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공직사회에서 '골프'는 금기어와 마찬가지였다.
박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3년 3월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안보 위기가 고조된 상황에서 현역 군 장성들이 군 전용 골프장에서 골프를 쳐 논란이 되면서다.
이때 박 대통령은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안보가 위중한 이 시기에 현역 군인들이 골프를 치는 일이 있었다"며 "특별히 주의해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공직사회에선 이를 '골프를 치지 말라'는 것으로 받아들여 조심하는 풍조가 생겼다고 한다.
2013년 6월 국무회의에서 이경재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소비 진작을 위해 이제 골프를 좀 칠 수 있도록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건의했지만 박 대통령은 답이 없었다.
한 달 뒤인 7월 국무회의 직전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이 접대골프가 아니면 공직자들이 휴일에는 골프를 칠 수 있지 않겠느냐고 건의하자 "제가 골프를 치라 마라 한 적이 없다"면서도 "그런데 바쁘셔서 그럴 시간이 있겠어요?"라고 물었다.
공직사회에선 이 발언으로 '골프 금지령'이 굳어졌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골프를 '내수 활성화'와 연결짓는 박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은 작년 2월 국무위원과의 티타임에서 "골프가 침체돼 있다. 활성화를 위해 좀 더 힘써달라는 건의를 여러 번 받았다"면서 문화체육관광부에 골프 활성화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했다.
이를 계기로 당시 최경환 부총리가 경제단체장들과 골프 약속을 잡았지만 5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확산되고, 경기도 가라앉으면서 무산됐다.
지난 26일 박 대통령은 언론사 보도·편집국장과의 간담회에서 "(공직자들이 골프를) 좀 자유롭게 했으면 좋겠다"고 좀 더 명확하게 골프를 허용했다.
'골프 칠 시간이 있겠느냐'는 발언에 대해서는 "그냥 골프 치러 나가면 하루가 다 소비되는 것처럼 여겨지니 바쁘겠다고 순수히 생각한 것"이라며 해명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의 이런 발언 이후 나흘 만에 유 부총리는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장,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한무경 여성경제인연합회장과 퍼블릭 골프장인 경기도 여주의 남여주 CC(컨트리클럽)에서 골프 라운딩을 했다.
동행한 강은희 여성가족부 장관은 강호갑 중견기업연합회장, 김정관 무역협회 부회장, 송재희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과 한 조가 돼 골프를 쳤다.
그린피 12만5천원과 캐디·카트비는 여덟 사람이 똑같이 나눠 냈다고 한다.
경제정책을 이끄는 유 부총리가 누구와 공식적으로 골프를 치는지는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조선·해운 등 한계업종에 대한 구조조정이 본격화돼 대량 실업 사태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유 부총리가 기업인들과 골프를 치는 데 대해 곱지 않은 시각도 많다.
이를 의식한 듯 유 부총리는 "해외에 나가서 골프를 치기보다 이왕이면 국내에서 치라는 의미가 있다"며 내수활성화의 취지를 강조했다.
이날 골프를 마친 후 인근 영릉(세종대왕릉)을 들렀다가 여주 쌀밥 한정식으로 점심식사를 한 유 부총리는 "골프를 치고서 주변 관광지에도 들르고 지역 특산물도 먹자는 의미가 있다"고 했다.
유 부총리는 경제인들과 4시간 가까이 골프를 치면서 '여소야대' 국회를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경제를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가를 주로 논의했다고 했다.
그는 "기업 구조조정과 관련된 얘기는 하지 않았다"며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기업이 회원사인 경제단체가 있어서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평소 골프를 즐기는 편이 아니라는 유 부총리는 "저는 실력이 좋지 않은데, 같이 친 세 분은 아주 잘 치시더라"고 말했다.