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시그널'로 성공적인 복귀를 알린 그는 '탐정 홍길동'이라는 다소 실험적인 영화로 돌아왔다. '늑대소년' 조상희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1980년대를 배경으로 그로테스크한 영웅물을 맛깔나게 그려냈다.
"한국영화에서 많이 찾아볼 수 없는 스타일리시한 영화라고 느꼈어요.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사이 필름 느와르에 한국의 1980년대 미장센을 입힌 느낌을 받았거든요. 사실 트렌치 코트를 입고 권총을 든 탐정을 어떻게 소화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습니다. 내레이션이 많고, 대사 역시 만화적인 측면이 많은데 그게 유치하지 않도록 많이 연습했던 것 같아요."
'탐정 홍길동'의 홍길동은 정의로운 영웅들과는 그 양상이 사뭇 다르다. 목표를 위해서라면 온갖 거짓말을 불사하고, 어릴 적 트라우마 때문에 성격적으로도 많은 부분이 뒤틀려 있다. 복수를 위해 정의를 구현하는 사이코패스에 가깝다.
"어떻게 보면 비열하고 비겁한 측면도 많죠. 머리만 쓰면서 잔인하고 무섭기까지 한 캐릭터를 관객들이 따라올 수 있을지 걱정을 좀 했어요. 그런데 아이들을 통해 변모하는 홍길동의 모습을 관객들도 동의하면서 따라오게 되지 않았나 싶어요. 저한테는 무게감과 책임감이 큰 영화입니다."
"동이 역의 정의는 사실 많은 작품에서 연기를 했고 그 감성을 너무 잘 아는 친구죠. 말순이 역의 하나는 감독님이 이미지만 보고 캐스팅을 했고, 연기 경력이 전무해요. 그래서인지 연기를 하기 싫어했어요. 그것 때문에 우려가 컸는데 감독님과 제가 붙어서 '대사를 이렇게 해야돼. 이렇게 움직여야돼. 아저씨를 봐야돼' 이렇게 코칭하곤 했어요. 오히려 말순이와 할 때 더 집중도가 높아지더라고요. 순수한 날 것의 표현을 할 때마다 기쁘고 희열을 느끼기도 했고요. 극장 밖을 나갈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말순이겠다는 확신을 했어요."
점잖은 학생같은 이제훈에게 직관적으로 행동하는 홍길동 캐릭터는 아무래도 애정이 갈 수밖에 없다. 그는 홍길동을 연기한 것을 '재미있는 경험'이라고 반추했다.
"일을 하면서 힘들거나 짜증이 날 때도 있는데 즉각적으로 표출하는 것은 조심스럽죠. 그런데 홍길동은 그런 부분에 있어서 마음껏 하고 싶은대로 지를 수 있는게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 홍길동이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싶네요."
이제훈은 '탐정 홍길동'이 시리즈물로 제작되길 바라는 사람 중의 한 명이다. 극장가를 휩쓸고 있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등처럼 얼마든지 한국에서도 영웅물 시리즈가 나올 수 있다는 믿음이 크다.
"이런 세계관을 가진 영화가 한 작품으로 귀결되는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를 기다린 관객들이 많을 것 같은데 '탐정 홍길동'은 또 그와 다른 새롭고 독창적이면서 낯선 부분이 있거든요. 이 영화가 시리즈물로서 가져갈 수 있는 기대감을 안겨드렸으면 합니다. 사실 한국 영화 산업 내에서 이런 영화를 시도하기가 참 힘든데 '탐정 홍길동'이 사랑받는다면 영화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한 작품들이 더 많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관객들이나 영화계 일을 꿈꾸는 분들에게는 더 많은 상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