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가 히어로 '시빌워'에 드리운 독과점의 그늘

그야말로 신드롬이다. 마블코믹스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이하 '캡아: 시빌워')가 쾌속 질주를 거듭하고 있다. 5월 황금 연휴를 맞아 600만 관객(6일 기준)을 돌파하며 외화 중 가장 빠른 흥행 기록을 세우고 있는 것.

4~5월은 통상 극장가의 비수기로 꼽힌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주요 기대작들은 이 시기 개봉을 피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마블코믹스 영화들만큼은 달랐다. '아이언맨' 시리즈부터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까지, 마블코믹스 영화들은 오래 전부터 4월 개봉을 고수하고 있다. 관객들에게 어느 새 4월은 '마블의 달'이 되어버린 셈이다.

비수기 극장가에 나타난 할리우드 대작이다 보니, 관객 증강 효과도 톡톡히 누렸다. 지난해 4월 개봉한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하 '어벤져스 2')은 천만 관객을 돌파했고, '캡아: 시빌워' 역시 지금 같은 흐름으로는 천만을 넘길 가능성이 높다.

극장들은 마블코믹스 영화라면 두 팔 벌려 환영이다. 매출이 감소하는 시기에 매번 구세주처럼 나타나기 때문에 스크린 배정이 어느 때보다 후하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비수기에 개봉한다고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3월 개봉한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은 뜨거운 관심 속에 개봉했지만 당초 예상했던 최저 관객수 300만 명에도 못 미쳤다. 원작 팬들을 비롯, 관객들의 기대감이 높았지만 이를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캡아: 시빌 워'는 개봉 초부터 관객들이 높은 만족도를 나타내며 90%가 넘는 예매율을 자랑했다. 마블코믹스 특유의 유쾌한 히어로물에서 그치지 않고, 캐릭터들이 정의에 대한 각기 다른 가치관을 두고 대립하는 이야기를 잘 풀어냈다는 평가다.

그러나 흥행 열기가 달아오를수록 '캡아: 시빌워'를 향한 스크린 독과점 논란도 더욱 거세지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6일 기준으로 '캡아: 시빌 워'의 스크린수와 상영횟수는 각기 1,771개, 8,589회를 기록했다. 영화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이하 '탐정 홍길동')이 4일 개봉해 초반보다 줄긴 했어도 여전히 압도적이다. 박스오피스 2위인 '탐정 홍길동'과는 스크린수와 상영횟수가 각기 2.5배·3배 가량 차이가 나고, 10배 가량 차이가 나는 영화들도 존재한다.

'캡아: 시빌워'가 세운 신기록을 살펴보자. 개봉 4일 차 1,990개의 스크린수는 단일 기록으로는 최다였으며 스크린 점유율이 최고일 때는 42.9%를 기록했다. 상영횟수는 10,336회에 달해 '어벤져스 2'의 기록을 깼고, 상영점유율도 68.4%라는 신기록을 세웠다. 앞서 논란이 일었던 국내 영화 '검사외전'보다 더욱 극심한 독과점 행태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정말 많은 관객들을 수용하기 위해 이 같은 스크린 배정이 필요한 것일까. 좌석점유율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개봉 4일 차에 61.1%까지 치솟았던 좌석점유율은 10%까지 떨어졌다가 연휴를 맞아 다시 40%대까지 올라왔다. 즉, 영화를 상영하는 상영관은 많은데 그 상영관을 채우는 관객은 절반 가까이밖에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40%대의 좌석점유율은 '탐정 홍길동'과도 비슷한 수치다.

연휴 기간 동안, 다양한 영화들을 보고 싶은 일부 관객들은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캡아: 시빌워'가 아닌 다른 영화들을 보고 싶어도 '캡아: 시빌워'가 상영시간을 전부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연휴에 영화관을 방문한 관객 김주영(28·여) 씨는 "'캡아: 시빌 워'를 이전에 봐서 다른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왔는데 상영시간대가 너무 적어 보지 못했다. 다양한 영화를 보고 싶은 관객들도 있는데 극장에서 너무 '캡아: 시빌 워'만 상영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수익 창출에만 매몰된 극장들이 영화의 다양성을 보장하지 않고, '시빌 워'를 보지 않는 소비자를 배제시킨다는 비판이다. 결국 동시기 개봉 영화들은 스크린 배정에서 밀려 '빈익빈 부익부'에 시달리기 일쑤다.

매번 대형 영화 개봉 시마다 불거지는 스크린 독과점 논란에 이제 극장의 자율 규제가 아닌 타율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행정 당국에서 일정 정도의 규제 장치를 발동시킬 수도 있는건데 자본주의 시장 경제 원칙에 위배된다고 해서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실제로 스크린 독과점의 행태를 보면 스스로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왜곡시키고 있다. 근본적으로 치료를 해야 되는 문제이고, 그러려면 더 이상 자율적 규제에 맡길 것이 아니라 타율적 규제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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