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기업· 경제, 고장난 자본주의의 대안이 될까?

신간 '고장난 자본주의에서 행복을 작당하는 법'

"우리의 삶 속에 이미 존재하는 협동과 상부상조, 호혜와 관용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서로를 이어주는 새로운 집단살림을 조직하는 것이 연대의 사회적 기업· 경제다. 연대는 바로 관계와 연결, 얽힘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본문 중에서

'고장난 자본주의에서 행복을 작당하는 법'은 공감·연대·혁신 등 여덟가지 키워드를 통해 사회적 기업· 경제를 들여다본다. 경향신문 기자와 논설위원을 지낸 저자 유병선은 LG소셜펀드 운영위원을 역임하며 사회적 기업가를 응원하는 일을 해왔다.

저자는 어떤 정책적인 도구나 경제 제도로서 사회적 경제를 설명하거나 사례를 제시하지 않는다. 삶의 복잡한 양상을 바탕으로 펼칠 수 있는 살림의 또 다른 이야기로서 사회적 경제와 사회적 기업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이 책을 통해 사회적 경제와 사회적 기업을 이끌어가는 기본 원리와 뼈대를 살펴보고, 개별 사회적 기업이 어떤 방식으로 새로운 대안을 이끌어내고 삶을 변화시키는지 볼 수 있다.

사회적 경제는 이윤의 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시장경제와 달리 사람의 가치를 우위에 두는 경제활동을 말한다. 사회적 기업은 사회적 목적을 우선 추구하면서 재화, 서비스의 생산, 판매 등 영업활동을 수행하는 조직을 가리킨다. 인간을 모든 관점의 중심에 놓고, 생명을 존중하며, 관계를 소중히 여기면서도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을 통해 부를 창출하는 것은 사회적 경제ㆍ기업의 공통 목적이다.

저자에 따르면 근대의 등장과 함께 '사회적 경제'라는 용어가 창안되었고, 혁명의 시대인 18~19세기에는 '연대'하는 여러 시민 결사가 생겼는데, 이때 영국 로치데일 선구자 협동조합을 필두로 한 협동조합 운동이 전개되면서 사회적 경제의 개념이 정립되었다고 한다. 20세기 초반 공제조합, 협동조합, 비영리단체, 풀뿌리 시민운동 등 여러 흐름으로 흩어져 있던 사회적 경제는 1970년대 이후 자유 대 평등, 시장 대 국가,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 등 거대 담론이 퇴조하고 대안주의 흐름이 부상하면서 '지금 여기에' 다시 호명되고 있다.

이 책은 사회적 기업ㆍ경제의 개념을 정의하거나 재단하는 대신 각 개별 기업들이 다양하게 펼쳐 보이는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관통하는 다른 생각에 주목한다. 예를 들면 캐나다의 사회적 기업 '공감의 뿌리'는 갓난아이를 통해 아이들이 '공감'을 느끼는 새로운 교육을 시도한다. 이주노동자를 위한 금융 시스템을 만든 도치사코 아쓰마사는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에게 기회를 융자하는 '연대'를 실천한다. 아동 노동의 근절에 앞장서온 카일라시 사티아르티는 노예 노동에서 구출한 아이들의 재활과 교육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굿위브, 담보노동해방전선 등)로 '혁신'을 이끌었다.

저자는 각 사회적 기업의 구체적인 사례를 든 뒤, 애덤 스미스부터 윌리엄 블레이크까지 사상가들의 지혜를 통해 사회적 경제의 사회적ㆍ철학적ㆍ문학적 의미를 찾아본다. 또한 현대사회의 병폐를 탁월하게 짚어낸 칼 폴라니와 지그문트 바우만의 통찰에서 사회적 기업ㆍ경제를 이해하기 위한 배경 지식을 설명한다. 이를 통해 실제 사회적 기업의 사례와 사회적 경제의 의미를 한 번에 찾아볼 수 있도록 유도한다.


미국의 소외 지역에 놀이터를 만드는 사회적 기업 카붐(KaBOOM)과 인도의 빈곤 지역에 전구를 공급하는 사회적 기업 셀코(SELCO)는 복지 차원을 넘어 공동체가 가지고 있던 사회적ㆍ문화적ㆍ심리적ㆍ물리적 자산을 발견해 자립의 가능성을 찾는 사회적 경제의 좋은 예다.

저자는 "사회적 경제는 목적지가 정해진 이야기가 아니다. 사회적 경제는 단일 전망이나 한눈에 쏙 들어오는 계획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획일화된 국내 사회적 기업 육성법의 문제도 제기한다. 발전 담론으로 설계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익 우선주의라는 틀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사회적 기업ㆍ경제를 실천하는 사람들의 '작지만 아름다운 혁명'을 응원하기보다는 당장의 성과만을 기대한다면 새로운 대안은 지속할 수 없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주류 경제의 틀에서 벗어나 다른 생각, 다른 살림의 이야기로서 사회적 경제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본문 중에서

타인의 불행에 무관심하고 무감각한 한 자신의 행복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다른 이의 안부를 묻는 것은 나의 행복과 직결된다. 그것이 공감이라는 천성이다. (중략) 공감은 타인에게 들어가는 것이지, 타인을 대상화하는 게 아니다. 공감할 때 비로소 배려와 돌봄이 가능해진다. 어른과 기성세대가 타락시킨 도덕 감정, 무너진 신뢰를 어린이의 공감으로 되살리려는 메리 고든이 '사회적 혁신가'로 불려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_ 45~46쪽, 〈제1장 공감_각자도생의 사회에서 벗어나는 법〉 중에서

도치사코 아쓰마사의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금융을 한마디로 줄일 수 있다면 그것은 ‘연대’일 것이다. 그는 애초에 전 세계 2억 명의 이주노동자를 위한 해외 송금 기관을 구상했다가 계획을 바꾸었다. 2억 명의 이주노동자와 가난한 나라와 지역에 사는 그의 가족과 이웃을 포함한 전 세계 40억 명에게 기회를 융자하는 '연대의 금융'으로 말이다. MFIC의 금융 혁신은 금융의 판만 바꾸는 게 아니라 연대의 부피와 밀도도 키우고 있다. _ 57쪽, 〈제2장 연대_호혜와 관용의 연결고리〉 중에서

사회적 기업가는 '아무나' 될 수 없지만, '누구나' 될 수는 있다. 그러나 누구나 카일라시 사티아르티처럼 실천할 수는 없다. 그래서 아무나 사회적 기업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누구나 카일라시 사티아르티처럼 살아갈 수는 있다. 현실은 복잡하고, 삶의 양상은 다양하다. 아동 노예 노동만 세상의 유일한 틈이 아니다. 불편한 현실에서 새로운 균형을 찾는 일에 전문가의 인증이나 자격증이 필요하지도 않다. 그래서 누구나 사회적 기업가가 될 수 있다. "혼자 잘 살면 무슨 재미냐?"고 묻는 이라면 그 누구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_ 107쪽, 〈제3장 혁신_세상을 바꾸는 행복한 실험〉 중에서

공동체에는 누가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분은 있어도, 누가 무슨 결핍을 지닌 취약계층인지에 대한 차별은 없어야 한다는 게 ABCD의 정신이다. 그래서 그들은 연결자인 것이다. (중략) 연결자는 관계망의 밀도를 높이는 사람이다. 마을 사람들의 관계망을 더 촘촘하게 하고,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펼치도록 한다. 이를 바탕으로 짜인 촘촘한 관계망의 결사체들이 더 자율적이면서도 서로 더 의존적인 '따로 또 같이'의 관계를 이어주는 게 연결자의 역할이다. 여기서 비록 호명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ABCD의 활동가는 '사회적 기업가 정신'과 절묘하게 포개진다. _ 141~142쪽, 〈제4장 보물찾기_사람답게 살기 위한 공생의 발견〉 중에서

셀코는 전기 소외에 대한 '사회적 혁신'의 이야기다. 하루 300루피 이하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하루에 10루피, 한 달 300루피씩 나누어 갚을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기술과 금융을 결합한 것이다. 하리시 한데는 "기술이 전부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전기 소외는 기술이 부족한 탓이 아니다. 돈이 없어서인 것도 물론 아니다. 기술과 금융이 가난한 사람을 소외시키는 탓이다. 하리시 한데는 셀코의 사회적 혁신에서 알짜는 '결합'이라고 말한다. 셀코의 혁신은 제각각인 동그라미와 네모와 세모를 하나로 이어놓는 사례이기도 하다. _ 152~153쪽, 〈제5장 둥근 네모_틀을 깨는 다른 생각의 가능성〉 중에서

쇠나우의 우르슐라들은 시민 스스로 발전하고, 아껴 쓰며, 제생 에너지 발전을 확대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함을 보여준다. (중략) 우르슐라 슬라데크와 친구들이 가장 먼저 한 것은 둘러앉기였다. 그들은 전기에 대해 생각을 나눴다. 무엇을 하고, 할 수 있는지도 따져봤다. (중략) 깨끗해보이는 편리한 전기가 이처럼 더럽고 위험한 물질로 만들어지고, 우리의 아이들과 미래를 얼마나 위태롭게 하는지 그 사실을 알고자 했다. 이들이 둘러앉은 식탁은 성찰의 공간이자 전기 소비자에서 시민으로 거듭나는 재단이었다. 우르슐라들은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고 작은 것이라도 실천하자고 다짐했다. _ 185쪽, 〈제6장 둘러앉기_공감과 연대를 회복하는 길〉 중에서

유병선 지음/위즈덤하우스/332쪽/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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