향적 접근법이 불편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책임회피 발언은 5.18 영령들을 모독하는 망언이 아닐 수 없다.

5.18 당시 신군부의 최고 실세였던 그는 5.18 영령 앞에 사죄는 하지 못할망정 발포 명령을 부인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파렴치한 행위이다.

대법원은 지난 1997년 4월 17일 재판에서 피고인 전두환에게 "내란목적 살인의 책임을 져야 한다"며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당시 대법원은 시위대의 학살을 불러온 광주재진입작전(상무충정작전)과 관련해 "전두환 등이 사상자가 생기게 되는 사정을 알면서 작전 실시를 강행하기로 하고 이를 명령한 데에는 살상행위를 지시 내지 용인하는 의사가 있었음이 분명하다"고 판결문에 적시했다.

국립 5.18 민주묘지 (사진=자료사진)
민간인 165명이 숨지고 1,600여명이 부상당한 참담한 비극을 불러온 최초 발포 명령자가 누구인지 확인되지 않고 세월도 많이 흘렀다고 해서 전두환 그의 책임이 면탈되는 것은 아니다. 전두환 씨는 양심이 있어야 한다.

소설가 한강이 맨부커상을 받으면서 그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3년 전에 출간한 '소년이 온다'에 새삼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당시 열세살이던 한강은 "아버지가 보여준 광주민주화운동에서 학살된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첩이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된 비밀스러운 계기가 됐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소년이 온다'에서 말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그겁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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