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지난 2006년부터 이상한 폐렴환자들이 잇따라 의료계에 보고됐다. 영유아들이 이상한 폐렴 증상을 보인다는 소아학과 교수들의 논문 내용이었다.
의료계는 정부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사안이라며 보고했고, 2007년에는 환자 폐의 분비물까지 정부에 보내 질의했다.
하지만 "바이러스성 질환은 아니"라는 정부의 미온적 답변만 돌아왔다.
비슷한 환자들이 전국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자, 소아학과 교수들은 2008년 두 번째 논문을 발표하고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해 공동연구에 나설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러한 의료계의 긴박함과 달리 정부는 미온적인 대응을 고수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병원에서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 섬유화'라는 진단명을 받기까지 5년여 세월이 걸렸다. 그렇게 원인과 결과가 밝혀진 뒤 또 다시 5년의 세월이 흘렀다.
가해 기업들은 정부에 의해 밝혀진 사실을 논란으로 만들었고, 이를 위해 학자들의 실험보고서를 활용했다. 윤리를 버린 '조작'과 '은폐' 의혹은 검찰수사로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5년간 실체를 알지 못했던 사실도 확인되고 있다. 서울대 C 교수의 생식독성 보고서에서는 임신한 쥐 15마리 중 새끼 쥐 13마리가 사산하는 매우 높은 사망률을 보였다.
사람에게는 어떠한 영향을 줬을까. 피해자들 중에는 태아와 신생아 둘을 연이어 잃은 엄마가 있다. 건강한 아이를 출산한 경험이 있던 여성이다. 임신 초기 한두 달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탓에 폐 손상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확인된 아이도 있다.
사람에게도 가습기 살균제가 모체를 통해 태아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진 셈이다.
지난 2011년 정부의 동물실험은 폐 손상에 집중됐다. 당시 의학계가 주목했던 것이 폐 손상이었기 때문이다. CMIT·MIT제품 사용자들은 폐 손상은 아니지만 가습기 살균제 사용 이후 천식, 자가면역질환, 후두염등 다른 장기의 질환을 앓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지난해 정부의 피해 집계 결과 CMIT·MIT로 인한 1단계(살균제 연관성 거의 확실) 피해자가 3명으로 확인됐다. 다른 제품과 섞어 쓰지 않고 오로지 CMIT·MIT 제품만 사용한 환자들이다. 폐 손상조사위는 CMIT·MIT에 대한 재조사가 필요하다고 환경부에 권고했고 환경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의학계가 '원인 미상 중증 폐 질환'에 주목한 것은 지난 2006년이다. 이어 2008년까지 질병관리본부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촉구했지만, 바이러스성 질환은 아니라는 게 정부 결론의 전부였다.
환경부 역시 2011년 집단사망사건이 실체를 드러낸 뒤에야 유해화학물질로 분류하고 관리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이번 주 시사기획 창에서는 가습기 살균제가 첫 출시된 지난 1994년부터 판매 금지되기까지 17년 동안, 부실했던 정부의 구조적 안전 시스템을 되짚어보고 개선점까지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