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조치 1호 '연애 금지'…교장이 곧 법

['복종'을 강요하는 교단의 민낯] ②

대한민국 교단에 민주주의는 없다. 교사들을 줄세우는 서열문화는 군대와 다를 바 없다. 교장은 최고 권력자로서 전권을 휘두른다. 각종 위원회와 회의로 포장된 협의 테이블은 '상명하복'이 전부다.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다. 복종을 강요받는 교사들과 그로부터 배우는 학생들에게 창의성과 민주의식을 기대할 수 있을까?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초임이 어딜 감히…" 만년 콩쥐신세 신참교사
②"긴급 조치 1호 '연애 금지'", 교장이 곧 '법'
③"줄을 서시오!" vs "이런 걸 왜 해?", 교단의 극과 극
④"함께 결정하고, 함께 지켜요"…학교가 변한다
(사진=스마트이미지)
"교장에 따라 학교가 완전히 달라지죠. 교장이 말하면 그냥 법이예요. 학교에서는 다 따라야 되고, 또 다 그렇게 돼요." (경기도 한 고등학교 A교사)

경기도 한 고등학교는 2년전 교장이 바뀌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교장은 자기 뜻대로 학교를 개조시켜 나갔다. 명분은 '입시'였다.

교장이 내린 긴급 조치1호는 '연애 금지'.

A교사는 "(교장이) 연애하지 말라고 하면 그와 관련된 것들이 생활 수칙으로 만들어지게 된다"며 "연애를 하다 걸리면 쌍욕을 하고 공개적으로 망신을 준다"고 전했다.

2호 조치의 타깃은 수십년 전통의 '축제'였다. 교장은 특별활동 시간 이외에 축제 준비는 금지시켰고, 축제 기간도 이틀에서 하루로 줄였다. 결국 아무도 찾지 않는 축제는 학생들의 관심에서도 멀어졌다.

문제는 3호였다. '고3 학생은 점심시간 중 15분은 무조건 자율학습을 할 것.'

이번에는 학생들도 반발했다. 몇몇 학생들은 학교와 교육청 게시판 등에 반대 글을 올렸다. 일부 교사들도 쉬는 시간 활용은 학생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교장은 "아무리 그래도 내 생각은 변하지 않는다"며 귀를 닫아 버렸다. 이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 과정을 지켜본 A교사는 아이들을 걱정했다.

"스스로 의견도 내고 항의도 해봤지만 전혀 바뀌는 것이 없는 걸 보고, 아이들이 순종적으로 변하더라고요. 사회에 나가기도 전에 자기 의사 표현을 하는 건 손해라는 걸 배우게 되는 것 같아 안타깝죠."

◇ "벨트는 무조건 잡는다", 독불장군 학생부장

교장의 '전횡'이 가능한 이유는 그가 가진 인사권 때문이다.


이같은 폐단을 줄이기 위해 교육부에서도 올해부터 교원업적평가 비율을 조정했다. 기존 관리자 70%(교장 40%, 교감 30%), 다면평가 30%를 관리자 60%(교장 40%, 교감 30%), 다면평가 40%로 다면평가 비중을 높인 것.

하지만 여전히 60%는 교장과 교감이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A교사는 "승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교장의 점수이기 때문에 승진하고 싶은 교감이나 교무부장 같은 간부급 교사들은 교장한테 순응할 수밖에 없다"며 "승진에 관심 없는 교사들도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러니까, 반대하는 말을 하는 걸 부담스러워하게 된다"고 말했다.

모든 의사 결정이 교장을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회의나 위원회는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성남의 한 중학교 학생부장이 '독불장군'으로 불리게 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그가 악명을 떨친 건 허리띠, 벨트 때문이었다.

그는 학생인권조례로 사라졌던 정문 지도를 부활시키면서까지 벨트 착용 여부를 단속했다.

단속이 심해지면서 학생과 학부모들의 항의가 들끓었고, 교사들 사이에서도 반대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결국 학교측은 교직원 회의를 열어 벨트 단속 중단을 요구했지만, 학생부장은 꿈쩍도 안했다.

이 학교 한 교사는 "소위 교장 측근이나 목소리 크고 자기 주장이 강한 교사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한다"며 "회의나 협의를 통해서 민주적인 논의나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경우는 별로 없다"고 말했다.

◇ "교사뿐 아니라 학부모, 지역사회 변화 필요"

독재와 다를 바 없는 구조속에서 민주적인 의사결정 시스템은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교단의 비민주성에 대해 학교운영위원회 등과 같은 교장을 견제할 수 있는 논의 기구들이 실질적인 권한과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화여대 정제영 교육학과 교수는 "교사들은 전문가집단과 서열문화의 관료집단의 특징을 함께 가지고 있다"며 "학교가 민주적으로 변하기 위해서는 교사들뿐만 아니라 학부모나 지역사회의 관심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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