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실장은 이원종 전 충북지사가 후임으로 발표된 지 30여분 뒤인 이날 오후 3시 20분쯤 청와대 춘추관에 들러 출입기자들과 간단히 작별 인사를 나눴다.
그는 퇴임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웃으면서 "소감은 뭐...떠날 때가 있는 거지"라는 말만 남긴 채 손수 승용차를 몰고 청와대를 떠났다.
이병기 실장은 지난 해 2월말 국정원장에서 비서실장으로 파격 발탁된 뒤 탁월한 정무감각과 유연성으로 청와대의 중심을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원로 자문단의 한 명으로 박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웠지만 여당은 물론 야권과도 소통이 되는 인물이었다.
실제로 이 실장의 사퇴에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재임 중 야당과 비공식적 소통을 했고, 나름대로 저에게도 이해와 협력을 구하려고 노력했다"며 "이렇다할 과오도 없었다"고 교체 배경에 의문을 제기했다.
청와대는 이병기 실장의 교체 이유에 대해 공식적인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이 실장은 4.13 총선이 끝난 뒤 새누리당 총선 참패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정치권에서도 청와대 참모진의 교체 압박이 제기됐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말 언론사 보도 편집국장단 간담회에서 국면전환용 청와대 개편이나 개각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뜻을 밝혔었다.
이후 이 실장이 거듭 건강상의 이유까지 밝히며 사의를 굽히지 않아 박 대통령이 이를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실제로는 총선 전부터 이미 피로누적 등을 이유로 사퇴를 원하고 있었던 것으로 청와대 안팎에 소문이 나있다. 건강에 따른 피로 뿐 아니라, 본인의 직무 수행에 대한 좌절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여권 주요 인사들에 따르면 이 실장은 청와대 내부 소통의 한계로 어려움을 겪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청와대 2인자임에도 박 대통령에 대한 직보 기회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다는 전언이다.
여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지난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파동 당시 수습책 논의를 위해 박 대통령과의 면담을 건의했지만, 이 실장에게서 일절 답변이 없었다”며 “나중에 알아보니 보고조차 이뤄지지 않았더라”고 말했다.
이 실장과 절친한 여권의 한 중진도 “이 실장에게 정국 현안에 대해 ‘대통령에게 직언을 하고 싶다’고 전한 적이 있으나, 몇 달 뒤 이 전 실장으로부터 ‘보고하지 못했다’는 답변이 돌아온 적이 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이 실장은 총선 전까지도 주변 지인들에게 자주 '힘들다'고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에선 이병기 실장이 이른바 ‘문고리 권력’에 밀려 청와대 내의 공간이 협소해지자 사의를 결심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