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퇴직연금…2%대 저수익 '노후보장 태부족'

적립금 백조원 넘지만 수익률 낮아 안정적인 노후생활 보장에 턱없이 모자라

(사진=자료사진)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된 지 10여년만에 적립규모가 백조원을 넘어섰지만 수익률이 낮아 근로자의 안정적인 노후 생활을 보장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수준이다. '무늬만 퇴직연금제도'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국민연금은 소득의 9%를 넣으면 퇴직 이후에 소득의 40% 정도를 받는데 퇴직연금은 8.3%를 넣고 12%를 받는다. 퇴직연금의 수익률이 낮기 때문이다. 이래 가지고는 퇴직연금이 근로자의 노후생활을 받쳐주기는 힘들다."

이태호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의 말이다.

우리나라에 퇴직연금이 도입된 것은 지난 2005년, 도입된 지 10여년 동안 퇴직연금 시장은 괄목할 정도로 신장했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말 현재 퇴직연금에 가입한 가입한 근로자수는 590만 명으로, 상용근로자(1100만 명)의 53.5%가 가입했다. 퇴직연금을 도입한 사업체는 30만 5665개소로, 전체 사업체의 17.4%에 지나지 않지만, 상시근로자 300명 이상 사업체 가운데서는 84.4%가 도입했다.

◇ 퇴직연금 적립금 연평균 26%25 증가…하지만 속 빈 강정

특히 퇴직연금 적립금의 신장세가 두드러진다.

지난 2014년에 100조 원을 돌파한데 이어 2015년말에는 126조 4000억 원을 기록했다. 최근 5년간 적립금 증가율은 연평균 26.1%를 기록하고 있다. 10여 년 만에 이같은 신장세라면 퇴직연금의 도입은 외형적으로는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속 빈 강정과 같다. 낮은 운용수익률 때문이다.

지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최근 5년간 퇴직연금의 운용수익률은 2.5%(은행권 5년 평균 DB 평균수익률, 금감원 비교공시)로 국민연금(4.7%)의 절반 수준이다.

9%대인 호주의 퇴직연금 수익률은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이다. 이렇게 낮은 수익률로는 근로자의 노후생활 안정에 기여할 수 없다.

◇ 노후연금 소득대체율 50%25대…OECD권고 수준에 크게 미달

근로자의 노후생활안정을 위한 연금은 3가지가 있다. 국민연금과 퇴직연금, 개인연금이 그것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이 세가지 연금을 3층으로 쌓고 이 3층의 보장구조가 잘 짜여서 돌아갈 때 근로자의 노후생활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고 권고하고 있다.

근로자가 직장 은퇴 후 노후생활을 안정적으로 끌고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연금지급액이 직장에 있을 때 받는 소득의 70% 정도는 돼야 한다는 것이 OECD의 권고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 3층 연금의 소득대체율이 50%대로 다른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그 주된 이유는 2층을 이루는 퇴직연금의 경우 낮은 수익률로 인해 소득대체율이 12% 수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이태호 교수는 "퇴직연금의 소득대체율이 30%로 국민연금과 같은 수준이 돼야 OECD 권고수준에 맞출 수 있다"고 말했다.

◇ 퇴직연금 적립금의 90%25, 금리 1~2%25대의 원리금 보장상품에 투자

(사진=자료사진)
퇴직연금은 적립금 규모가 백조원이 넘는데도 국민연금과 달리 왜 수익률이 낮을까.

그것은 퇴직연금의 대부분이 금리가 낮은 원리금 보장상품에 투자되기 때문이다.

2015년 말 기준으로 전체의 89.2%인 112조 7000억 원이 정기예금이나 금리확정형 보험, 원리금 보장 ELB(파생결합사채)과 같은 원리금 보장상품에 투자된 것으로 집계됐다.


구체적으로 회사가 운영하는 DB(확정급여)형의 경우는 96.1%가, 근로자 개인이 운영하는 DC(확정기여)형은 76.5%가 원리금 보장상품에 투자됐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들 원리금보장상품의 평균금리는 계속되는 기준금리 인하로 계속 떨어져 지난해말 현재 1% 후반에서 2% 초반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을 금리 1, 2%대의 원리금 보장상품에 투자하면서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퇴직연금이 대부분 원리금 보장상품에 투자되는 이유는 현행 퇴직연금의 지배구조가 갖는 한계 때문이다.

성인모 금융투자협회 WM본부장은 "회사가 운영하는 DB형의 경우, 퇴직연금을 관리하는 회계부서 담당자들이 운용결과 손해가 났을 때의 책임소재 문제로 실적배당상품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근로자 개인이 운영하는 DC형도 근로자가 금융시장의 변화에 대응하여 자산을 운용할 수 없어 결국은 운용을 포기하고 여기에 금융기관의 편의주의가 결합돼 원리금 보장상품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 "퇴직연금제도의 구멍은 퇴직연금 중도해지"

퇴직연금의 수익률이 낮게 되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퇴직연금의 운용기간이 길지 못하다는 점 때문이다.

이태호 교수는 "우리나라 퇴직연금제도의 가장 큰 구멍은 명예퇴직 등으로 직장을 나간 퇴직자들이 대부분 퇴직연금을 중도해지한다는 점이다. 현행 퇴직연금 제도 아래서는 근로자가 퇴사를 하면 계좌가 IRP(개인형퇴직연금)으로 옮겨지게 되는데, 그 때는 원하기만 하면 중도해지가 합법적으로 가능하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통계를 보면, 또 2015년 4분기 중 연금을 받을 요건을 갖춘 55세 이상 퇴직자 대부분(92.9%)이 퇴직급여를 연금이 아닌 일시금으로 받아갔고 그 규모는 9778억 원으로 집계됐다.

물론 일시금으로 받아간 액수는 전체 퇴직연금 적립액에 비해서는 작은 규모이지만 퇴직자 대부분이 퇴직급여를 일시금으로 받아간다고 하는 것은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금융기관이 연금을 장기적으로 운용할 수 없게 만든다고 할 수 있다.

퇴직연금 운용상품이 대부분 원리금 보장상품으로 운용되는 것도 바로 퇴직연금의 운용기간이 길지 않은데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단기간에 안정적인 수익률을 낼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은 바로 원리금 보장상품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퇴직연금이 호주는 아니더라도 국민연금 수준의 수익률을 내려면 원리금 보장상품이 아닌 주식과같은 실적배당 상품에 투자를 해야 하는데 이것은 20, 30년의 장기투자를 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주식과 같은 실적배당상품은 단기간에는 오르고 내림의 부침이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높은 수익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무늬만 퇴직연금'…퇴직연금에 대한 인식변화 시급

결국 근로자의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현 퇴직연금제도에서는 '무늬만 퇴직연금'이라고 할 수 있다.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보장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낮은 수익률에 퇴직하면 퇴직급여를 일시금으로 받아가기 때문이다.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되기 전과는 퇴직금을 안정적으로 받는다는 것 외에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전체 사업체 가운데 80% 이상이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하지 않았는데도 근로자들의 도입요구가 강하지 않은 것도 바로 이러한 퇴직연금제도의 한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퇴직연금제도의 변화와 함께 가장 시급한 것이 퇴직연금에 대한 인식변화라고 류건식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강조한다.

"근로자의 안정적인 노후 생활을 위해서는 3층 연금구조 가운데 제일 중요한 것이 2층을 이루고 있는 퇴직연금이다. 2층이 부실하면 3층이 세워질 수 없고 안정적인 노후생활도 불가능하다. 정부는 물론 근로자나 기업, 그리고 일반 국민도 이에 대한 확고한 인식을 갖고 그에 필요한 대책을 강구해 나가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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