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촛불의 물결, 사상 촤다 인파
6.10민주화항쟁 21주년을 맞은 10일, 서울 도심에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시민 수십만 명이 쏟아져 나왔다. 행사 주최측인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추산 70만, 경찰 추산 10만 명에 달하는 엄청난 인파.
저녁 9시쯤부터 세종로 일대에서 거리행진에 나선 시민들은 자정이 넘은 시각까지 신촌과 종로, 독립문, 명동까지 사방으로 흩어져 거리행진을 벌였다.
시민들은 협상무효, 이명박 정권 퇴진 등의 구호를 외치며 거리로 몰려 나왔고 경찰은 시민들의 거리진출 봉쇄를 포기하고 청와대 방향으로의 행진을 막는데만 급급한 모습이었다.
일부 감정이 격해진 시민들이 컨테이너 차단벽에 스티로폼을 깔고 반대편으로 넘어가려 했으나 ''비폭력''을 외치는 시민들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내려오기도 했다.
이밖에 서울 외에 전국 70여 개 장소에서 10만 명 이상의 사람이 몰려 촛불집회을 벌였다.
▶이한열 열사 어머니 "폭력은 계속되고 있다"
이날 서울 도심에서는 이한열 열사 장례식 행렬 재연 등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렸다.
연세대 이한열 열사 21주기 추모 기획단 소속 500여 명은 이날 오후 연세대 민주광장에서 추모제를 갖고 이 열사의 희생을 기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씨는 "아들이 공권력에 희생당한 것도 분한데 아직도 경찰이 폭력을 사용한다는 것은 분명히 잘못"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배 씨는 이어 "눈을 뜨고 있어도 아직 그날(6월 10일)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라며 "아들의 죽음이 촛불집회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역시 민주화 항쟁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고(故) 박종철 군을 추모하는 박종철기념사업회는 용산구 남영동에서 기념관 개관식을 했다.
특히 이 자리에는 6.10 민주화 항쟁 당시 지도부 구성원들이 대거 참석해 자신들이 다시 거리로 나설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기도 해 눈길을 끌었다.
새정치연대 장기표 대표는 "정권을 잡은 세력에게 국민의 힘이 얼마나 큰 지 보여줬고 87년 6월 10일이 되살아난 것 같아 굉장히 기분이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들 단체는 자체적으로 추모제를 가진 뒤 저녁쯤 모두 서울광장으로 모여 촛불집회에 합류했다.
▶"예배당인줄 아느냐" 진보vs보수 진영 실랑이 이어져
이날 집회는 시작부터 일부 보수진영과의 충돌로 불안하게 시작했다.
뉴라이트전국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 5천여 명은 10일 오후 3시쯤부터 서울 광장에서 군가 등을 틀어놓고 ''법질서 수호, FTA 비준 촉구'' 대회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진보와 보수단체 회원들간에 실랑이가 계속됐다.
보수단체 회원들이 "친북 좌파로부터 일당 받고 나와 일하지 말고 집에 가라"며 욕설을 내뱉자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이에 대응하면서 가벼운 몸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비폭력 시위를 이어가야 한다. 시비에 말려들어 주먹을 휘둘러서는 안 된다"며 자중하는 분위기였다.
결국 양측의 충돌을 우려한 대책회의가 집회장소를 동화면세점 앞으로 옮기면서 양측의 충돌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보수단체 회원들이 저녁부터 종교색이 짙은 기도회를 시작하면서 양측의 갈등이 다시 불거지기도 했다.
한 연사가 연단에 올라 "우리를 이성을 잃게 하는 모든 정신들이 십자가의 정신으로 녹아들 것''''이라며 ''''5개월 만에 어떻게 우리 손으로 세운 대통령이 독재자가 될 수 있냐''''고 말하자 주변에 있던 시민들은 "여기가 예배당인 줄 아냐"며 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보수단체 회원들은 충돌을 우려한 경찰의 권유를 받아들여 밤 8시가 넘어 모두 자진 해산했다.
▶여기가 베를린장벽이냐? 컨테이너 장벽 설치에 비판 봇물
대규모 집회가 일찌감치 예고된 만큼 경찰은 10일 새벽부터 광화문일대에 컨테이너 차단벽을 2중으로 설치하고 도심 길목 곳곳을 경찰버스로 막아섰다. 세종로 왕복 14차선 중 무려 10차 차선을 막은 것.
이 탓에 이른 출근시간부터 광화문 일대에 극심한 교통 혼잡이 빚어지기도 했다.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너나할 것 없이 차단벽 설치를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성토했다.
전북에서 대학교 90학번 동기들과 함께 버스를 빌려 집회에 왔다는 차단벽 앞에서 만난 김종균(40)씨는 "철의 장막도, 베를린 장벽도 아니고 대체 뭘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며 "시민을 무시하는 처사"리고 비판했다.
같은 장소에서 만난 최 모(29)씨는 "컨테이너로 막아놨으니 넘어가진 못하겠지만 거꾸로 이명박 정부도 시민의 품으로 넘어오지 못한다는 의미일 것"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경찰은 이날 경찰은 2백 21개 중대 경력 2만여 명을 배치하고 갑호비상 경계령을 내린 채 시위대의 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었다.
▲ 정운천 장관, ''광장에서 뺨맞고 대학로서 화풀이(?)''
한편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이 촛불시위 현장을 찾았다 시민들의 냉대 속에 자리를 뜨는 일도 벌어졌다.
정 장관은 저녁 7시 30분쯤 대책회의측이 집회시작을 알리려는 순간 수행원과 경찰 5-6명과 함께 서울광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깨알같이 적은 메모지를 들고 자유발언을 하려던 정 장관은 ''당장 떠나라''는 시민들의 야유속에 황급히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시위대 사이에서는 `매국노''라는 연호와 함께 온갖 비난과 욕설까지 쏟아져 나왔다.
반면 정 장관은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린 보수단체 집회에서는 ''따뜻한(?)'' 환영을 받아 대조를 이뤘다.
오후 8시 30분쯤 정 장관이 등장하자, ''''장관님이 오셨다''''며 문화제 집행부들 20여명이 몰려가 정 장관을 환영했다. 정 장관은 ''''이곳에서라도 발언을 하려고 했는데 아쉽다''''며 ''''반겨줘서 고맙다''''고 화답했다.
정 장관은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국민과 소통하기 위해 거리에 나왔으며, 대통령도 초기 잘못을 인정하고 낮은 자세로 임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원하는 것은...''오직 재협상''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 외에는 성난 민심을 잠재울 방법은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한성준(32)씨는 "''닥치고 재협상''이라는 구호가 갖는 의미를 생각해보라"며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각이 총 사퇴한 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정모(44)씨는 "결국 사태 모면하기 식의 얄팍한 방안"이라고 내각 총사퇴를 평가 절하한 뒤 "국민이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대통령이 잘 헤아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반면 최모(31)씨는 "꼭 재협상이 아니더라도 재협상에 준하면서 국민을 납득시킬 수 있는 대책을 내놓길 바란다"며 "사태를 좀 더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