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책임자는 쏙빠진 국책은행 자구안…그나마 '재탕삼탕'

자금 수혈 전 국책은행 자회사 매각, 기능조정 등 논의.."관료에게 맡기면 또 실패"

정부가 국책은행의 자회사 100여개를 팔고, 기능축소와 인력감축 등의 내용을 담은 자구계획을 마련 중이다. 부실을 키운 국책은행이 자금을 지원받기 전에 스스로도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

그러나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국책은행 자구계획이 핵심을 벗어나 보여주기식, 책임 떠넘기기 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 대한 자구 계획안을 마련 중인 곳은 기획재정부다. 산은과 수은이 부실기업에 천문학적 자금을 대주면서 관리를 제대로 못해 부실을 더 키운 책임을 묻겠다는 것.

기재부는 관련 내용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있지만, 현재 산은이 갖고 있는 자회사 132개를 연내에 모두 매각해 자금을 확보한다는 계획이 논의 중인 걸로 알려지고 있다. 또 산은과 수은이 민간영역과 겹치는 기능은 대폭 축소하고 이에 따른 인력감축도 검토 중이다.

그런데 이는 지난해 10월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산업은행 역할 강화 방안’에서 나온 내용이고 이미 산은 산하 출자관리위원회가 자회사 매각을 추진 중인 상황이다. 결국 정부 대책은 자회사 매각속도만 3년 이내에서 연내로 당기겠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정부 안은 자회사 매각에 속도를 내려다 제 값도 못 받고 파는 부작용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어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실제로 기재부는 기업은행 정부지분 일부를 블록딜 형태로 시장에 매각했는데, 이 또한 여러차례로 나눠서 몇 년에 걸쳐 진행해왔다. 연내에 100개가 넘는 자회사를 매각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작업이라는 점을 시사해주는 대목이다.

또 자구책으로 검토되는 산은과 수은의 기능 재편과 인력 감축, 재배치 등도 이미 지난 2013년 정책금융 개편 논의 때 한 번 씩 검토됐던 내용들이다. 거창하게 자구계획이라고 하지만 과거 대책을 재탕 삼탕한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

게다가 국책은행의 자구계획 마련에는 중요한 내용이 빠져있는데. 바로 정부의 감독책임에 대한 문제다. 명지대 원승연 교수(경영학)는 “국책은행의 부실화가 정부의 정책을 수행하고 발생한 문제”라며 “여기에는 기업의 문제도 있지만 정부의 책임도 크다”고 말했다.

시중은행이 부실업종에 대해 자금을 회수하는 동안에도 국책은행이 계속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한 배경에는 낙하산 인사임명, 감독권 발동 등을 통한 정부의 압박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와 금융당국은 자기 책임은 나 몰라라 하면서 국책은행의 자구계획을 자기들이 만들어주겠다고 칼자루를 휘두르고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국책은행의 성과연봉제 도입이 마치 자구책의 핵심인 것처럼 호도하는 모습마저 보여주고 있다.

원 교수는 “부실기업 문제가 정권의 임기 안에 터져나오지 않도록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을 끌어들여 막았던 것이 이제 산은과 수은의 부실화로 나타나는 것”이라며 “정부가 이를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또 다시 부실을 덮기 위해 이제 한국은행까지 동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소장도 “관료에게 맡기면 언제나 시간을 끌면서 책임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가게 된다”며 “여야정 협의체를 구성해서 책임 소재를 철저히 가린 뒤, 앞으로 구조조정의 기본 틀과 투명한 통제장치 등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