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 전쟁'·'화폐 트라우마'…하나는 옥이고 하나는 돌이다

신간 '유쾌한 이코노미스트의 스마트한 경제 공부'/홍춘욱 지음


『화폐 전쟁』 같은 베스트셀러를 비판하는 것은 수많은 독자를 적으로 돌리는 어리석은 짓임을 잘 알지만, 이 대목에서 음모론을 다룬 책을 비판하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다. 이런 책들은 독자의 ‘이성적 판단’을 가로막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139쪽

『화폐 트라우마』 덕분에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유럽 경제가 다른 나라에 비해 부진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미국 연준은 1929년 대공황 당시 잘못된 정책 대응으로 디플레이션이 발생한 것을 깊이 반성했고, 또 이게 두고두고 트라우마로 작용했기에 2008년 금융 위기가 발생하자 적극적인 대응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유럽중앙은행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독일 중앙은행(분데스방크)은 전혀 다른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다. 1920년대 바이마르공화국 시절 무분별한 화폐 발행이 초인플레이션(월간 인플레이션율이 30퍼센트가 넘는 일이 지속되는 상태)을 유발했고, 결국 나치의 득세를 가져왔다는 자기반성 속에서 모든 행동이 이뤄지고 있었다. ―1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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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이코노미스트의 스마트한 경제 공부'는 이코노미스트인 저자가 좋은 책을 즐겁고 유쾌하게 읽는 경험을 전해주고 싶어 쓴 책이다. 저자 홍춘욱 박사는 연간 200여 권의 책을 읽고 50권 이상의 서평을 작성한다. 그간 무슨 책을 읽어왔으며 이를 통해 경제를 보는 관점을 어떻게 세워 나갔는지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이 책은 한 경제 전문가의 내밀한 성장기이다.

1부는 저자의 유년 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생 행로를 결정하는 데서 가장 영향이 컸던 책들에 대해 회고한다. 따라서 1부는 한 경제 전문가의 독서 편력이자 지적 성장기이기도 하다. 대하소설 〈대망〉과 〈장길산〉을 읽으며 역사 공부를 동경하던 시절부터 경제학의 바다에 빠지고 이코노미스트로서의 인생 좌표를 발견하며 글로벌 경제 속에서 한국 경제의 위치를 파악하기까지, 독특한 이력의 이코노미스트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2부는 본격적으로 경제 공부 커리큘럼과 여기에 포함된 각 책에 대한 설명이다. 여기에 수록된 책들은 저자가 이코노미스트 생활 20여년 동안 각별한 눈으로 읽고 걸러낸 책들이다. 저자는 경제 공부를 10개 챕터로 나누고 각 챕터별로 단 세권의 책을 통해 각 분야를 독자들이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이끈다. 예를 들어 주식 투자 기초 단계의 경우 초보자도 이해할 수 있을만큼 쉬운 개설서인 『피터 린치의 투자 이야기』를 가장 먼저 제시한다. 이어서 개설서의 내용을 수정 및 보완해 주는 두 번째 단계의 책을 설명한다. 대개 그 분야의 최고 권위자들이 쓴 책이다. 세 번째 단계는 앞에서 추천한 책들에 대한 반론 혹은 심층 논의를 담은 책이다. 지식의 세계에서는 영원불멸의 진리가 없을 뿐만 아니라, 독자가 다양한 주장을 수용하고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눈을 키워주기 위함이다. 이처럼 체계적으로 제시되는 책과 간결하지만 유려한 저자의 해설을 따라가다 보면 기초 경제 공부, 경기 순환, 주식 및 부동산 투자, 인구 변화와 세계 경제 등 경제라는 큰 산을 이루는 각 봉우리들이 하나씩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3부는 다이어트에도 살이 안 빠지는 이유부터 회사는 나에게 무엇을 원하나, 글쓰기 방법과 세계사까지 경제를 넘어서 폭넓은 사고와 현실 이해에 도움을 주는 책들을 유쾌한 설명을 통해 펼쳐보인다. 경제 외의 책을 다루는 이유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든 과정과 행위, 역사가 모여서 경제를 이루기 때문이다. 한정된 이론과 시각에 갇히지 않고 부단히 세상사에 대한 관심을 넓혀가는 것, 이것이 저자가 23년 동안 국내 최정상 이코노미스트의 명성을 유지한 핵심 비결이기도 하다.

책 속으로

이코노미스트 생활을 하면서 가장 즐거운 순간을 고르라면, 역시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해 읽는 순간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소개한 책들을 처음 만났던 순간에는 마치 아리따운 소녀를 처음 만날 때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최근에는 대형 서점을 나가 봐도 마음에 드는 경제 경영 서적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경제 경영 베스트셀러 코너를 살펴보면 자기계발서가 압도적으로 많으며, 그다음으로 눈에 띄는 것은 『화폐 전쟁』 류의 음모론 소설들이다. 『화폐 전쟁』 같은 베스트셀러를 비판하는 것은 수많은 독자를 적으로 돌리는 어리석은 짓임을 잘 알지만, 이 대목에서 음모론을 다룬 책을 비판하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다. 이런 책들은 독자의 ‘이성적 판단’을 가로막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139쪽

반대로 내가 ‘저자의 이름’만 보고 바로 책을 구입하는, 글 잘 쓰는 경제학자 리스트를 소개해 보는 것도 좋겠다. · 폴 크루그먼: 칼럼은 되도록 안 읽지만, 그는 타고난 글쟁이다. · 로버트 쉴러: 2000년 정보통신 거품과 2008년 부동산 버블을 예측한 경제학자, 더 말이 필요 없다. · 팀 하포드: 이만한 글쟁이는 다시 보기 어렵다. · 제러미 시겔: 주식시장 참여자뿐만 아니라 경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놓쳐서는 안 될 저자. · 라구람 라잔: 현재 인도 중앙은행장으로 일하고 있다는 게 아쉬운 글쟁이. 부디 빨리 책을 써 주길! · 장영재: 『경영학 콘서트』의 저자. 제발 책 한 권만 더! ―159쪽

경제학에 대한 기초를 다지고 나면 경기순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2008년에 겪은 글로벌 금융 위기의 충격이 워낙 컸기에, 앞으로 또 이런 대대적인 위기가 찾아올 가능성을 탐색하려는 욕구가 치솟기 마련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경기순환에 관한 책이 그리 많지 않다. 특히 절대 빼먹으면 안 되는 군터 뒤크의 『호황의 경제학 불황의 경제학』이 현재 절판 상태라는 게 무척 안타깝다. 혹시 중고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하면 무조건 구입하기를 바란다. ―160쪽

피터 린치는 총 세 권의 투자 관련 서적을 펴냈는데 이 가운데에서 『피터 린치의 투자 이야기』가 초보자에게 가장 적합하다. 일단 이 책은 다른 주식 투자 책들과 달리 매우 쉽다. 그러면서도 저자인 피터 린치가 워낙 산전수전 다 겪은 프로인 터라 주식 투자를 위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지식들도 제대로 전달하고 있다. ―185쪽
그런데 차명수 교수는 『기아와 기적의 기원』에서 이 두 가지 주장을 모두 비판하면서, 한국이 산업국가로 도약할 수 있었던 세 가지 성공 요인을 지목한다. 하나는 일제 강점기 당시 교육 투자(주로 소학교), 둘은 수출 지향 경제성장 노선, 셋은 조선 이후 축적된 문화자본(특히 한글)의 영향으로, 저자는 이 세 가지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246쪽

홍춘욱 지음/원더박스/343쪽/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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